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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오늘날의 신부님이였다면?[유상우 신부] 8월 11일(연중 제19주일) 지혜 18,6-9; 히브 11,1-2.8-19; 루카 12,32-48

여름은 여름인가 봅니다. 날씨가 무덥습니다. 때론 습기가 그 더위의 위력을 더 가중시켜 주는 듯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더위를 참 많이 타고 땀을 많이 흘려서 여름이 괴롭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나면 온몸이 땀에 젖어 있을 경우가 허다하지요. 가끔 장백의를 보고 본당 수녀님께 죄송한 마음을 느낄 때도 종종 있습니다. 심할 때는 클러지셔츠(신부님들이 입는 셔츠)를 하루에 한두 번 갈아입을 때도 있습니다. 이 무더위 속에서도 미사를 드리기 위해 성당으로 향하는 여러분들의 발걸음을 응원합니다. 그 속에서 주님을 제대로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날씨가 더우니 오늘은 조금 가볍게 이야기를 풀어 볼까 합니다. 제가 사제로서 첫해를 살고 나서 선배, 동료 신부님들께 농담 삼아 던진 질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사제였다면 어땠을까?’ 아니 더 구체적으로 ‘21세기 대한민국 어느 한 본당의 사제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많은 교우분이 사제에게서 듣지 않았으면 하는 이야기가 바로 돈 이야기와 정치적 이야기입니다. 굳이 성당까지 와서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으신 것이지요. 그러나 많은 교우분께서는 알고 계실 것입니다. 성당 역시 ‘물질’과 ‘정치적 현상’ 속에서 그다지 자유롭지 못하는 것을 말입니다. 그럼에도 평화로운 이야기, 듣기 편한 이야기를 사제에게 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 질문을 던진 것도 이런 현상을 뼛속 깊이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연말 연초에 교무금 책정 이야기를 하거나 본당의 운영을 위해 어쩔 수 없는 물질적 이야기를 하면 표정이 안 좋아지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오늘날 신부였다면? (이미지 출처 = Pixabay)

이번 주 복음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끊임없이 떠올랐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싫어할 만했구나’ 예수님께서는 끊임없이 돈 이야기, 정치적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그리고 결국 이런 이야기들이 사람들이 그분을 죽음으로 내몰게 되는 기폭제가 되었지요. 요즘 전례에서 제시되고 있는 루카 복음 12장도 그렇습니다. 11장에서 주님의 기도를 알려 주신 예수님께서는 계속 올바른 물질 사용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계십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돈 이야기지요. 지난주 본당의 주일미사 공지시간 때 교무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저 역시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아 지난 주일 복음의 구절을 읽으면서 그냥 웃어 넘겼습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루카 12,21) 사실 이어지는 이번 주 복음의 초반부 이야기도 바로 그렇습니다. “너희는 가진 것을 팔아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 자신을 위하여 해지지 않는 돈주머니와 축나지 않는 보물을 하늘에 마련하여라.“(12,33) 강론 때 이러한 말씀을 본당 신부님께로 들으면 그렇게 썩 듣기 좋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사실 너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12,34)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성당에 돈 내라는 이야기네’라고 하실 수도 있겠지요. 결국 지난 3주간 이어진 루카 복음의 페리코페(Perikope – 전례를 위해 성경 단락을 지정해 놓은 것)는 주님의 기도 뒤에 이러한 이야기를 배치함으로써 우리의 신앙 생활은 현실 삶과 이어져 있음을 이야기해 주는 것 같습니다. 결국 이 글에 제가 처음에 던졌던 질문에 대한 답은 이렇게 귀결됩니다. 예수님이 본당 신부님이었다면 듣기 싫은 이야기를 더 많이 하셨겠구나라고 말입니다.

사실 듣기 싫은 예수님의 말씀은 교우 분들께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복음말씀은 사제인 저에게도 듣기 부담스러운 말씀들로 가득합니다. 예수님께서 사제들을 모아 놓고 이런 말씀을 하시면 사제들도 인간적으로 참 예수님을 어려워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그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의 뜻을 모르고서 매 맞을 짓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루카 12,47-48) 그런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저는 말 그대로 매를 버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저에게 많이 맡기신 그만큼 저에게 더 많은 것을 바라고 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함께 해 봅니다. 그럼에도 듣기 싫은 이야기를 꺼내며 그리고 그에 대한 응답으로 듣기 싫은 이야기를 들으며 살아가는 저에게 주님께서 맡기신 것이 적지 않음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그리고 사제로서 주어진 교회적 책임에 또다시 마음을 다잡습니다. 교회 내에서 사제직무를 수행하는 신부님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저도 이 더운 날 주님을 만나기 위해 애쓰는 여러분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짧게 첨언드립니다. 오늘 말씀은 복음을 묵상하다가 옆길로 새어 버린, 상상으로 시작된 이야기입니다.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거나 논리적으로 접근하지 마시길 청합니다.

유상우 신부(광헌아우구스티노)

천주교 부산교구 사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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