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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아요[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 16]

 

쥐, 달팽이, 방아깨비, 병아리, 파리, 그리고....도 친구?

아침에 눈을 떴는데 나보다 먼저 일어나 있던 다울이가 그런다.

"엄마, 기쁜 소식이야. 우리 집에 쥐가 살아."

"뭐, 뭐, 쥐?"

나는 벌떡 일어나 모기장을 헤치고 부엌으로 나갔다.

"진짜야? 어디 있어?"

"냉장고 뒤쪽으로 들어가는 걸 봤어. 엄청 통통하고 귀엽게 생겼어."

뭣이라? 귀엽다고? 대체 뭔 소리를 하고 있는 거지? 쥐가 귀엽다니 말이 되느냐는 말이다. 다울이가 전해 준 기쁜 소식이 나에겐 너무나 끔찍한 소식이었기에 밖에서 일하고 들어오던 신랑에게 비상 사태라고 부엌에 쥐가 있다고 전했다. 신랑도 나만큼이나 놀라며 그 즉시 쥐 사냥 모드에 들어갔다.

"다른 방이나 욕실로 들어가지 못하게 문 다 닫아. 쥐끈끈이 어디 있지?"

그러고는 쥐의 도주 예상 경로마다 쥐끈끈이를 놓아 두고 다울이가 쥐를 봤다는 냉장고 뒤쪽을 긴 막대기로 찌르며 쥐가 위협을 느껴 끈끈이가 있는 곳으로 달아나도록 유도했다. 근데 아무리 찔러도 쥐가 꿈쩍도 하지 않아 이상하다 여기고 있던 사이, 난로 뒤에서 쥐의 움직임이 포착됐다. 뭐야, 냉장고 뒤가 아니라 난로 뒤에 있다니! 순간이동인가?

그리하여 나는 난로 옆 싱크대 아래쪽을 공략하여 긴 막대기를 흔들고 신랑은 난로 옆과 뒤쪽으로 끈끈이를 몇 개나 놓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다. 글쎄, 쥐가 눈 깜짝할 사이에 슈웅 뛰어올라 끈끈이 2개를 공중에서 건너 달아난 것이다.

"와! 건너뛰었어!"

"저 쥐 진짜 멋지다. 신출귀몰 쥐라고 부를까?"

아이들은 신이 났다. 완벽히 쥐 편이 되어 엄마 아빠가 번번이 헛탕을 치는 것에 환호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쥐 사냥을 포기할 쏘냐, 그럴 수는 없다! 만만한 상대가 아닌 만큼 혼신의 노력을 다 기울이는 수밖에....

그리하여 결국 쥐를 잡았다. 그것도 두 마리나!(한 마리 잡고 나서 끈끈이를 철수하려는 찰나에 다른 한 마리가 또 튀어나와서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모른다.) 과연 몸집도 크고 아주 통통한 녀석들이었는데 끈끈이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대단했다. 나는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어 고개를 돌리고 있었는데 그 사이 신랑은 끈끈이에 붙은 쥐를 처리하러 나가고 다랑이, 다나도 따라 나가고, 내 앞에는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표정의 다울이만 있었다. 다울이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내 품에 와락 달려들며 말했다.

"아빠 정말 너무해. 생쥐도 같이 살면 안 돼? 먹을 거 조금씩 나눠 먹으면 되잖아."

그 앞에다 대고 정말 할 말이 없었다. 나에게 쥐는 더럽고 흉측한 동물일 뿐인데, 다울이는 어쩜 이렇게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지....

병아리 뭐하나 닭장 앞에서 기웃기웃. ⓒ정청라

다른 눈을 열어 주기는 다랑이도 마찬가지다. 다랑이는 유독 작고 작은 생명에게 관심이 많은데, 최근에는 다나 새끼 손톱만큼이나 될까 싶은 방아깨비 잡으러 다니고 있다. 불과 일주일 쯤 전까지는 달팽이에 꽂혀서 애완 달팽이를 기르기도 했고, 그 전에는 파리를 생포하여 작은 통에 담아 키우는 취미를 가지고 있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런 다랑이를 이해할 수가 없어서 '너한테 잡힌 생명 입장에서 보면 그건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일이야. 생각해 봐. 어느 날 갑자기 집채 만한 거인이 나타나 너를 키우고 싶다고 잡아가려 한다면 어떻겠니? 괜히 못살게 굴지 말고 얼른 밖에 풀어 줘' 하며 야단도 쳤는데 차츰 내버려 두게 되었다. 어쩌면 가까이서 만지고 들여다보고 하면서 그 생명에 대해 좀 더 알아가고, 좀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는 것 같기도 해서다.

실제로 다랑이가 달팽이를 키우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나는 달팽이가 다랑이를 알아보는 것 같다는 느낌을 여러 번 경험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다랑이 팔이나 다리에 슬그머니 올라타서는 내려오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내 착각일 수도 있지만 둘 사이엔 서로를 알아보는 묘한 기운이 흐르는 듯했다. 다나가 실수로 방바닥에 있던 달팽이를 밟음으로써 애완 달팽이와의 교감은 거기서 끝나고 말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걸 현실로 확인한 것만으로 나에겐 놀라운 발견! 어쩌면 그동안 내가 적대시하고 열등하게 바라보던 그들의 세계가 진짜가 아닐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시골에 살면서, 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나를 다시 들여다본다. 목줄에 묶여 있는 복실이 산책 한번 못(안) 시켜 줘, 싱크대에 상주하는 개미 떼를 보는 족족 눌러 죽여, 내 눈앞에 얼씬거리는 파리는 끝까지 쫓아가서 때려잡아, 모기를 잡을 때면 희열감에 사로잡혀... 적어도 어디 가서 동물 애호가인 척, 생명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척은 하지 않아야겠다.

덧.

그제 병아리가 태어났다. 닷새쯤 뒤에 나올 줄 알았는데 느닷없이 세 마리나 태어났다. 노란 병아리, 갈색 병아리, 까만 병아리.... 아직도 알을 품고 있으니 앞으로는 또 어떤 빛깔의 병아리를 만나게 될까? 아이들은 시도 때도 없이 닭장 앞으로 가서 병아리가 뭐하고 있나 쳐다보고 있다. 새 생명의 탄생은 종을 막론하고 (종과 종 사이 경계 없이) 사는 낙을 선사하는가 보다.

병아리가 태어났다! ⓒ박다울

정청라

인생의 쓴맛 단맛 모르던 20대에 누가 꿈이 뭐냐고 물으면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막상 엄마가 되고 1년도 채 안 되어 좋은 엄마는커녕 그냥 엄마 되기도 몹시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좋은 엄마'라는 허상을 내려놓았다. 그 뒤로 쭈욱 내려놓고, 내려놓고, 내려놓기의 연속.... 이제는 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살아 있음을 만끽하며 아무런 꿈도 없이 그냥 산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스스로 길이 된다는 것'임을 떠올리며 노래로 길을 내면서 말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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