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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주일과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강신숙 수녀] 7월 21일(연중 제16주일) 창세 18,1-10ㄴ; 콜로 1,24-28; 루카 10,38-42

올해는 한국가톨릭교회가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을 발족한 지 25주년을 맞는 해다. 얼마 전엔 이를 기념하는 ‘담화문’도 발표되었다. 교회가 농촌살리기에 전격 뛰어든 계기는 1993년의 우루과이라운드가 핵폭탄처럼 세계를 강타한 이듬해였다. 당시 전국 농민들의 격렬한 투쟁 선봉은 온 국민의 이목을 단숨에 사로잡고도 남았다.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아시아와 남미 국가들에게는 더 말할 수 없는 치명타가 되었다. 단지 경제적 이유가 전부는 아니었다. 자유시장경제가 지구 전체를 뒤덮을 때 이미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그렇다 치더라도 최후의 보루였던 농산물마저 우리 손으로 지켜낼 수 없다는 것은 그 자체가 황망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이제 더 이상 이 땅에서 지켜 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된 것이다.

이때 교회가 나서서 ‘농촌과 농민, 농사의 위기를 우리 모두의 위기로 인식하자‘고 호소하며 시작한 것이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이었다. 운동의 일환으로 도농 직거래와 상생하는 길을 찾고, 유기농 재배, 우리밀 살리기운동 등을 통해 판로를 개척해 나갔다. 이제 농민운동은 제 스스로를 국가로부터 보호받는 것이 아니라 국가로부터 지켜 내야 하는 이상하고도 고단한 행군이 시작된 것이다. 지난 2015년 백남기 농민 사건은 이런 선상에서 일어난 국가폭력의 대표적 사건이었다. 사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후 세계적으로 수많은 농민이 자결하거나 목숨을 건 투쟁을 이어 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농민투쟁은 다른 여타의 산업노동자와 달리 세를 형성하기 취약한 구조이기 때문에 그 폐해를 견뎌야 하는 시간 역시 가늠할 수 없다.

이런 와중에 낭보가 들려왔다. 지난해, 오랜 숙원이던 ‘농민과 농촌노동자 권리선언문’이 유엔(UN) 총회에서 최종 통과된 것이다. 선언문이 유엔으로부터 채택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우선 국제농민운동조직인 비아 캄페시나(Via Campesina)가 수많은 농민운동조직과 연대해서 의제를 상정하기까지 무려 18년이란 세월이 걸린 것이다. 이들은 신자유주의 농업모델의 세계화와 그것을 지속적으로 확장시키는 국제기구, 정부, 초국적기업을 저지하기 위해 다윗과 골리앗 전쟁을 20년 넘게 멈추지 않고 벌여 왔다. 이제는 저항을 넘어 ‘식량 주권’이라는 새로운 대안을 찾아 다양한 농업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비아 캄페시나가 지켜 내고자 한 농민들의 권리엔 식량주권을 포함해 기후변화, 생물다양성 보호 강화와 토지수탈, 종자에 대한 권리문제, 농산물의 적절한 가격 보장과 여성농민의 권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부문이 들어가 있다. 무엇 하나 놓칠 수 없는 중대하고도 절박한 의제들이다. 따지고 보면 조항 하나하나가 ‘농민의 것’이라기보다는 우리 모두의 것, 온 인류의 것이기도 하다. 밥을 먹고 살아가는 각 개인의 현실이, 그 후손의 미래가 그 속에 담보되어 있다.

그래서 투쟁은 사실상 이제부터다. 이들이 “연결(연대)”을 운동의 가장 핵심 사안으로 내거는 것도 그 때문이다. 비아 캄페시나를 통해 국제 차원과 지역 차원의 운동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연결’은 의제를 만들어 내며, 남성과 여성, 세계의 소농들(어업인이나 목축인, 이주민, 원주민)을 이어 주고 있다. 궁극적으로 비아캄페시나가 지향하는 길은 ‘더 정의롭고 더 평등한 세상’을 위해 서로를 강화하고 서로의 꿈을 이끌어 가는 것이다. 연대가 힘을 지니기 위해선 이념을 뛰어넘는 극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농민과 농촌노동자의 현실을 외면한 채 ”세계정의와 평화, 창조보전“을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각각의 구체적 부문과 현실들이 서로를 더 깊이 공감하고 지지해 나갈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이 절실한 이유다.

국제농민운동조직인 비아 캄페시나와 연대하고 있는 나라들. (2017)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오늘 독서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농민투쟁’이 결실을 내는 데 어떤 태도가 필요한지를 잘 보여 준다. 이야기의 시작은 아브라함이 한창 뜨거운 대낮, 마므레의 참나무 아래, 천막 어귀에서 맞닥트린 세 명의 나그네였다. 그는 불볕더위에 찾아온 이 나그네들을 한걸음에 달려 나가 맞으며 땅에 엎드려 말하였다. “부디 이 종을 그냥 지나치지 마십시오.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시어 발을 씻으시고, 이 나무 아래에서 쉬십시오. 빵도 조금 가져오겠습니다. 원기를 돋우신 다음 길을 떠나십시오.”(창세 18,2-5) 그리고 그는 실제로 급히 천막으로 달려가 밀가루를 반죽하여 빵을 굽고, 소 떼가 있는 데로 달려가 살이 부드러운 송아지 한 마리를 잡게 하고, 엉긴 젖과 우유와 요리한 고기를 가져다 그들 앞에 차려 놓았다. 그리고 그들을 시중들었다.(6-8) 나그네에게 이보다 더한 정성과 예우는 유사 이래 없었을 듯하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태도로 인해 하늘을 움직였고 마침내 불가능했던(보였던) 불모지에서 생명을 싹트게 하였다. 사라가 임신할 수 있는 여자가 되었고, 자손을 번성케 하는 기적이 된 것이다.

아브라함의 행동은 가히 공세적이었다. 만일 그가 점잖기만 했다면 신을 감동시키는 일도, 신앙(생명)을 잇는 그의 후손도 존재치 않았을 것이다. 신과 인간의 거리를 잇는 연결이 지속가능한 미래를 연결하는 ‘농민 권리 선언’과 맞닿아 있다. 점점 더 불덩이처럼 뜨거워지는 지구 앞에서, 달구어진 대지에 발을 담근 농민 앞에서 하늘만 쳐다봐서 될 일이 아니다. 오늘 예수가 마르타에게 밝힌 “가장 중요한 한 가지”(루카 10,42)가 지금은 ‘꺼져 가는 심지를 되살리라’는 하느님의 준엄한 명령으로 들린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농민권리선언“은 전 지구적 기후변화 문제와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매우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이 선언이 함의하는 주요 메시지는 각국의 ”식량 주권과 적절한 소득보장, 농산물의 공정한 가격, 초국적 기업의 인증제 거부권“ 등이다. 특히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GMO의 지배는 인류의 가장 위협적 존재로 다가온 대표적 예다. “참치 통조림에 들어가 있는 카놀라유를 비롯해 수입해 들어온 캐나다산 카놀라는 거의 100퍼센트가 GMO다. 하와이 카우아이 섬에서 생산되는 파파야도 GMO이며, 미국 사과, 미국 양식 연어도 유전자 조작으로 양산하고 있다. 이러다간 세계인이 모두 GMO의 실험대상이 될지도 모르며, 실제로 불임과 난임의 직접적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속출하고 있다. 세계를 지배하는 다국적농업기업 중 신젠타, 아벤티스, 몬샌토, 다우, 바이엘, 듀폰, 바스프 등 7개 기업은 종자와 농화학 분야를 장악하고 있고, 아처, 대니얼스 미들랜드, 벙기, 카길, 루이드레퓌스는 전 세계 곡물 무역 90퍼센트를 차지한다.

강신숙 수녀

성가소비녀회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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