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털 대성당, 그리스도 대성당이 되다

(존 앨런)

미국 캘리포니아의 케빈 밴 주교(오렌지 교구)는 언젠가 자기가 텍사스에서 사제로 일할 때 오렌지 카운티를 방문했던 이야기를 즐겨 한다. 당시에는 미래에 어떤 일이 생길지 전혀 몰랐다.

당시 오렌지 교구의 토드 브라운 주교는 주교 은퇴연령인 75살이 막 되려는 때였는데, 그를 크리스털 대성당으로 데려가 구경시켜 줬다. 이 교회는 가톨릭의 것이 아니라 개신교인 미국 개혁교회의 로버트 슐러 목사가 맡고 있었고, 이 교회에서 중계되는 “능력의 시간”(Hour of Power)이라는 텔레비전 신앙 간증 프로그램으로도 유명했다. 하지만 이 교회는 슐러의 목회 사업이 부도가 나고 나서 매물로 나왔고 결국은 가톨릭교회가 사들였다.

(정확히 말해 두자면, 이 “수정 대성당”에는 수정은 전혀 없다. 반짝이는 겉모습이 멀리서 보면 수정처럼 보일 뿐이다. 외벽이 1만 장이 넘는 유리로 덮여 있다.)

2012년에 오렌지 교구가 협상 끝에 이 교회 부지를 5750만 달러(680억 원)에 사기로 했는데, 이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부동산 일부가 있는 오렌지 카운티의 기준으로는 거의 거저나 다름없었지만, 그 뒤 몇 년에 걸쳐 유지, 보수가 지연되고 개신교식 공간을 가톨릭 전례에 맞게 개조하는 일이 복잡해서, 이 일은 미국 가톨릭교회에서 있었던 일들 가운데 가장 복잡하고 품이 많이 드는 사업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밴 주교는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 “다음에 이곳을 맡을 사람이 누군지 진짜 불쌍하다”고 했었다면서 크게 웃었다.

농담이었는데, 그게 자기가 됐다. 그가 2012년 9월에 오렌지 교구 주교로 임명됐고, 지금은 “그리스도 대성당”이 된 크리스털 대성당이 갑자기 그의 아기가 됐기 때문이다.

대성당은 공식 축성식을 하기는 했지만 오는 2020년 2월이나 되어야 정식으로 문을 열 것으로 보인다.

미국 오렌지 교구에 있는 크리스털 대성당.(수정 성당) (사진 출처 = CRUX)

크리스털 대성당의 이야기는 전형적인 미국식 이야기의 하나로서, 미국 가톨릭 교회사에서 보이는 특성이 적어도 세 가지가 뚜렷하다.

첫째로, 이 이야기에는 미국 주교들이 “벽돌공”으로 전 세계에 알려졌던 시절이 담겨 있다. 19세기와 20세기 유럽에서는 가톨릭 주교들은 자신을 두고 위대한 지식인이라고 하거나 정치적 거물, 또는 영적 지도자라고 부를 만했다. 하지만 이들은 성당은 별로 짓지 않았다. 이미 유럽의 성당들은 중세시대, 르네상스시대, 바로크시대에 거의 다 지어진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온 유산이었고, 학교는 (교회가 아닌) 국가가 맡아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미국 주교들은 멋진 예배공간(성당들)을 세운 것으로만 유명한 것이 아니라 전국에 걸쳐 수많은 가톨릭 학교, 병원 등을 세계사상 가장 멋진 수준의 네트워크로 만든 것으로도 유명하게 되었다. 어떤 주교가 후임 주교에게 빚을 더 많이 남길수록 그는 일을 더 잘한 것이라고 말하곤 했던 시절이다.

그리스도 대성당은 밴 주교가 남기는 유산이 될 것이고, 이 멋진 시설을 방문하는 이라면 그 누구나 그의 이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건물은 1994년에 있었던 노스리지 지진 뒤에 로저 마호니 추기경이 주도해서 지은 로스앤젤레스의 천사들의 모후 대성당 이후로 지난 20년 사이에 생긴 캘리포니아 남부 지역의 두 번째 커다란 예배공간이다.

둘째로, 그리스도 대성당 이야기는 아주 교회일치적이다. 미국 가톨릭교회가 대체로 그렇듯이.

미국은 전통적으로 개신교 문화인데, 더 정확히는 칼뱅주의 개신교다. 그 결과, 가톨릭 신자들은 미국에 온 맨처음부터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평화를 유지해야만 했다.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퍼진 그리스도인 일치주간(1월 18-25일)이 미국에서 시작된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니다. 이 일치주간은 1908년에, 미국 성공회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이의 주도로 그레이무어 수사회가 시작했다.

그리스도 대성당은 개신교 목사가 지었고 개신교적 감각이 건축에 반영돼 있다는 점에서만 교회일치적인 것이 아니라, 부지 안에는 슐러 집안이 목사로 있던 동안 이 교회에 다니던 개신교인들의 유해가 묻힌 묘지가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이 묘지는 “대성당 추모정원”이라 불리는데, 오렌지 교구가 운영하는 4번째 교회묘지이자 유일한 교회일치 묘지이기도 하다. (요즘에는 교회건물 옆에 지금도 새 매장을 하는 교회묘지를 두기는 드문 일이다. 옛날에는 그게 기본이었지만.)

분명히, 이 묘지는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비신자도 묻힐 수 있다. 이 장소에 깃든 다종파적 정신과 역사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끝으로, 그리스도 대성당 이야기에는 미국 가톨릭교회의 또 다른 특징인 기업가 정신이 잘 드러난다. 세계 차원에서 보자면 미국 교회만큼 기업가 정신이 뚜렷한 곳이 없을 것이다.

유럽과 달리, 미국에서는 가톨릭은 기득권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처음부터 미국 교회는 자신의 두 발로 서야만 했고, 반면에 지금도 유럽의 많은 지역에서는 가톨릭은 “교회세”의 형태로 국가로부터 혜택을 받고 있다. (잠깐 옆길로 새자면, 그래서 나는 늘 이렇게 말하곤 한다. 교황청에 내는 헌금액이 해마다 미국 교회와 독일 교회가 1, 2등을 다투지만, 우리가 내는 것은 (독일처럼) 교회세 세금 영수증이 아닌 자발적 기부를 보여 준다는 뜻에서 더 가치가 있다고.)

하지만 미국에서는 가톨릭 신자들은 늘 뭔가 애를 써야만 했다. 세계 자본주의의 모선에서 살면서, 가톨릭교회는 시장이 열리고 (미국인들이) 이에 반응하는 것을 보면서 배웠는데, 이러한 것들에 때로는 세상의 모든 다른 나라들은 놀라 헐떡이곤 했다. 교회는 이러한 자본주의 질서에 적응해 왔고, 문화적으로도 내면화했다.

이 경우에서, 오렌지 교구는 기회가 오자 탁 잡아챈 것이고, 그 결과로 가톨릭 세계 그 어느 곳을 보아도 가장 눈에 띄는 공간 가운데 하나를 얻은 것이다. 이 그리스도 대성당은 진짜 “미국에만 있는”(only in America) 기념비적 건물의 한 전형이며, 미국 가톨릭교회의 기풍을 보여 주는 위대한 장소다.

슐러 목사는 “당신이 그것을 꿈꿀 수 있다면, 그것도 할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이 한마디는 미국적 정신을 아주 잘 드러내며, 미국의 그 어디에서나 마찬가지로 가톨릭교회 안에서도 반영된다.

따라서 7월 17일은 그저 한 교구에서 새 대성당 하나가 축성된 날이 아니다. 이날은 지금 미국 교회가 성학대 위기 등으로 힘든 교회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오렌지 카운티에서 미국 가톨릭다운 이야기가 생생히 이어지고 있음을 잘 보여 주는 날인 것이다.

기사 원문: https://cruxnow.com/news-analysis/2019/07/07/crystal-cathedral-captures-the-american-catholic-story-in-mini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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