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이 물에 잠겼습니다. 물 위에 떠 있는 나무들이 마치 서울이 물의 도시인 듯 신비로운 모습입니다. 강변북로뿐 아니라 반포지구 한강공원도 물에 잠겨 위태로운 모습입니다. 지난 몇 달간 한강르네상스 조성을 위해 공사한 여의도 샛강공원도 물바다입니다. 침수된 한강의 현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새벽 5시에 집을 출발하여 여의도 샛강부터 원효대교를 건넜습니다. 강변북로를 거쳐 다시 한남대교를 건너서 물에 잠긴 반포지구를 찍고 동작대교를 건너 강변북로를 타다가 영동대교를 건넜습니다. 88대로를 타고 한강 상류 팔당댐 방류하는 현장까지 홍수 피해 현장을 돌아보았습니다.
70년 만의 폭우가 '4대 강 사업'이 거짓말임을 증명하다
하늘이 뚫린 듯 비가 쏟아졌습니다. 지난 2주 동안 서울에 내린 강수량은 총 553mm입니다. 1940년 같은 기간 940mm가 내린 이후 최대라고 합니다. 무려 70년 만의 폭우입니다.
그런데 70년 만의 폭우로 한강도 침수가 되었는데, 놀랍게도 한강 침수로 인한 비 피해와 인명 사고가 발생했다는 보도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강수량이 올해보다 훨씬 못해도 인명 피해와 주택 침수 피해로 인한 재산 손실을 보도하는 게 연례 행사였습니다.
지난 서울시 자료를 살펴보면 2001년 7월 14일 이틀간 내린 310mm의 폭우로 40명이 사망하고 104명이 부상당했으며, 주택 9만 375채가 침수되었습니다. 1998년엔 8월 7일 이틀간 378mm가 내려 19명이 사망하고 26명이 부상당했으며, 주택 4만 256채가 침수되었습니다.
그러나 더 많은 596mm나 내렸는데도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것에 대해 서울시는 지난 몇 년 동안 빗물펌프장 19곳을 신설하는 등 수해 방지 능력을 키웠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한강에 70년 만의 폭우가 내려 한강이 잠기고, 여기저기 비 피해 소식이 들리긴 하지만 예전처럼 큰 재난 없이 잘 대처하고 있습니다. 한강은 대한민국 최대의 강으로 정부가 추진하는 4대 강 사업이 실시되는 곳입니다. 정부는 홍수를 예방하기 위해 4대 강 사업을 실시한다고 하는데, 수십 년 만에 쏟아지는 물 폭탄 폭우에서도 영산강 하류 일부를 제외하고는 한강뿐 아니라 4대 강의 피해가 크게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70년 만의 홍수에도 4대 강엔 커다란 비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데, 홍수를 예방하기 위해 22조 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들여 4대 강 사업을 실시한다는 건 사업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요?
홍수는 4대 강이 아니라 지천과 도심 홍수가 주를 이룬다
이번 장마는 특이하게도 중부 지방과 남부 지방을 빠르게 오르내리며 많은 비를 뿌리고 있습니다. 중부 지방에 큰 피해를 입힌 비가 다시 남부 지방에 큰 피해를 주고 오늘은 다시 중부 지방으로 올라온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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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한 적 없는 폭우에 많은 사람들이 '물폭탄'이라는 용어까지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는 이야기겠지요.
70년 만의 폭우, 홍수 대책이 필요한 곳을 입증하다
홍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4대 강 사업을 해야 한다는 정부의 주장이 들려옵니다. 이렇게 막대한 비 피해가 발생하니 이를 사전에 막기 위해 4대 강 사업을 해야 한다는 정부의 주장이 정말 그럴 듯합니다. 그런데 4대 강 사업을 하면 앞으로 아무리 비가 와도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것일까요? 언론에서 전하던 호우 속보의 비 피해 지역을 다시 한 번 천천히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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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황구 지천 변, 성남시 23호선 금곡 IC, 마산과 창원의 산사태, 부산 293개 초등학교 휴교령…. 아니 이곳의 홍수 피해와 4대 강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이죠? 또 다른 언론 보도 화면입니다. 대부분 산사태로 인한 사망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70년 만의 폭우 피해를 보여주는 곳은 둑이 넘친 한강과 낙동강이 아니었습니다. 도로 한 가운데 넘치는 물살을 헤치고 지나가는 차량들과 도시 저지대의 침수, 지천의 범람과 산사태입니다. 분명히 4대 강 사업과는 아무 상관없는 곳입니다.
이번 폭우로 인한 피해 지역과 70년 만의 폭우에도 큰 피해를 입지 않은 서울시 대책에서 우리는 4대 강 사업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홍수 피해 대책'이란 4대 강 사업처럼 강바닥을 파고 보를 쌓는 것이 아닙니다. 현대에 일어나는 홍수는 강 본류가 아니라 지천과 도심 저지대에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바람 치는 안양천에 나가보니
비바람 치는 안양천에 나갔습니다. 안양천 주변 지역을 돌다보니 초등학교 축대가 무너지고 광명역으로 가는 도로변에 여기저기 산사태가 발생하였습니다. 분명 폭우로 인한 피해입니다. 안양천 가까이 있지만 안양천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더욱이 이곳은 안양천변으로 한강 수계에 속하지만 한강과는 더욱 관계가 없습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4대 강 사업과는 아무 상관없이 이런 비 피해가 발생한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폭우로 넘실대는 안양천을 따라 걷다보니 도심 하수구 물과 안양천이 만나는 곳을 볼 수 있습니다. 안양천 물살이 거세고 수위가 더 높으니 도심에서 흘러나오는 검은색 하천 물이 안양천으로 빠지지 않고 역류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홍수 시 물이 빠지지 않아 도심 저지대를 침수하게 하는 가장 큰 원인입니다. 이번 비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것도 이렇게 저지대의 배수 관계 대책을 사전에 잘 세웠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런 것이 바로 진정한 홍수 예방인 것입니다.
현대 도시 홍수의 특징과 원인
요즘 일어나는 홍수의 원인과 특징을 알면 올바른 홍수 대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번 폭우 피해에서 보듯, 요즘 일어나는 홍수는 천재가 아닙니다. 무분별한 도시의 팽창과 하천의 직선화로 인한 인재의 성격이 더 큽니다. 점점 넓어지는 도시는 무리하게 산을 침범하여 길을 넓히고 주택을 지었습니다. 이로 인해 비가 오면 급경사인 절개지에 산사태가 일어나 주택과 도로를 덮쳐 큰 피해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또 도시 주변 숲이 사라지고, 논과 밭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숲과 논과 밭은 쏟아지는 비를 일시적으로 품어주는 자연 댐 역할을 합니다. 홍수 예방을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모든 자연 댐이 사라졌습니다. 이뿐 아니라 도시의 모든 곳이 아스팔트와 시멘트 콘크리트로 포장되었습니다. 특히 요즘 도심은 보도블록마저 걷어내고 시멘트를 두텁게 깔고 그 위에 화강암으로 덮고 있습니다. 도심에 떨어진 빗방울이 땅으로 스며들어갈 공간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땅으로 스며들지 못한 빗물은 어디로 갈까요? 적은 비가와도 일시에 하천으로 유입되니 도심의 저지대는 침수되고, 도시 주변 하천이 범람하여 비 피해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특히 하천 정비의 이름으로 하천을 시멘트 제방으로 직선화하고 습지도 사라졌습니다. 도시 홍수를 가중시키는 원인 중 하나가 된 것입니다.
도심 홍수와 지하수 고갈과의 관계
도심 전체가 불투수층이 되어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지 못하면 빗물은 도시 홍수를 일으키고, 일시에 하천으로 빠져버린 빗물은 결국 지하수의 고갈을 가져옵니다. 이게 바로 도심 하천이 건천화가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청계천에 물을 흘려보내기 위해 년 간 75억 원이라는 물값이 소요된다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지하수는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자원입니다. 인간이 사용하는 수자원 중 많은 부분을 지하수가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도심의 모든 땅이 포장되어 빗물이 땅으로 스며들지 못해 지하수가 고갈되고 있습니다. 일본은 지하수 자원의 보전과 홍수 예방을 위해 빗물을 땅속으로 돌려보내는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지하수와 지표수는 별개가 아니라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하수가 충만해야 하천의 물도 언제나 풍부하게 흐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하수가 고갈되니 도심 하천의 물이 땅 밑으로 빠져나가며 건천이 되는 것입니다. 예전엔 사람이 빠져 죽을 정도로 물이 깊던 하천들이 요즘은 발목도 되지 않는 것을 보신 적이 많을 것입니다. 이게 모두 숲과 논과 밭이 사라지고, 도시 모든 곳이 아스팔트로 포장된 불투수층이 되어 땅속으로 지하수가 스며들지 못해 지하수가 고갈된 까닭입니다.
4대 강 사업이 진정한 홍수 대책이 되기 위해서는
정부는 국민을 위해 그토록 홍수를 예방하려고 합니다. 그런 정부가 도심 주변의 그린벨트를 허물고 시멘트 도시 확장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홍수 예방과는 거꾸로 가는 정책이지요.
정부가 정말 홍수를 예방하고 수자원을 확보하려는 뜻이 있다면 살아있는 4대 강을 죽이는 땅 파기가 아니라, 도심 저지대 배수 처리 개선을 비롯한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지하수자원 보전과 빗물 이용 같은 근원적 대책을 함께 세워야 합니다.
4대 강 사업은 결코 올바른 홍수 대책이 될 수 없습니다. 22조 원이 아니라 100조 원의 혈세를 투입한다 할지라도 여전히 산사태가 발생하고 도심 저지대는 침수되며 지금같은 비 피해는 계속 발생할 것입니다. 4대 강 사업을 하면 마치 전국의 홍수 피해가 예방될 것 같이 주장하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무책임한 잘못입니다.
70년 만의 폭우가 4대 강 사업이 홍수를 예방하는 일이 아니라 '4대 강 죽이기'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4대 강 사업 백지화,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4대 강은 살아있습니다. 4대 강 사업은 홍수 예방도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생명의 강을 죽음의 강으로 만드는 망국적 사업에 불과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올바른 결단을 간절히 기도합니다. <기사제공/뉴스앤조이>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최병성(목사·환경운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