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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종 최신 강론말씀(6월 27-30일)[프란치스코 교종 최신 강론말씀]

(편집 : 장기풍)

“트럼프 김정은 DMZ 만남은 ‘만남의 문화’ 사례"

교종, 한반도 역사적 회동 이룬 주인공들 찬사

 

프란치스코 교종은 6월30일 주일 삼종기도 후 “조금 전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만남의 문화’의 좋은 사례를 보았다며 이날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회동을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판문점에서 김 위원장과 악수한 뒤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군사분계선 넘어 북한 땅에 발을 디딘 최초의 미국 현직 대통령이 됐다. 곧이어 북미정상은 남측으로 넘어와 문재인 대통령과 대화를 나눴으며, 이후 북미 양 정상은 자유의집에서 양자회담을 갖고 50여 분 현안을 논의했다. 교종은 이번 회동의 주인공들에게 기도하는 마음을 전하면서 이 같은 의미 있는 행동이 한반도뿐 아니라 세계를 위해 평화의 여정으로 한 걸음 더 내딛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복음선포 핵심은 순회, 민첩한 자세, 단호한 결단”

프란치스코 교종 6월30일 연중 제13주일 삼종기도 가르침
 

프란치스코 교종은 6월30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연중 제13주일 삼종기도 가르침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후회를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교종은 스승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그분처럼 뿌리를 내리고 확고하며, 항상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교종은 교회 또한 자신의 테두리 안에 안주하거나 안일하게 지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날 교종은 삼종기도 후 한반도평화 대화에 대한 격려와 함께 여름휴가를 보내는 모든 이들을 축복했다. 가르침 내용.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복음(루카 9,51-62)에서 루카 복음사가는 19장에 예루살렘을 향한 예수님의 마지막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메시아의 사명완수를 향한 여정은 지리적, 공간적으로 긴 여행일 뿐 아니라 영적, 신학적으로도 긴 여행입니다. 예수님의 결심은 전적으로 근본적이었으며 그분을 따르는 이들은 그 결심에 맞추어 판단하도록 부르심 받았습니다. 복음사가는 전적으로 끝까지 예수님을 따르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요청되는 바를 드러내는 세 종류의 사람, 곧 세 가지 경우의 성소(聖召)를 오늘 우리에게 소개합니다. 첫 번째 인물은 그분에게 이렇게 약속합니다.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루카 9,57) 얼마나 관대합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은 굴이 있는 여우들이나 보금자리가 있는 새들과 달리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루카 9,58)고 대답하십니다. 이는 예수님의 절대적인 가난을 뜻합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당신 백성의 길 잃은 양떼에게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기 위해 아버지의 집을 떠났고 안정된 모든 것을 포기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당신 제자들인 우리에게 세상에서 우리의 사명은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순회하는 것임을 알려주셨습니다. 교회는 본성상 움직이는 것이고 자신의 테두리 안에서 안주하거나 안일하게 지내서는 안 됩니다. 복음을 길에서 전하고 인간의 주변부와 실존적인 변방에 도달하기 위해 더 넓은 지평에 열려 있고 파견됩니다. “교회는 파견되었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인물입니다.

예수님께서 만난 두 번째 인물은, 그분에게서 직접 부르심을 받았지만,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루카 9,59)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에 토대를 둔 합법적 요청입니다.(탈출 20,12 참조)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라.”(루카 9,60) 의도적으로 도발적인 이 말씀을 통해 그분께서는 가족처럼 가장 중요한 현실보다 당신을 따르는 추종과 하느님 나라의 선포의 우선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죽음의 사슬을 부수고 영원한 생명을 시작하며, 지연을 용납하지 않고 준비되고 자발적인 자세를 요청하는 복음을 전해야 하는 민첩성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순회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확고하고 기다리지 않으며, 그 순간에 민첩하게 행동합니다. 

세 번째 인물은 또한 예수님을 따르기를 원하지만 한 가지 조건을 내겁니다. 곧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온 다음 따르겠다는 조건입니다. 이 사람은 스승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습니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루카 9,62) 예수님을 따르는 추종은 후회와 뒤를 돌아보는 눈길을 배제하고, ‘결심의 덕’을 요청합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교회는 순회하고 서둘러 즉각적으로 행동하며, 단호하고 민첩하게 행동합니다. 예수님에 의해 주어진 이런 조건들의 가치, 곧 순회, 민첩한 자세, 단호한 결단은 인생의 중요하고 선한 일들에 “아니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본적인 목표를 강조합니다. 곧,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한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견줄 바 없는 은총을 갚기 위해 사랑을 통해 이루어진 자유롭고 의식 있는 선택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자기 자신을 발전시키는 방식은 슬픈 일입니다!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해, 다시 말해 경력을 쌓기 위해, 자신이 중요하다고 느끼거나 특권적 지위를 얻기 위해 예수님을 따르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불행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과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사로잡히길 바라십니다. 환대와 돌봄이 가장 필요한 형제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친밀해지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변화되는 마음의 열정 말입니다. 바로 그분께서 사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여정 중인 교회의 이콘이신 동정녀 마리아께서 기쁨으로 주 예수님을 따르고 새로운 사랑으로 구원의 기쁜 소식을 형제들에게 선포하도록 우리를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6월 마지막 주간에 모든 노동자들이 여름동안 가족과 함께 유익한 휴가기간을 보낼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최근 폭염의 결과로 큰 고통을 겪은 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특히 병자와 노인들, 노동현장과 외부에서 일해야 하는 모든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아무도 버림받거나 착취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시간 로마인들과 순례자들, 가족과 본당단체들, 연합회들, 여러분 모두에게 진심어린 인사를 보냅니다. 특히 성녀 엘리사벳 수녀회 회원들과 사르티라나 로멜리나 지역에서 자전거로 온 순례자들에게 인사합니다. 많은 폴란드 신자들이 보이네요. 폴란드 신자 여러분들에게도 인사합니다. 훌륭합니다! 모든 분들에게 좋은 주일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부디 저를 위해 기도하시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즐거운 점심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서로의 다름은 우리를 풍요롭게 합니다”

교종, 성 베드로와 바오로 대축일 삼종기도 가르침
 

프란치스코 교종은 6월29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삼종기도 가르침에서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와 다양성의 풍요로움에 대해 설명하면서 타인을 ‘악의나 질투 없이’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르침 내용.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우리가 대축일로 지내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는 가끔 이콘에서 교회를 상징하는 건물을 각각 떠받치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오늘 복음말씀을 떠올립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다.”(마태 16,18) 예수님께서 ‘교회’라는 단어를 처음 말씀하셨지만 저는 이를 명사로 보기보다 ‘나의’라는 소유격 형용사로 생각하도록 여러분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곧, 내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외적 실체를 갖춘 교회를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교회를 기르는 큰 사랑을 표현하십니다. 곧, ‘내 교회’인 우리에게 애정을 지니십니다. 성 바오로는 이렇게 씁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해 당신 자신을 바치셨습니다.”(에페 5,25) 다시 말해 사도는 예수님께서 교회를 당신의 신부처럼 사랑하신다고 설명하십니다. 주님에게 우리는 단지 믿는 이들의 단체나 종교적 기구가 아니라 그분의 신부입니다. 우리의 잘못과 배신에도 불구하고 그분께서는 따뜻한 애정으로 당신 교회를 바라보시고 절대적 충실성으로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그날처럼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교회, 너희는 내 교회다.” 우리 또한 이 말씀을 되풀이할 수 있습니다. “내 교회”. 배타적인 소속감으로 내 교회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포괄적인 사랑으로 말해야 합니다. 타인에게서 우리를 구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과 더불어 지내는 아름다움을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일치와 개방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교회는 나의 자아와 욕망에 부응하기 때문에 ‘내’ 교회가 아닙니다. 나의 애정을 거기에 쏟기 때문에 ‘내’ 교회입니다. 내가 돌보기 때문에 이콘 속에 있는 사도들처럼 나 또한 교회를 떠받쳐주기 때문에 내 교회입니다. 어떻게요? 형제적 사랑을 통해서입니다. 우리의 형제적 사랑을 통해 우리는 ‘내 교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이콘에서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가 서로 팔을 껴안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그들 사이에는 많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삶의 경험, 성격, 행동방식과 감수성이 서로 다른 어부와 바리사이입니다. 그들 사이에 대립되는 견해와 거리낌 없는 논쟁은 적지 않았습니다.(갈라 2,11 이하 참조) 그러나 그들을 일치시켰던 분은 한없이 가장 위대한 분이십니다. 곧 예수님께서 두 사람의 주님이셨고 두 사람 모두 “내 교회”라고 말씀하시는 그분에게 “나의 주님”이라고 말했습니다. 신앙 안에 형제들은 교회 안에서 형제요, 자매가 되는 기쁨을 재발견하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서로 많이 다른 두 사도를 일치시키는 이 축일에 우리 각자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면 아름다울 것입니다. “저와는 다른 사람 때문에 감사합니다, 주님. 그는 내 교회를 위한 선물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다름이 우리를 풍요롭게 합니다. 바로 형제애입니다. 악의나 질투 없이 타인의 자질을 존중하고 타인의 재능을 인정하는 것은 좋은 태도입니다. 질투! 질투는 마음속에 괴로움을 유발합니다. 마음에 식초를 뿌린 격입니다. 질투하는 사람들은 괴로운 시선을 갖고 있습니다. 질투하는 사람을 발견할 때 많은 경우 이렇게 질문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저 사람은 오늘 아침 무엇을 먹었을까? 카페라떼를 마셨을까? 아니면 식초를 마셨을까?” 왜냐하면 질투는 괴로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삶을 괴롭게 만듭니다. 반면에 우리가 서로에게 속해있음을 아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우리는 같은 신앙, 같은 사랑, 같은 희망, 같은 주님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속합니다. “우리 교회! 형제애”라고 말하는 것은 멋진 일입니다.

요한복음 말미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요한 21,17) 우리에 대해 말씀하시는 겁니다. ‘내 교회’라고 말씀하셨을 때와 똑같이 따뜻한 애정을 가지고 ‘내 양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크신 사랑과 따스한 애정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당신의 사람들로 느끼십니다. 바로 이것이 교회를 건설하는 사랑입니다. 사도들의 전구를 통해 오늘 우리의 교회를 사랑하는 은총을 청합시다. 교회 안에서 형제자매들을 볼 줄 아는 시선, 우리를 위해 예수님이 가지고 계신 부드러운 사랑으로 타인을 받아들일 줄 아는 마음을 청합시다. 아울러 우리처럼 교회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힘, 기도하고 사랑하는 힘을 청합시다. 우리와 똑같이 생각하는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혹시라도 이는 뒷담화와 다릅니다. 절대 험담하지 말고 기도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사도들 사이에 일치를 가져다 주셨고 그들과 함께 기도하셨던 마리아께서(사도 1,14 참조) 교회 안에 형제와 자매처럼 우리를 보호해주시길 바랍니다.
 

 

“식량 부족은 모든 사람들의 책임입니다”

교종, 유엔식량농업기구 총회 참가자들에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6월27일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제41차 총회 참가자들의 예방을 받았다. 이 자리에는 호세 그라치아노 다 실바 전임 사무총장과 이번에 새로 선출된 취동위 신임 사무총장이 함께 했다. 이 자리에서 교종은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제안하는 전 세계 ‘제로 헝거’(Zero Hunger) 목표는 최근 수십 년간 진보에도 불구하고 식량부족과 식수공급을 위한 싸움이 큰 도전으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말씀 내용.

형제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존중하십시오. 먼저 ‘연민의 부족’, ‘다수의 무관심’, ‘국제적 의무에 응답할 때의 사회적, 정치적 의지 부족’ 등 세계적 기아문제의 비극을 야기하는 원인에 개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식량과 물부족은 가장 가난하고 약한 나라들의 내부적 문제나 그들에게만 유보된 문제가 아니라 우리 각자에 관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우리의 태도를 통해 많은 우리 형제들의 고통을 조장하거나 제지하면서 어떤 방법으로든 거기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 형제들의 절망의 고함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가장 기본적인 그들의 권리가 존중받을 수 있도록 모든 수단을 취하라는 부르심을 받습니다. 젊은 세대들이 이 같은 사회적 드라마를 더 이상 묵인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면서 이 증언을 미래로 전하도록 하는 장단기적 투자를 통해 낭비를 줄이고 사회적 책임에 대한 자각을 높이는 게 필요합니다. 환경의 불안정, 식량의 불안정, 이주의 흐름 등은 서로 명확한 연관이 있습니다. 최근 난민 수의 세계적 증가는 우리에게 국가의 문제가 모든 인류의 문제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토양의 탄력성과 생태의 지속가능성을 강화하면서 가장 취약한 지역의 농업개발을 장려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기술에 투자하고 개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발전을 위해 혁신적으로 연대하는 정책을 계획하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모두에게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수품에 대한 접근을 보장할 수 있도록 결정적인 조치를 조정하는 관계자들인 FAO와 국제기구 역할이 중요합니다. 특히 정부, 민간, 시민단체 측면에서 이러한 다자적 기구를 유지하는 게 필요합니다. 바티칸도 세상의 기아퇴치를 위한 국제적 노력을 지원하고 지구와 인류전체를 위해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하면서 FAO와 협력하고 있습니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2006년 은퇴. 현재 뉴욕에 사는 재미동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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