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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하느님, 은총을 베푸시는 예수님 그리고 친교의 성령[유상우 신부] 6월 16일(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잠언 8,22-31; 로마 5,1-5; 요한 16,12-15

지난주 성령 강림 대축일을 끝으로 부활시기를 마무리하고 교회는 다시 연중시기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연중시기의 두 번째 시기를 지내며 각 주일마다 주님에 대한 신앙의 핵심을 드러내는 두 가지 축일을 지냅니다. 그중 첫 번째가 이번 주일에 기념하는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미사를 시작할 때 모습을 한 번 떠올려 보시겠습니까? 미사를 시작할 때 사제는 처음에 인사로써 주님의 현존을 선포합니다. 몇 가지 양식이 있는데, 예를 들어서 짧게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라든가 주교님의 경우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라는 양식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중 첫 번째 양식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입니다. 미사 때 자주 쓰는 이 인사는 단순히 미사를 시작하면서 ‘서로 잘 지냈냐’ 혹은 ‘반갑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랑의 성부 하느님과 은총의 성자 예수님 친교를 이루시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 함께하시기를 기원하는 것입니다. (이를 압축하여 표현한 것이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또한 사제의 영과와 함께’라는 응답은 나뿐만 아니라 미사를 집전하는 성직자에게도 주님께서 함께하시기를 기원해 주는 것입니다. 근데 이 인사는 갑자기 생겨난 것이거나 어느 유명한 신학자가 지어낸 것이 아닙니다. 이 기도는 성경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더 자세히 말씀드리자면 사도 바오로의 인사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많은 경우에 자신의 편지의 처음과 끝에 그 편지를 받는 사람들을 향하여 주님의 축복을 전하는 인사를 합니다. 시작예식의 또 다른 양식인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리시는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는 필리피서 1장 2절에 드러납니다.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필리 1,2) 삼위일체의 모습을 잘 드러내는 첫 번째 양식은 코린토2서에서 드러납니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2서를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빕니다.’(2코린 13,13) 가톨릭 교회는 이 바오로의 인사들을 모티브로 해서 미사의 시작을 알립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사랑과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은총과 일치의 성령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처음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이러한 인사로 미사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미사를 시작할 때 사제는 처음에 인사로써 주님의 현존을 선포한다. ⓒ정현진 기자

이렇게 성부 하느님께는 사랑을, 성자 예수님께는 은총을, 성령께는 일치, 친교라는 단어를 붙이는 이유를 살펴보면 이번 주일 우리가 기념하는 삼위일체의 의미를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태초에 인간을 창조하시고 구약에서 보다시피 이스라엘 민족과의 계약을 통해서 당신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의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 하느님 사랑의 상징이 바로 성자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하느님의 모습을 보고 우리는 사랑의 하느님을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시면서 여러 가지 가르침과 행적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십니다. 그리고 당신 스스로를 십자가 상의 제물로 바치시면서 하느님께 향하는 길을, 구원의 은총으로 가는 길을 우리에게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 생애의 가르침과 기적, 그리고 당신의 파스카 여정과 죽음과 부활은 다름 아닌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총은 다름이 아닌 우리가 사랑이신 성부 하느님을 믿고 구원을 받게 하는 은총인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성령을 약속하셨지요. 그리고 우리는 성령을 통해 한 믿음으로 주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부활시기의 후반부와 성령 강림 대축일 때에 배치된 독서와 복음들에서도 드러나는 바와 같이 우리들 각자의 다양한 모습과 다양한 성령의 은사를 통해 서로 친교를 이루고 한 분이신 주님을 고백할 수 있는 일치와 친교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삼위일체에 대한 신학적 성찰이나 다양한 교리를 말씀드릴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드러나는 삼위일체의 신비는 결국 사랑이신 하느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알게 되고, 그 은총을 이제 성령 하느님께서 함께하시는 일치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인간의 언어로 완벽히 설명하는 데는 분명히 한계가 있습니다. 왜냐면 그것은 신비이기 때문입니다. 이 신비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많은 인간적인 예들을 들 수 있지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삼위일체의 신비를 우리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번 주일 복음의 마지막 구절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요한 16,15)는 말씀은 다름이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당신과 성령 사이의 일치를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따라 하느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총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에 함께하도록 특별히 성령 하느님의 일치의 은혜를 청했으면 좋겠습니다.

유상우 신부(광헌아우구스티노)

천주교 부산교구 사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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