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속에서 부처 말씀 듣는 움직이는 선원... 용산은 움직이는 성당

얼마전 '이명박 정권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용산범대위)는 용산참사 6개월이 되는 오는 7월 20일까지 정부에서 전향적인 태도로 협상에 응하지 않으면 거리로 나오겠다고 밝혔다. 순천향병원 냉동고에 안치되어 있는 시신 5구와 함께 청와대와 시청앞 서울광장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한겨울에 발생한 사건이 한여름을 지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 봄부터 용산4구역 참사현장에서는 문정현 신부가 매일 미사를 자청하고 나섰으며, 통상 수도원 등지에서 하던 사제피정을 참사현장을 지낸 이강서 신부가 현장에 남기로 작정하고 유가족들과 동고동락하며 지금까지 지내왔다. 

사제들의 용산 천막농성, 그리고 경찰의 문정현, 이강서, 나승구 신부 등의 경찰에 대한 폭행사건이 거듭되면서 최근엔 전국에서 수시로 올라오는 사제들이 천막을 떠나지 않고 용산에서 기도하고 매일같이 하늘의 뜻을 묻고 있다. 이들은 성당이 아닌 골목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감실 앞이 아닌 빈소 앞에서 기도하고, 사제관이 아닌 뜨거운 천막 아래서 성경을 읽고 묵상에 잠긴다. 하느님과 마음으로 대화를 나눌 뿐 아니라 사람들 속에서 하늘의 뜻을 읽는다. 이야말로 거리의 수행이요, 세상 안에서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이참에 불교계에서는 조계종의 정체된 수행 풍토를 쇄신하기 위해 '야단법석(野壇法席)'을 마련한다고 한다.  '야외에 단을 세워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라는 야단법석은 오는 8월 14~18일까지 지리산 실상사에서 열리는데, 공식 명칭은 '정법불교를 모색하는 지리산 야단법석'이다.

세미나 형식으로 진행될 이번 지리산 야단법석에는 조계종 교육원장을 역임한 대강백으로 종단 내외의 신망을 얻고 있는 무비 스님과 불교 내 손꼽히는 선사인 혜국 스님, 1980년대 서의현 총무원장 체제에서 총무부장을 역임하다가 종단직을 떠나 인도와 티베트, 중국을 떠돌며 구도행에 나섰던 향봉 스님이 나서서 발언한다. 이들은 기존의 수행법을 진단하면서 지나치게 보수화하고 형식적이 된 한국 불교의 문제점을 밝히고 '대중속에서 낮은 곳에서 수행하는' 대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생명평화 탁발순례에 나섰던 도법스님.(사진출처/생명평화결사)
<문화일보>에 따르면, 도법 스님은 이 모든 시도가 "정법을 세우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한 이 자리에서 "용산참사 같은 대중의 고통에 대해 불교계가 성심을 다했는지, 또 어려움을 겪는 대중들이 많은데 선방에 은거하며 참선만 하는 게 맞는 건지 반성한다"며 "이런 반성을 통해 좀 더 낮은 자리에서 함께하는 불교상을 정립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실상사 주지를 역임했던 도법 스님은 이미 올해 동안거 기간에 지리산 800리를 도보로 묵언순례하며 선 수행의 새 틀을 모색할 '움직이는 선원'을 세우고 조실 스님으로 무비 스님을 추대했다고 한다. 

본래 야단법석(野壇法席)은 법당이 아닌 마당에서, 저자에서 설법을 논한다는 점에서 용산 천막기도처의 천주교 사제들과 맥락이 닿아 있다. 용산천막이 다름 아닌 '움직이는 성당'이 아니던가. 다만 차이가 있다면, 스님들이 행하는 이번 지리산 야단법석은 불교계 내부의 정화와 쇄신을 위해 고명한 스님들이 모이는 자리라면, 용산천막 기도처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유족들을 위로하고 연대하는 사제들이 모이는 자리라는 점이다.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야단법석의 유래
신라(新羅)의 원효(元曉)스님이, 좌천(지금의 척판암)에서 선정삼매에 들어있었다. 문득 관(觀)하여 살펴보니, 중국 종남산(終南山) 운제사(雲際寺) 뒷산이 여름장마로 무너져 내리려는 찰나였다.

이때 운제사에는 천 명이 넘는 大衆이 정진하고 있었는데, 위급함을 알고 깔고 앉아있던 널빤지를 그 곳으로 날려보냈다.

그 때 운제사의 한 스님이 도량을 거닐다가 이상한 물건이 마당 한 가운데서 빙빙 돌고 있는 것을 보고 이 사실을 대중들에게 알렸다. 천 여명의 대중들이 공중에 떠도는 이상한 물체를 보려고 모두 마당으로 나오자, 그 순간에 뒷산이 무너지면서 법당을 덮쳐 절이 허물어졌다.

아슬아슬하게 기적처럼 목숨을 건진 대중은 공중에 떠있는 그 물체를 향해 합장예배를 드렸더니, 그 널판지가 마당에 떨어졌는데,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해동 원효 척판 구중(海東 元曉 擲板 救衆 : 신라의 원효가 널판지를 던져 대중을 구하다)”

이 글을 읽은 대중들은 원효의 도력을 흠모하여, 신라땅으로 원효를 찾아와서 弟子되기를 간청하였다.
원효는 그들의 청을 받아들여 지금의 내원사를 창건하고, 원적산 산중에 88암자를 두어 일 천여 대중을 가르쳐 득도하게 하였다.

들판에 마련된 설법자리가 얼마나 성황을 이루었던지, 야단법석(野壇法席)이란 말이 생겨나 오늘날도 쓰여지고 있다. 넓은 들판에서 화엄경을 강설하였다하여 뒷날 사람들이 ‘화엄벌'이라 불렀다.

천 여명이 득도하여 성인이 되었으므로, 이때부터 원적산을 천성산(千聖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 잡역을 하던 열두스님 중 여덟명이 대구 동화에서 득도했으므로, 그 절이 있는 산을 팔공산(八空山)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나머지 네 스님은 문경 대승사(大乘寺)에서 득도하였다하여 그 산을 사불산(四佛山)이라 이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도가 높은 원효대사 한 사람의 공덕은 무량수(無量壽)의 생명력으로, 천 여명의 생명을 구하고, 득도를 하게 하였다는 생생한 증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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