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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움직이는 숨겨진 질서 ‘소통’
  • 고유기 ( . )
  • 승인 2009.07.16 00:03 | 최종수정 2009.07.16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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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통’이 화두다.

<경향신문>에서는 국내 지식인 100명을 대상으로 소통인물 설문을 실시해 이를 중요하게 다뤘다. 시민사회 진영에서도 최근 시국을 매개로 한 전국적인 시민운동 연대조직을 추진하면서, 시민사회운동의 연대와 소통의 일방성도 시국에 대한 정세인식과 더불어 스스로 성찰해야 할 일로 전제해 두고 있다.

이른바 ‘명박산성’으로 표상화된 소통의 문제가 피아의 가림 없이 한국사회 민주주의 진전을 위한 중요한 척도로 얘기되는 듯하다. 결과만 놓고 보면 이명박 정권의 일방주의 행보가 우리사회에 소통의 중요성을 널리 퍼뜨린 셈이다.

소통이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것 같다. 종종 소통하면 ‘대화’를 떠올린다. 대화는 소통의 전제이지만 그 자체만으로 소통의 효과를 낼 수는 없다. 대화가 설득이나 전달의 수단으로만 생각한다면 이를 소통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박원순은 이명박 대통령이 재래시장 떡볶이집을 찾았다고 이를 소통이라 할 수 없다며 일갈하고 있는 것이다. 재래시장 구멍가게 상인에게 구태의연한 상술 운운하며 인터넷 직판장 만들어 승부 걸라는 이명박 소통법은 소통을 왜곡할 뿐이다.

소통은 생태계와도 같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복잡한 것으로 느껴진다. 문제는 이 복잡한 ‘얽힘’과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복잡한 얽힘의 관계에서 소통은 언제나 ‘일치’보다는 다름과 때로는 갈등마저 동반하는데, 이명박식 소통법은 이를 불필요한 것으로 묘사할 뿐이다. 조용히 지나가면 문제 없을 텐데, 결과만 좋으면 모두 해결되고 소통은 소용없는 ‘과정’일뿐인데, 괜스레 소통한답시고 이것저것 다툼거리만 만든다는 식이다. 더구나 권력의 입장에서 이러한 소통법은 자신의 자존심이 상처 입는 과정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소통의 복잡성은 그 자체로 생태계와도 같은 질서를 담보한다는 점을 파악한다면, 그 질서는 공존을 향한 관계의 산물인데 최소한 부자들만을 위한 정책이나 기득권을 지속시키려는 것에서 빠르게 벗어나야 한다. 이미 세상은 공존을 미래의 키워드로 핵심 짓고 있다. 적어도 이를 모르는 CEO라면, 실패한 경영자를 자처하는 것이다.

“더 많은 것은 다른 것이다(More is Different)"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앤더슨(P.W. Anderson)의 이 말은 소통의 전제로서 다름을 인정하라는 사회학적 언사를 연상케 한다. 한편으로 이 말은, 이른바 창발(생산성)은 이미 ‘부분과 전체의 다른 특성의 출현’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미 소통은 좋은 정치, 좋은 경제, 좋은 사회를 위해 필히 적응해야 할 ‘시스템’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야말로 소통은 ‘세상을 움직이는 숨겨진 질서’인 셈인데, 이명박 정권은 정치사회의 주인노릇에만 골몰하기보다, 그 스스로가 사회정치의 담지자로서 자신을 위치 짓고 이를 잘하기 위한 소통의 원리부터 제대로 살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6월 25일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골목상가를 방문해 상인들과 어묵을 먹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 청와대사진기자단)

2. 제주에서도 소통이 화두가 되고 있다.

우선, 이명박 대통령식 소통법은 이 곳 남단의 섬, 제주에서도 논란이 되었다. 얼마 전 국내 언론들은 요즘 벌어지는 제주도지사 주민소환을 두고 이대통령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언급을 드러냈다고 전하였다. 서울 코엑스 투자박람회장에서 제주도지사가 보이지 않는다며 던진 말이라고 하는데, 속내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문제는 무슨 사정으로 제주 주민들이 도지사 소환에 나섰는지, 분위기가 어떤지 아랑곳없이 대통령 신분으로 개입하려는 자체다. 들어보기도 전에 대통령으로서 단지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공교롭게도 제주도지사도 결국은 소통의 문제로 광역지자체장 최초로 소환대상에 오르는 오명에 처했다. 제주도민들은 이명박 정권의 그 ‘산성’을 일찍이 경험했다고 할 수 있다. 어찌나 비슷하던지, 의료민영화 하겠다는 것이나 기업프렌드리 운운하는 것 등이 영리병원 도입, 자유시장모델을 만들겠다는 식의 제주도지사의 행보와 꼭 닮았다. 더욱이 이를 추진하는 방식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다 비판여론에 부딪히니까 안하겠다고 했다가, 또 다시 은근슬쩍, 혹은 포기한적 없다고 또 추진한다.

국면전환을 위해 이미지 정치와 언론장악, 홍보에 열을 올리는 것도 매우 닮아 있다.

그랬던 제주도지사가 소환정국에 와서는 지금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 민박하고 있다. 주민소환의 도화선이 된 해군기지 문제를 풀어보겠다고 뒤늦은 민심행보에 나선 것이다. 성찰적 전향은커녕 아무런 해법도 갖추지 않은 채 무조건 ‘대화’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재래시장에 나선 자체로 민심교감이라고 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소통법과도 참 닮아 있다. 소환문제를 갈등으로 몰고 가면서 자신은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일체의 권리를 포기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이를 믿는 도민은 많지 않다. 이미 진정성 없음이 탄로난지 오래기 때문이다. 국민소환제도는 아직 없지만, 제주도지사 소환을 위한 서명과정에서는 “다음은 이명박”을 주문하는 사람이 꽤 있었다. 이 사실들을 근거로, 한 발짝 앞서 ‘명박산성’을 겪은 대가로 벌어지는 제주도민들의 소환운동을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 정국에서 깊이 헤아려볼 일이다. <기사제공: 인권연대>

고유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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