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종 최신 강론말씀]

(편집 : 장기풍)

루마니아 사도적 순방, 순교자 7위 시복식 주례

 

프란치스코 교종은 5월 31일부터 6월 2일까지 루마니아를 방문했다. 교종의 이번 방문은 30번째 해외순방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트위터를 통해 5월 31일부터 시작하는 루마니아 사도적 순방은 순례자로서 루마니아 정교회 형제들과 가톨릭 형제들이 함께 걷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교종은 이 여정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강력한 많은 행보들의 연장선에서 출발하며, 루마니아 정교회 신자들과 가톨릭 신자들 사이의 대화에 대한 새로운 의지를 보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종은 루마니아를 방문하는 짧은 일정 중에 순교자 7위의 시복식을 주례했다. 순교자들은 신앙을 지키다 희생된 그리스 가톨릭 주교들이다. 한편 교종은 루마니아로 떠나기 며칠 전 루마니아 국민들에게 영상 메시지를 발표했다. 메시지 전문.

사랑하는 루마니아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과의 만남이 이제 며칠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기쁜 마음으로 여러분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으며, 여러분 모두에게 진심어린 인사말을 전합니다. 저는 순례자이자 형제로서 아름답고 따뜻한 나라 루마니아를 방문하고자 합니다. 저를 초대해 주시고 다방면으로 협조해주신 루마니아 대통령과 당국자 여러분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저는 기쁜 마음으로 루마니아 정교회 총대주교와 정교회 주교단, 그리고 가톨릭 사목자들과 신자 여러분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를 일치시키는 신앙의 유대관계는 사도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특별히 베드로 사도와 안드레아 사도 사이에 일치를 이루게 했던 유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피를 나눈 형제 사이였던 이 두 사도가 루마니아에 신앙을 전파했으며, 주님을 위해서도 피를 흘렸습니다. 루마니아에는 최근까지도 많은 순교자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이번에 기쁜 마음으로 복자품에 올릴 그리스 가톨릭 주교 순교자 7위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이들이 고통 속에서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지켜내고자 한 소중한 유산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 공동의 유산은 우리로 하여금 같은 유산을 공유하는 형제들과 멀어지지 말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걷기 위해 여러분께 갑니다. 우리가 우리의 뿌리와 가정을 지킬 줄 알 때, 우리 아이들과 가까이 있는 형제들의 미래를 돌볼 때, 두려움과 불신을 넘어설 때, 우리 사이를 갈라놓는 벽을 허물 때, 우리는 함께 걸을 수 있습니다. 저의 방문을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계신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축복을 보내며 기도 중에 가까이 있겠다고 약속합니다. 끝으로 여러분, 저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곧 뵙게 될 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사랑은 이데올로기의 억압을 이깁니다”

교종, 루마니아 주교 순교자 7명 시복식 거행

 

루마니아를 사목방문 중인 프란치스코 교종은 방문 마지막 날인 6월 2일 오전 7위의 그리스 가톨릭 주교 순교자들의 시복식을 거행했다. 교종은 이 복자들을 본받아 자유와 자비, 용서의 증인이 되라고 강력히 초대했다. 또한 교종은 과거 무신론자들처럼 인간, 생명, 가족의 가치를 경멸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에 반대하여 당시 복자들처럼 투쟁해야 하는 것은 우리들 몫이라고 강조했다. 루마니아 국가 양심을 옹호했던 장소인 블라지 자유의 광장에서, 1848년 혁명이 일어난 지 1세기가 지난 후인 1948년 공산주의 정부는 그리스 가톨릭 신자들에게 맹렬한 박해를 가하면서 바티칸과의 관계를 단절하라고 요구했다. 불응하는 7명의 주교들을 감옥에 가두고 끝내는 목숨을 빼앗았다. 1948년 11월 28일 자정 무렵 체포된 주교들은 1989년까지 수감생활을 했으며 그동안 바티칸 라디오를 통해 루마니아어로 거행된 유일한 전례가 신자들에게 전파됐다. 2019년 6월 2일 베드로의 후계자인 프란치스코 교종은 공산정권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들의 목숨을 내놓았던 7위의 그리스 가톨릭 주교 순교자들을 복자품에 올렸다. 교종과 시복식에 참석한 약 8만 명 순례자들 사이에는 강하고 감동적인 교감이 있었다. 그들 중에는 순교자 7위의 친척들도 있었고 박해의 증인들 혹은 증인들의 자녀들이 있었다. 그들은 처음으로 블라지를 방문하는 교종을 광장에서 밤새워 기다렸다. 루마니아 클라우스 요하니스 대통령과 영부인, 비오리카 던칠러 총리, 블라지 시장, 루마니아의 마르가리타 공주도 참석했다. 교종은 주교 순교자 7위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했다. 바실 애프트니 주교, 발레리우 트라이안 프렌티우 주교, 이오안 수키우 주교, 팃 리비우 치네수 주교, 이오안 발란 주교, 알렉산드루 러수 주교와 율리우 호쑤 추기경이다. 복자들의 휘장 대신 7위 주교들이 함께 그려진 이콘이 제단 한쪽에 안치되는 동안 이 역사적인 축제를 알리는 성당의 종이 울려 퍼졌다. 당시 이 7위의 새 복자들만 박해를 받았던 것은 아니다. 가톨릭 공동체의 삶은 ‘무신론 독재정권’에 의해 험난한 시련을 겪었고, 그리스 가톨릭교회와 라틴 전례 가톨릭교회 모든 주교들이 투옥됐다. 그들과 함께 많은 신자들도 감옥에 갇혔다. 공산정권 영향력이 사람들의 삶과 신앙보다 우선할 때, 자유를 위한 공간이 말소될 때, 땅은 고통을 잘 알게 된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는 사람의 파멸과 일치하지 않는 목소리에 이르는 불신에 바탕을 둔 고통을 여러분은 겪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의 맹렬한 박해 앞에서 7명 주교들은 모범적 사랑과 신앙을 드러내고 순교의 길을 택했다.

이날 시복식 전례는 박해를 기억하며, 한때 순교자들의 감옥 창살이 교종의 의자를 장식했다. 성작과 복음서는 복자들 가운데 가장 연로했던 트라이안 프렌티우 주교가 사용했던 것이다. 교종은 강론에서 순교자들이 남긴 유산을 ‘자유와 자비’라는 두 단어로 요약했다. 1700년부터 로마와 일치했던 그리스 가톨릭교회가 이날 모였다. 그리스 가톨릭 공동체, 주교, 사제, 신자들에게서 교회의 감동이 느껴졌다. 교종은 새 복자들이 인간 기본권을 억누르는 이데올로기 체제에 반대하며 자신들 목숨을 희생했다고 강조하면서 새 복자들이 남긴 유산의 다른 측면을 설명했다. 곧 자비다. 사실 그들은 박해자들에게 혐오발언을 하거나 보복의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특히 7위 중 한 명인 율리우 호쑤 추기경이 했던 말은 루마니아 국민을 지탱한 태도의 상징이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이들의 회심을 위해, 값을 치르고 용서를 선사하기 위해 이 고통의 어둠 속으로 우리를 보내셨습니다.” 교종은 이에 대해 “간수들 앞에서 보인 이 자비의 태도는 예언자적 메시지입니다. 왜냐하면 일관되고 용기 있게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살아가면서, 오늘날 사랑과 용서를 통해 원한을 이기라는 초대로 제시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교종은 문화적이고 종교적인 풍요로운 전통에서 사람들을 떼어놓기 위해 오늘날 재등장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경계했다. 교종은 “인간, 생명, 혼인과 가정의 가치를 경시하는 이데올로기적 식민지화는 과거 무신론자들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소외하는 결정들을 통해 성장해야 할 뿌리를 박탈하면서, 특히 우리 젊은이들과 어린이들에게 해악을 끼칩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익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으면 모든 것은 의미 없는 것이 됩니다. 사람들은 타인을 악용하고 단지 목적으로만 대하도록 이끕니다.”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프란치스코 교종은 우리가 새로운 이데올로기에 대항하여 싸울 것과 형제애가 분열을 지배하도록 할 것을 촉구했다. 교종은 두려움과 분열의 씨를 뿌리며 이 땅의 소중한 유산을 없애버리려는 목소리, 예컨대 근세 유럽에서 최초로 근본주의를 제재하기 위해 광범위한 종교 관용주의를 보장한 ‘토르더 칙령’을 없애버리려는 것에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종은 “저는 우리 동시대인들에게 복음의 빛을 전하고 이 복자들처럼 솟아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에 대항하여 계속 싸우라고 여러분에게 촉구합니다. 그 당시 싸우는 것이 그들의 몫이었던 것처럼 이제는 우리의 몫입니다. 여러분이 자유와 자비의 증인이 되길 바랍니다. 분열을 막도록 형제애를 나누고 대화하면서 피를 나눈 형제애를 증진하면서 말입니다. 역사의 과정에서 분열된 그리스도인들이 더욱 가깝고 연대해 있음을 발견하게 해주는 것은 피를 나눈 형제애입니다.”라고 강조했다. 교종의 강론은 태어나면서부터 소경이었던 사람의 치유에 대해 이야기하는 복음에서 출발했다. 또 사람 대신 ‘특별한 이익들’, ‘에티켓’ 혹은 ‘이데올로기’를 중심에 둘 때 발생하는 일을 강조하기 위해 비유에 나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논쟁들을 설명했다. 그러나 주님의 논리는 추상적인 개념 속으로 도망치지 않고 자신의 얼굴, 자기 상처, 자신의 이야기를 가진 사람을 찾는다고 강조했다.

교종은 미사 말미 부활 삼종기도를 바치기 전 진심어린 환대와 이번 순방에 아낌없이 협력한 것에 대해 루마니아 대통령과 정부에 감사했다. 다니엘 총대주교와 루마니아의 모든 정교회에 대해서도 감사했다. 교종은 “저를 형제적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주님께서 이 오래되고 빛나는 교회를 축복하시고 당신의 사명 안에서 교회를 지지해 주시길 바랍니다. 모두에게 형제적인 박수를 보냅니다!”라고 말했다. 또 교종은 이번 순방에서 부쿠레슈티, 이아시, 수물레우시우크를 비롯 이곳 블라지까지 다양한 장소를 방문했던 가톨릭교회를 언급했다. 그리고 가톨릭교회가 사랑의 증언과 복음화에 박차를 가하도록 “순교자의 땅이요, 자유와 자비의 땅인 이곳 블라지에서 3세기 동안 여러분의 신앙을 사도적 열성으로 증거하고 있는 그리스 가톨릭교회 자녀인 여러분에게 경의를 표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프란치스코 교종은 여행의 로고에서부터 이번 루마니아 순방의 중심적인 기점이 되었던 동정녀 마리아께 기도했다. “역사의 여정 동안 항상 성모님의 전구에 신뢰를 둔 루마니아의 모든 국민을 동정녀 마리아께서 당신 모성애로 보호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성모님께 여러분 모두를 맡기며 온전한 발전과 평화의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신앙의 여정에서 여러분을 인도해주시고 한층 더 올바르며 조화롭고 형제적인 조국의 건설에 기여하도록 성모님께 청합니다.”

 

 

“꿈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한편 ‘작은 로마’로 불리는 블라지를 베드로의 후계자가 처음 방문한 것은 신자들에게 강한 감동을 주었다. 퍼거라슈와 알바이울리아 상급대교구장 루치안 무레산 추기경은 “꿈이 현실이 됐다”고 벅찬 감동을 표시했다. 그는 “베드로가 여기 계십니다. 우리의 신앙을 확고하게 해주기 위해, 우리의 상처에 입을 맞추고 치유하기 위해, 진정한 ‘기억의 정화’를 통해 새롭게 거듭난 슬로건으로 우리를 격려하기 위해서입니다.”라고 외쳤다. 그는 교종에게 새 복자들의 유해를 모신 은으로 만든 유해함과 복자들을 그린 성화를 선물로 바쳤다. 교종은 은성작을 루마니아 교회에 선물했다.

 

 

“불신을 친교의 기회로 바꾸십시오”

교종, 슈물레우치우크 성모성지 미사봉헌

 

프란치스코 교종은 루마니아 순방 둘째 날 6월 1일 오전 슈물레우치우크 성모성지 미사에서 복음의 은총이 일치와 형제애 안에서 누구도 뒤쳐지지 않는 구원의 기쁨이라며 함께 걷고 모험하면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도움을 성모님께 청하자고 강조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이곳에 약 10만 명 신자들이 운집했다. 이곳은 원래 중세시대부터 헝거리 언어권 신자들의 성모성지였다. 이곳에 교종이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성지가 속한 알바이울리아 교구는 헝가리 스테파노 성인이 1천 년 전 설립했으며 트란실바니아는 제1차 세계대전 후 루마니아에 편입됐다. 매년 특히 성령 강림 대축일 전야에 수천 명 신자들이 2미터가 넘는 거대한 성모상 앞에 모여든다. 이 성모상은 16세기 목제품으로 터키인들이 저지른 방화에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매년 성지순례가 트란실바니아의 유산에 속하지만 루마니아와 헝가리의 종교전통으로도 영광스럽게 여긴다며 이 순례에는 타종파의 신자들도 참여하는 것은 대화, 일치, 형제애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이날은 비오리카 던칠러 루마니아 총리와 야노시 아데르 헝가리 대통령도 순례자로 참여했다. 교종 강론 요지.

과거의 상처로 형제애를 빼앗기지 않도록 합시다. 성모마리아는 우리가 대립과 분열을 조장하는 목소리와 상처로 형제애를 빼앗기지 않도록 그의 아들뿐 아니라 우리 각자를 중재하십니다. 우리가 이곳 성모성지를 순례한다는 것은 ‘우리 집의 백성’으로 온다는 것을 아는 것과 백성임을 자각함이며, 이러한 백성들의 부요함은 그들의 수많은 얼굴, 문화, 언어와 전통입니다. 우리가 과거의 복잡하고 슬픈 사건을 잊거나 부정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과거가 형제적 동거의 열망을 방해하는 걸림돌이나 논쟁이 될 수 없습니다. 순례한다는 것은 과거와 현재의 원한이나 불신을, 친교를 위한 새로운 기회로 변화시키는 은총을 주님께 간구하면서 함께 걷도록 불림 받았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 원하시는 새로운 땅을 찾고자 우리의 안전과 편의를 멀리하고자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길에서 그 누구도 뒤쳐지지 않게 합시다. 그러므로 뒤섞이고 서로 돕는 것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순례, 곧 약간 혼란스러운 이 흐름에 참여하는 것은 형제애의 진정한 체험과 역사를 세우기 위해 항상 연대하는 행렬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이는 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기다리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모든 것을 바라보는 것을 뜻합니다. 주님께서 연대, 형제애, 선과 진리와 정의를 향한 열망을 자극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례한다는 것은 어제 뒤쳐졌던 이들이 내일은 주인공이 되도록, 또 오늘의 주인공들이 내일은 뒤쳐지지 않도록 투쟁하는 노력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기에는 미래를 함께 엮는 수작업이 요구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머니, 미래를 준비하도록 우리를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함께 청하려고 여기 모였기 때문입니다. 일치와 형제애를 위해 위험을 무릅씁시다. 로마제국의 외곽 갈릴래아의 작은 마을의 소녀 마리아가 “네”라고 말함으로써 ‘사랑의 혁명’의 길을 연 것처럼, 화해의 오솔길을 따르기 위해 우리도 “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위험을 무릅쓰는 사람을 주님께서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함께 걸읍시다. 복음이 모든 것을 가득차게 하고 우리 백성을 일치와 형제애 안에서 구원의 기쁨을 나눠주는 역량 있는 누룩이 되도록 위험을 무릅씁시다.

한편 이날 오전 교종의 일정은 동정녀의 발아래 ‘황금 장미’를 봉헌한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는 마리아 성지에서 교종에게만 허락된 은총이다. 역대 교종들은 이 행위를 통해 마리아께 대한 자신들의 공경을 표현했다. 그것은 분홍 대리석 받침 위 줄기가 금장된 은장미다. 두 장미는 천연호박으로 만들어졌다. 또 알바이울리아대교구가 교종에게 상징적으로 봉헌한 선물은 실제 ‘숲’이었다. 각 본당과 종교단체들은 교회나 주교관 부근에 프란치스코 교종의 방문을 기념하는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이는 공동의 집의 보호에 관한 회칙 ‘찬미받으소서’에 나타난 교종의 가르침에 그들의 참여를 증거하기 위한 방법이다. 마리아적 요소를 강하게 강조한 이날 오후는 이아시의 젊은이들과 가정들을 만나는 것과 동정녀께 대한 의탁으로 이어졌다.

 

 

“만남의 문화를 장려하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교종, 부쿠레슈티 대성당 저녁미사 강론에서 강조

 

루마니아에 도착한 프란치스코 교종은 첫날 5월 31일 저녁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 대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했다. 미사 전 교종은 루마니아 정교회 총대교구청에서 다니엘 총대주교와 정교회 주교단과의 만남을 가진 다음 정교회 새 주교좌성당을 방문했다. 저녁미사가 거행된 가톨릭 주교좌성당은 요셉 성인에게 봉헌된 성당으로 정교회 주교좌성당에서 3킬로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 교종은 포프모빌로 이동했다. 이날 미사는 라틴어와 루마니아어로 진행됐으며, 교종 강론은 이탈리아어로 했다. 교종은 강론에서 동정 마리아를 주제로 주님의 위대함 안에 전적인 믿음을 둔 겸손한 마리아의 모습을 강조했다. 루마니아 신자들에게는 당신 자녀들 가운데 계신 하느님의 전능하신 현존을 느끼며 거기서 오는 기쁨을 누리라고 권고했다. 강론요지.

마리아와 엘리사벳, 이 두 여인은 서로 만나 함께 하느님을 찬미했습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축일’ 오늘 복음말씀은 두 여인들의 만남에 관해 전하고 있습니다. 마리아가 외친 마니피캇에서 마리아는 겸손한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보여주는 마리아의 세 가지의 모습은 ‘만나러 갔으며’, ‘만났고’ ‘기뻐했다’입니다. 복음서는 마리아가 행한 다양한 여정을 전하고 있는데 이러한 여정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으며, 용기와 인내심이 요구되는 길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알려주는 사실은 이렇습니다. 성모님은 이러한 고난이 있는 어려운 등행길을 잘 알고 계시며, 우리 또한 걸어야 하는 길임을 알고 계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이러한 여정을 동반하는 누이십니다. 성모님께서는 등행길의 어려움 속에서 어떻게 헤쳐가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전문가시며, 또 삶에서, 가파른 언덕길에서 마주한 험난한 상황 속에 어떻게 우리 손을 잡아주어야 하는지도 잘 알고 계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인자하신 어머니처럼 사랑이 일상의 작은 일들 안에서도 나간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십니다. 동굴조차도 아들의 따뜻한 보금자리로 만들 줄 알았던 마리아의 모성애는 우리에게 많은 다른 여성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마리아에 관해 묵상하는 것은 우리에게 이 지상에 존재하는 많은 여성과 어머니, 할머니에게로 시선을 돌리게 합니다. 그녀들은 희생과 절제, 자제와 헌신으로 현재의 틀을 만들고 내일의 꿈을 짓는 이들입니다. 그녀들은 고요하고 끈기 있으며 눈에 띄지 않게 봉헌합니다. 그녀들은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그들의 자녀와 온 가족의 삶이 앞으로 전진하도록 소매를 걷어붙이는 일이나 어려움을 짊어지는 일에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루마니아 국민이 갖는 이러한 희망은 모든 어려움을 인내하게 하며 미래의 문을 열어줍니다. 마리아가 우리에게 함께 걷도록 초대하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에서 두 세대 사이에 교류를 봅니다. 젊은 여인은 나이든 여인을 만나 자신의 뿌리를 찾았으며, 나이든 여인은 젊은이에게 미래가 되는 성령에 가득 차 성모님의 복되심을 예언했습니다. 실로 서로에게 최고로 좋은 것을 일깨워 주는 포옹인 것입니다. 이는 만남의 문화가 불러일으킨 기적입니다. 만남의 문화란 아무도 버려지거나 편견을 갖지 않은 곳이며, 오히려 모든 것이 추구되는 곳으로 주님의 얼굴을 드러내기 위해 필요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함께 걷는 것은 하느님의 존재와 힘을 가져옵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 특히 가장 가난한 이들과 소외된 이들을 보고 우리의 이기적인 자아에서 벗어나 그들을 축복하기를 격려하십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살아가야 할 만남의 문화인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서로 다른 예식이 만나는 날, 곧 자기와 다른 소속이나 다른 집단, 다른 민족을 만나러 가는 날이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함께 주님을 찬미하는 하느님 백성에게는 위대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만남과 친교를 만드는데 있어 용감한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마리아는 주님의 위대하심을 두고 기뻐합니다. 마니피캇에서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거하시는 장소를 기억합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 가운데 계신 곳인 우리의 마음속입니다. 예언자는 두려워 말고 ‘힘없이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고’(스바 3,16) 권고합니다, 주님께서 권능한 구세주로서 우리 가운데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에게 기쁨의 원천입니다. 하지만 때때로 그리스도인들은 슬픔에 빠질 때가 있는데 이러한 신앙의 문제는 기쁨의 부족 때문입니다. 우리가 슬퍼하거나 실망할 때 신앙이 흔들립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 갇힌 채 불신 속에 살아갈 때, 우리의 신앙은 모순이 되고 맙니다. 이는 하느님의 위대한 일과 함께하는 자녀라고 스스로 느끼는 대신,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할 문제의 범위 안으로 자신을 축소시키면서 우리가 고아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슬픔에 빠지면 우리는 고아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강력한 구원자이신 아버지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데도 말입니다.

기쁨의 비밀은 하느님과 당신의 위대함을 향한 믿음 안에서 존재합니다. 우리는 비록 작은 존재지만 하느님께서는 하느님과 우리 형제들을 향해 우리의 마음이 열려있다면 항상 놀라운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또 우리는 이 땅의 위대한 증인들, 곧 박해 속에서 하느님을 믿었던 겸손한 이들을 기억합니다. 그들은 세상에 희망을 두지 않고 주님 안에서 희망을 두며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저는 이 겸손한 승리자들, 우리에게 가야할 길을 보여주는 이 성인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들의 눈물은 결코 헛되거나 고갈된 것이 아니라 하늘에 올려진 기도였으며 남아있는 이들에게 희망을 적시는 기도였습니다. 여러분은 만남의 문화를 장려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마리아처럼 조국에 축복을 가져다주는 이들이 되도록, 그리고 만남의 문화를 장려하는 사람들이 되라고 격려합니다. 만남의 문화란 이 땅이 분열을 거부하고 주님의 자비하심을 힘차게 노래하는 것입니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2006년 은퇴. 현재 뉴욕에 사는 재미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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