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고해소에서 가장 많이 고백되는 죄가 있다면, 그건 “이 밖에도 알아내지 못한 죄”가 되겠습니다. 우리가 순간순간을 잘 의식하며 살아간다고 해도 누군가 나의 행동이나 말투, 표정 등에서 뭔가 상처를 받는 일을 막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밖에도 알아내지 못한 죄에 대한 고백이 필요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전혀 의도치도 않았고 의식하지도 못하면서도 남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나를 보는 이가 과거와 연관된 어떤 상처를 만났는지도 모릅니다. 나의 태도가 대면하기 거북한 지인을 떠올렸는지도 모릅니다. 종종 선의를 가지고 한 이야기지만 듣는 이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예 그런 사실을 모르고 지냈다면 모를까 나중에 우연한 기회에 내가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미안함과 동시에 나 자신도 뭔가 억울한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애초에 누군가를 아프게 하려는 의도가 없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종종 이런 억울한 기분이 든다면 우린 어찌해야 할까요? 만약 사과할 것이 있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그대로 인정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리고 상처받은 이웃이 자신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기도해 줘야겠습니다. 내가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면 앞으로는 주의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함께하는 기도. (이미지 출처 = Flickr)

중요한 것은 억울해 하는 데서만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우리는 조금 더 성숙해지고 거룩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프란치스코 교황이 발표하신 사도적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Gaudete et Exsultate)라는 글 중에 귀감이 될 만한 것이 있어서 함께 나눠 봅니다. 

“겸손은 여러 굴욕을 통해서만 마음에 뿌리내릴 수 있습니다. 굴욕 없이 어떤한 겸손도 어떠한 성덕도 없습니다. 작은 굴욕도 참아 내고 봉헌할 수 없다면 여러분은 겸손하지 않은 것이며 성덕을 향한 길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교회에 주시는 성덕은 당신 아드님의 굴욕을 통해 왔습니다. 그분께서는 곧 길이십니다. 굴욕은 우리가 예수님을 닮게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님을 본받는 데에 불가피한 측면입니다.”('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118항) 

살아가면서 경우에 따라 종종 억울한 상황이 생기는 것, 곧 굴욕을 경험해야 하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지만 결국 각자의 성덕을 키우는 계기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무고한 예수님이 겪으셨던 체험을 공유하며 오히려 기쁨으로 승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냐시오 로욜라 성인도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사람들이 자신을 오해하고 욕하는 상황을 통해 그리스도의 굴욕에 함께한다는 기쁨을 체험했습니다. 이런 체험이 그가 성인이라 그런 것이고 내 일은 아니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나 역시도 성인이 될 수 있는 기회로 삼아 보는 것이 어떨까요? 겸손을 배우는 일이 멀리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겸손을 배우는 이는 일상의 성인이 될 것입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