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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사랑[구티에레스 신부] 5월 26일(부활 제6주일) 사도 15,1-2.22-29; 묵시 21,10-14.22-23; 요한 14,23-29

우리들은 부활 주기의 결론에 그리고 예수님 승천과 성령 강림 대축일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이처럼, 이번 일요일의 독서들은 성령을 통한 예수님의 새로운 현존을 기념하도록 우리를 이끌어 간다.

예수님은 길이다

요한 사도가 말하듯이,(요한 14,23) 예수님을 따르면서 그분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사랑을 증거하고 참다운 제자가 되는 것이다. 또한 동시에, 그것은 아버지께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 하느님께 가는 것은 오로지 예수님을 통해서 가능하다. 이것이 요한 복음의 주요 주제들 중의 하나다. 즉 예수님은 말씀이요, 아들이며, 우리 인간 역사 안에 나타나는 하느님의 계시다.(요한 14,24) 그렇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을 지키는 것” 이외에 하느님께로 가는 다른 길은 없다.

아버지께로 간다는 것은 삶과 실천의 문제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사랑하는 것인데, 이 사랑은 그분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고 예수님의 삶의 방식을 실천에 옮기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이것이 오늘 복음의 첫 번째로 중요한 선언이다. 사도행전의 오늘 독서는 예수님의 길을 실천에 옮기는 정확한 모범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유대식의 할례 실천 문제에 관하여 바오로 공동체와 예루살렘 공동체 사이에 심각한 긴장이 있었던 시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우정과 존경의 분위기 속에서(사도 15,22-29) 그들의 차이를 해결하려고 애썼다. 오늘날 이 모습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안팎에서 일어나는 대립들을 다루는 데 한 모범으로 참고될 수 있다.

예수의 길. (이미지 출처 = Maxpixel)

예수님의 성령

인간 역사 속에서 예수님의 현존은 이제 새로운 형태를 취하게 된다. 그것은 성령이라는 형태다. 아버지로부터 보내진 성령은 우리가 예수님, 그분의 말씀과 행적을 기억하도록 가르쳐 줄 것이다.(요한 14,26) 우리들 가운데 하느님의 성령께서 현존하신다는 신뢰는 예수님의 “증언”인 평화의 선물에 의미를 부여한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14,27) 알다시피, 우리는 히브리말 샬롬을 “평화”로 번역한다. 예수님의 증언은 샬롬, 행복, 생명, 조화 그러므로 평화를 의미하는 샬롬이라는 단어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입에서 표현된 “평화”는 제자들이 충만한 삶을 이루기를 바라는 그분의 갈망을 표현하고 있다. 예수님의 추종자들이 충만한 삶을 경험하기를 바라는 것이 복음에서 표현된 개념이다. 그리고 제자들이 예수님의 성령으로, 충만한 생명의 성령으로 그리고 그러므로, 평화의 성령으로 가득할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예수님의 성령은 우리가 살고 있는 상황 속에서는 너무나 흔히 느끼는 감정이며 경험들인 불안과 두려움을 갖지 않도록 해 준다.(요한 14,27) 그것은 우리의 느낌들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성령이 주는 “평화-샬롬-생명”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묵시 21,23)이 그곳에 빛이 되어 주는 도성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 리마 출생. 의대를 졸업한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가 된 뒤에는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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