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 13]

"폴폴폴 봄바람 냄새가 나서

나는 갈았지, 조그만 땅을."

내가 좋아하는 책 "그림책의 힘"에 소개된 "쑥쑥쑥"이란 책의 한 구절이다. (아쉽게도 "쑥쑥쑥"은 우리나라에 번역 출판되지는 않았다. 책에 소개된 몇 구절과 삽화 한 장면으로 느낌과 분위기를 짐작해 볼 뿐이다.) 이 구절을 만난 게 벌써 10년도 전인 것 같은데, 이 한 구절을 만났을 때의 가슴 벅참은 여전하다. 뭐랄까, 꿈틀거리는 경작 본능을 자극한다고 할까? 몸속 깊이 새겨져 있어 몸과 마음이 절로 기억하고 있는 어떤 움직임을 톡 건드려 주는 느낌이다. 내 마음대로 일굴 수 있는 작은 땅이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지...

하지만 알면서도 때로는 땅이 있다는 게 버겁고 부담스럽다. 땅을 놀리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해야만 하는 어떤 일감으로 땅을 만나기 때문일 것이다. '어우, 저 풀 좀 어떻게 해야 할 텐데, 지주라도 세워 줘야 하나? 모종은 언제 옮기지?' 이렇게 숱한 고민과 걱정에 묻혀 땅을 만나고 새싹을 돌보며 마주하는 기쁨과 놀라움 같은 것은 서서히 흐려지게 된다. 싹이 나면 나는 갑다, 꽃이 피면 피는 갑다 너무나 무심해지는 무심병!

그런 나에게 아이들이 저 구절을 다시 데려다 주었다. 땅을 좀 떼어 달라기에 각자 자기 밭을 조금씩 마련해 줬더니 놀랍게도 너무나 아름답게 가꾸어 가고 있는 것이다. 길을 만들고 작은 나무와 꽃을 심고,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심고.... 나보다 훨씬 낫다. 나는 이제껏 심고 나서 물을 줘 본 일이 거의 없는데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고, 모종 심은 자리 둘레에 꽃잎을 덮어 모종을 보호한다. 그뿐인가, 시도 때도 없이 밭을 둘러보며 변화를 살핀다.

"엄마, 참외가 또 컸다. 엄마도 와서 봐. 얼마나 컸는지 깜짝 놀랄 거야."

"엄마, 여기도 와 보세요. 이거 당근 싹 맞아요?"

"엄마, 딸기가 달렸어. 기다리면 빨개져?"

하루에도 몇 번씩 서로 자기 밭으로 와 달라며 호출을 하는 통에 몸살이 날 지경이지만 밭 앞에 올망졸망 모여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눈앞이 환해진다. 저러면서 쑥쑥쑥 크겠구나 하는 희망과 안도감 때문일 것이다.

텃밭 정원에서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는 다울이와 다나. (다울이가 재, 물, 각종 풀을 섞어 만든 '생명을 살리는 사랑의 약'을 다나에게 선전하며 발라 보라고 권하고 있음.) ⓒ정청라

그러다가 문득 노래를 불러 주고 싶었다. 나에게 다시금 초록 첫마음을 불러일으켜 준 꼬마 농부들과 그 밭의 아름다움 앞에 꾸벅 절하는 마음으로....

 

폴폴폴 봄바람 냄새가 나서

나는 갈았지 조그만 땅을

 

쑥쑥쑥 날마다 자라는 어여쁜 초록 새싹들

나도 따라 함께 자라네

 

나는 만들고 말 테야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해 줄

나만의 멋진, 멋진 텃밭을

 

나는 이루고 말 테야

이 세상을 빛나게 해 줄

나만의 멋진, 멋진 정원을

 

문득 평화가 별거냐 싶어진다. 무언가를 심고 돌보는 그 손길 그 마음으로 하루를 사는 것, 그 속에 평화가 있는 게 아닐까? 오늘 주어진 하루도 평화롭게 가꾸어 가길 바라며, 나의 초록 마음에 날마다 물을 주자고 다짐해 본다.

정청라

인생의 쓴맛 단맛 모르던 20대에 누가 꿈이 뭐냐고 물으면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막상 엄마가 되고 1년도 채 안 되어 좋은 엄마는커녕 그냥 엄마 되기도 몹시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좋은 엄마'라는 허상을 내려놓았다. 그 뒤로 쭈욱 내려놓고, 내려놓고, 내려놓기의 연속.... 이제는 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살아 있음을 만끽하며 아무런 꿈도 없이 그냥 산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스스로 길이 된다는 것'임을 떠올리며 노래로 길을 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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