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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심판 날엔 얼마나 사랑하고 왔느냐는 질문을 받게 됩니다[영원한 생명을 주는 진리의 길 - 김용대]

"영원한 생명을 주는 진리의 길", 요한 타울러, (김용대), 사회와연대, 2017, 353-360쪽

“그러나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요한 16,7-8)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께서 먼저 떠나셔야만,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친구들이나 추종자들이 성령을 받게 된다는 이 가르침을 명심하십시오. 떠나시다니요. 어떻게 떠나시나요? 할 수 없이 아무 위로도 주시지 않고 우리를 완전히 버리고 떠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선행을 하더라도 마음이 답답하고 무겁고 냉정하게 되고 어둡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주님께서 떠나가버리신 사람은 누구나 이를 어떻게 하면 기회로 만들어 이용하면 자기에게 유리하게 되고 복이 되고 하느님의 선물이 되게 할 수 있는가를 배우게 됩니다. 그리하여 현명하게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에 맡기게 되면 생각이 많았지만 하느님과 하나가 되어 고통 중에서도 기뻐하게 되고 어떤 모욕도 참게 되고 열심히 일하지만 마음은 편하게 되고 고통의 의미를 알게 됩니다.

우리의 주님께서는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고 말씀하셨는데 보호자이신 성령께서 우리 영혼의 깊은 곳에 세상에 대한 집착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남아 있지 않은지를 분명히 밝히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거기서 세상에 대한 미련을 발견하시게 되면 드러내시고 유죄로 판결하시고 나무라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있는 것은 세상 일과 방법과 환상들뿐입니다. 즉 세상 것들로부터 위로를 받고 세상 것들 때문에 기뻐하고 슬퍼하고 두려워하고 바라고 걱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베르나르도 성인(St. Bernard of Clairvaux, 1090-1153)이 “여러분이 기뻐하게 되거나 슬퍼하게 된 것은 여러분이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서 이 때문에 나무라시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것들을 갖지 못하면 불안해 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를 나무라시게 되는 것입니다. 즉 세상 것들에서 기쁨을 찾고 세상 것들 때문에 죽거나 살기 때문입니다. 이런 영혼 안에는 성령께서 머무실 수 없다는 확실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성령께서 오시게 되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속세에 있는 사람들이 죄를 지어도 성령께서 야단을 치십니다.

그런데 무슨 죄를 짓게 되나요? 형제자매 여러분, 영원한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만드시고, 불이 위로 타오르고 돌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처럼, 모든 것들이 제 구실을 할 수 있도록 만드셨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눈으로 보게 만드시고 귀로 듣게 만드시고 손으로 일하게 만드시고 발로 걷게 만드시는 등 우리의 모든 지체가 힘들든 쉽든 괴롭든 좋든 우리의 의지에 따르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심지어는 우리의 의지에 따라 죽고 살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의지력을 이용하여 자신이 좋아하던 것들과 명예를 기쁘게 버리기도 하고, 세상 것들을 탐하기도 하고 육욕을 즐기기도 합니다. 죄인들은 자신의 게으름을 변명하며 주님에게 “오늘날 진심으로 당신에게 순종하고 당신의 계명을 다 지키고 사는 사람이 있나요? 당신의 명령에 따라 기꺼이 자기를 버리고 헛된 것들을 버리는 사람이 있습니까?” 하고 대듭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성령께서 오시면 이 죄를 물으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거부하고 자신의 내면에서 줄기차게 경고하시는 하느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거듭 지은 죄뿐만 아니라 숨어 있는 많은 나쁜 생각들도 아시고 벌하실 것입니다. 이 심판은 영혼 안에서 갑자기 하느님께서 야단치시는 것처럼 느끼고 몹시 아파하고 참을 수 없이 슬퍼하게 되는데 세상 것들에 집착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본능에만 충실히 따랐던 사람들이었으므로 지옥의 고통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런 느낌을 생각하면 영혼 안에 성령께서 계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성령께서 영혼 안에 계시면서 우리가 진리를 알게 하시어 하느님을 믿게 만드시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수많은 죄를 지은 것을 알고 고백하는 것이 하나의 죄밖에 짓지 않았다고 잡아떼며 계속하여 죄를 짓는 것보다 훨씬 낫기 때문입니다. 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소위 수행한다는 사람이 자기 만족에 빠져 살게 되면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똑똑히 아십시오. 제멋대로 하는 사람은 결코 하느님의 은총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는 의로우시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아시고 벌하십니다.

오 자비하신 하느님, 당신의 눈으로 보시면 저희의 의로움은 얼마나 보잘것없고 경멸스럽나이까? 따라서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말했습니다.

“너무나 슬픕니다. 의로움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아무 데도 없습니다. 만약 하느님께서 계시어 오신다면, 자비로 우리의 의로움을 심판하시려고 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사야가 말했습니다. “저희의 정의는 여인의 생리대와 같습니다.”(이사 64,6) 그리고 우리의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루카 17,10)

형제자매 여러분, 자신이 죄를 짓고도 짓지 않았다고 잡아떼는 것은 자기를 속이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면서 하느님의 뜻에도 따르지 않고 다른 사람의 뜻에도 따르지 않으려고 합니다. 실제로 이런 사람은 자신을 하느님께 맡기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충고를 하시어도 들은 척도 하지 않습니다. 창피를 모르는 사람으로 하느님께서도 사람들도 이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오시면 이들의 수행법을 심판하시고 야단치실 것입니다. 그러면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게 되고 자기를 버리는 법과 겸손과 영원한 행복을 가져다 주는 덕행을 배우게 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의 주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성령께서는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모르고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덮어씌우는 사람도 모조리 심판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마태 7,1-2) 그런데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날에는 예외 없이 성직자들, 평신도들, 주교들, 사제들, 수도사들, 교구장들, 수도원장들, 고귀한 사람들이나 평범한 사람들 모두 서로를 심판하고 있고 서로 비난하면서 자신과 하느님 사이에 높은 벽을 쌓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의 영원한 은총을 받으려면 이들처럼 하면 안 됩니다. 반대로 자기 자신을 심판하고 자기 자신의 잘못을 탓하십시오. 그래야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며 영원한 하느님과 거룩한 성인들로부터 비난을 받지 않게 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대죄라는 것이 밝혀지지 않으면 어떤 것도 비난하지 마십시오.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는 말을 하느니 차라리 자신의 혀를 깨물고 피를 흘리십시오. 자신이 보기에 나쁜 사람이라면 조용히 하느님의 영원한 정의에 비추어 보십시오. 이웃을 판단하는 버릇이 들면 자기 합리화를 하게 되고 교만하게 되고 이웃을 경멸하게 되고, 마귀의 씨앗이 되어 많은 사람의 마음을 더럽히게 됩니다. 이는 성령께서 계시지 않은 증거입니다. 성령께서는 영혼이 원하면 바른 길로 인도하시고 무슨 일이든 제때에 판단을 할 수 있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치유를 받으면서 상처를 받게 되면 성급함 때문에 다른 서너 사람에게도 상처를 줄 때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있을 때에는 욕지거리를 하지 말고 사랑의 말을 하십시오.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면 안 됩니다. 성직자들에게든 평신도들에게든 잘못을 바로 잡아주려면 항상 친절하고 온유하게 사랑의 말을 해야 합니다. 항상 느긋한 마음을 갖고 이성을 잃지 말고 말을 많이 하든 적게 하든 공손한 말을 해야 합니다. 이분법적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마십시오. 당장 해야 할 말이 아니면 하지 마십시오.

형제자매 여러분,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지혜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우쭐대지 마십시오.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자신의 마음을 보고 자신의 영육을 성찰하시오. 신학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하느님의 비밀을 알려고 하다가 길을 잃지 마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비밀을 알지 못하게 하신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참되고 순수한 믿음을 갖고 하느님만 믿고 구태여 알려고 하지 말고 삼위를 믿으십시오.

아리우스나 사벨리우스와 같은 이단자들은 성령을 영원한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는 ‘힘’이나 ‘에너지’라고 주장했으며 솔로몬과 교부 오리게네스는 거룩한 교회에 대하여 말했는데 이들은 과연 어떤 평판을 받고 있나요? 우리는 모릅니다. 자신을 면밀히 성찰하여 자신만 자기에 대하여 답할 수 있도록 하십시오. 하느님과 하느님의 거룩한 뜻만 생각하고 소명을 충실히 완수하려고만 하십시오.

여러분이 하느님의 뜻을 모르면 성령을 받아 여러분보다 더욱더 깨달은 사람들의 조언을 듣도록 하십시오. 그러한 사람이 가까이에 없으면 바로 하느님께로 가십시오. 그러면 틀림없이 하느님께서 여러분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모두 알려주시는데 이를 명심해야 합니다. 만약 의심이 들면 가장 세상과 먼 것 즉 여러분이 가장 가고 싶지 않은 길을 택하여 처음부터 시작하도록 하십시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자기를 죽인 마음에만 계시면서 은총을 듬뿍 주시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께서 가장 사랑하셨던 제자들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떠나시기 전에는 성령을 받지 못했으므로 우리도 주님께서 우리를 떠나실 때를 생각하고 기쁘게 성령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면 하느님께서는 틀림없이 모든 일에서 여러분에게 성령을 보내 주실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진심으로 내면 생활을 열심히 하면 이 세상에서도 성령님을 모시는 놀라운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구세주께서는 성령께서 오시게 되면 우리에게 모든 것 심지어는 미래의 일까지도 가르쳐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밀을 많이 수확하게 될 것이라든지 밀값이 비싸게 되거나 싸지게 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려주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수덕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에 대하여 모르던 것들도 알려주시고, 이 세상은 거짓투성이이고, 우리의 본능이 우리를 잘못 인도하고 있고, 나쁜 생각들은 아주 교활하다는 것도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정신을 똑똑히 차리고 끊임없이 하느님의 길을 가십시오. 여러분은 소명을 잊지 말고 충실히 다하도록 하십시오. 하느님께서 내면 생활에 충실하도록 소명을 주시면 외면 생활에 치중하고, 외면 생활을 성실히 하라는 소명을 주시면 내면 생활에 치중하는 완고하고 비뚤어진, 청개구리 같은 사람의 본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성령께서 오시게 되면 이렇게 우리에게 모든 진리를 가르쳐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우리의 죄를 고백하게 하시고 우리의 눈으로 사물을 보지 않게 하시고, 진리에 따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알게 해 주시고, 어떻게 하면 겸손하게 하느님과 모든 피조물들에게 순종하며 살 수 있는가를 가르쳐 주십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심으로 겸손하여 완덕을 갖추어 행복하게 살기 위한 지혜가 아니겠습니까?

이런 사람은 말만 겸손한 사람과 다릅니다. 말만 겸손한 사람에게 말만 겸손하다고 말하면 참지 못합니다. 온유하지도 않고 자기를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겸손하지 않으면 우리는 주님과 같은 삶을 살 수 없습니다.

하느님, 저희가 주님과 모든 피조물에 순종하게 해주소서. 저희가 주님의 거룩한 뜻에만 따르도록 해 주소서. 성령께서 저희에게 오시게 하시어 주님의 거룩한 진리의 길을 알게 해 주소서. 아멘.

 

끊임없이 하느님의 길을 가십시오. (이미지 출처 = Max Pixel)

미사 중에 모두 다섯 차례 주례사제와 회중은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Dominus vobiscum) 하면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Et cum spiritu tuo) 하고 서로 인사를 주고받습니다. 이것은 통상적인 인사말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을 서로 확인하는 대화이므로, 전례가 이루어지는 토대를 자각하게 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초기 교회의 전통과 교부들의 증언에 의하면, “Et cum spiritu tuo.”의 ‘spiritus’는 사제의 영혼이 아니라 그가 서품식 때 받은 성령과 그 성령께서 주시는 직무수행의 은사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인사는 사제가 서품식 때 받은 이 성령의 은사로써 주님의 뜻에 따라 특별하고 초월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직무를 수행함을 가리킨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성령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뒤 다락방에 모여 있던 제자들에게 주셨던 성령으로 계속 머물러 계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깨끗하게 비우지 않으면 떠나가십니다. 나는 대부분의 사제들이 사랑을 하지 않는 것은 성령의 열매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도움으로 미사를 집전하고 청원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으니 허전하기만 합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John of the Cross, 1568-91)이 말했습니다. “누구나 마지막 심판 날엔 얼마나 사랑하고 왔느냐는 질문을 받게 됩니다.”

‘belief'(믿음)이라는 단어는, 셰익스피어 시대에 사용한 뒤 지금은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본래 ‘사랑’을 뜻하는 ‘lief’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사랑이 없는 믿음은 있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성 요한은 우리에게 “나에게 ‘믿는다(believe)’고 말하지 말고 ‘사랑한다(love)’고 말하십시오.” 하고 말했는지 모릅니다.

하느님의 첫 번째 계명이 ‘사랑’이었기 때문입니다.

종교 개혁가 칼뱅이 말했듯이 “인간은 분명히 먼저 하느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나서, 다음으로 자신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는 한, 결코 자신을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명백한 증거에 의해서 우리 자신의 불의, 더러움, 어리석음, 불순함을 스스로 확신하기 전에는, 우리는 항상 자신을 의롭고, 바르고, 현명하며, 거룩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이러한 교만은 온 인류가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나온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가 자신만을 바라보고 이러한 판단의 유일한 표준이 되시는 주님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그와 같은 확신을 가지지 못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가 본래 위선으로 치우쳐져 있어서, 일종의 공허한 의로움의 허상이 의로움 그 자체를 대신하여 우리를 자위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목자 2(The Keeper of Sheep II)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 1888-1935) - 후고(後考) 옮김

 

내가 사물을 볼 때에는 키 큰 해바라기처럼 멀리까지 똑똑히 본다.

나는 길을 가다가 습관적으로 좌우를 살피고

때로는 뒤를 돌아보면서

매 순간 내가 본 것이 전에는 전혀 보지 못했던 것처럼 느꼈기에

그 다음부터는 무엇을 보든 매우 주의 깊게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마치 새로 태어난 아기가

자신이 실제로 태어났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처럼 경이로움을 느낀다.

매 순간 새로운 세상에 태어나는 것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나는 국화 꽃을 보고야 믿는 것처럼 세상을 보고서야 믿는다.

그러나 세상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는 것은

생각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보고 공감하라고 만들어졌다.

(생각하는 것은 좋지 않은 눈을 갖고 있는 것과 같다)

 

나는 철학이 없으며 감각만 갖고 있다.

만약 내가 자연에 대하여 말한다면

내가 자연에 대하여 알아서가 아니라

내가 자연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사랑하는지, 왜 사랑하는지, 사랑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영원히 순진해야 한다.

순진해야만 생각이 많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김용대(후고)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박사.
본명은 후고입니다만 호도 후고(後考)입니다. 항상 뒷북을 친다는 뜻입니다.
20년 동안 새벽에 일어나서 묵상을 하고 글을 써 왔습니다.
컴퓨터 전공 서적을 여러 권, 묵상집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 "징검다리"를 쓰고, 요한 타울러 신부의 강론집을 번역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는 진리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했습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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