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금요일 충북 소수에 있는 허상호 농민 집에서 김장 배추 절이는 농촌 일손 돕기를 다녀왔습니다. 허상호 농민은 청주교구 가톨릭농민회 회원으로 서울 우리농에 절인 배추를 보내고 있습니다. 천주교 농부학교 학생들과 실무자로 구성된 우리 일행은 배추를 밭에서 가져와 나르고, 그 배추를 소금으로 절여 포장하는 일을 함께 했습니다.

함께 일한 분들은 이웃 마을인 쌍촌리 할머니들과, 한족 출신 중국인 사위와 장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모두가 서먹했지만 배추 속과 막걸리를 새참으로 먹으며, 또 서울식구들이 싸온 김밥과 반찬을, 농민 분께서 마련한 맛난 콩나물밥과 배추, 장아찌를 점심으로 함께 나눠 먹으며, 어느덧 그 서먹함은 사라졌습니다.

<점심밥상>


서먹함이 사라진 오후, 배추 절이기는 훨씬 수월했습니다. 할머니들께 말도 붙여보고, 우리말이 서툴어 굳게 입을 다물고 있던 중국인 장인과 사위도 간간히 미소 띠운 얼굴로 우리를 바라봅니다. 일이 서툰 실무자의 배추 손질 모양새가 내심 불안했던지 다가와 직접 가르쳐주기도 하고, 배추 절인 물이 바닥에 많이 고이자 박스를 가져와 올라가 일하라고 말없이 배려해줍니다.

밥을 먹고 허상호 농민과 함께 밭에 가서 두 고랑의 밭에서 배추를 잘랐습니다. 칼로 배추 밑동을 자르며 두 개의 긴 고랑을 다 자른 후, 경운기를 대고 그 배추들을 옮겨 실었습니다. 그렇게 두 번 배추를 자르고, 나른 후 돌아오는 길에서 쭈그리고 무언가 일하고 계시는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무슨 일을 하실까 궁금해진 저는 물어보았습니다.

“할머니 이게 모예요?”

“이게 마늘이야. 마늘...”

“어떻게 심어요?”

“마늘을 잘라서 심었어. 그 위에다 쌀겨를 뿌리고 비닐 덮으면 되어.”


할머니는 선한 얼굴에 웃음을 띠우며 이번엔 제게 물어보십니다.

“어디서 왔어?”

“서울서요.”

“모하러 온 겨?”

“아, 예. 저 밑에 집, 배추 절이는 일 도와주러 왔어요.”

제 말을 듣고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착하네...” 하십니다.

그 모습이 참 편안하면서, 가슴 저몄습니다.


배추를 자르고 절이는 쌍촌리 할머니들의 일당은 하루 5만원이었습니다.

그날이 열흘째라고 말씀하셨으니 50만 원 가량의 돈이 모였을 것입니다.

제가 “우와! 돈 많이 버셨네요!”하자,

“이 일하고 나면 몸이 아파 병원비가 더 들어.” 하고 쓸쓸히 말하십니다.


모두가 떠나버린 우리 농촌의 모습에서 정말 착한 것은 우리가 아니라, 그곳에서 사시는 농민들입니다. 이제는 모두가 회피하는 고된 일이 된 농촌 일을 할 사람이 없어, 멀리 중국에서 온 장인과 사위가 한국배추를 절이고, 이제는 조금 쉬어도 좋으련만 이웃 마을 할머니들이 추위 속에 하루 종일 서서 도시 사람들이 먹을 배추를 절입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다시 병원에 갑니다.

배추를 절이고 서울에 도착해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쌍촌리 할머니들을 생각했습니다. “땅을 살고 계시는 분들, 고맙습니다.”

/맹주형 2007-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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