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우 신부] 5월 5일(부활 제3주일) 사도 5,27ㄴ-32.40ㄴ-41; 묵시 5,11-14; 요한 21,1-19

사제가 되고 첫 휴가때 가족들과 함께 제가 유아세례를 받았던 대구의 한 본당에 간 적이 있습니다. 사실 그곳에서 초등학교 2학년 때 부산으로 왔기 때문에 많은 기억은 없습니다. 더욱이 유아세례를 받은 기억도 없습니다. 하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떠한 감정이 올라오는 것은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오르막길에서 보이는 팔 벌린 예수님의 모습과 부모님과 함께 있었을 성전 안의 유아실, 큰 나무 밑에 있는 벤치와 둥근 의자들이 제 어릴적 기억의 일부와 어렴풋이 일치해 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그곳에서 유아세례를 받고 처음으로 하느님이라는 분을 그리고 신앙이라는 것에 발을 디디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성당은 저에게 아주 평범한 일상이 되었습니다. 부산으로 이사를 와서 자연스럽게 첫영성체를 하고 복사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매주 평일에 한 번씩 복사를 서고 토요일에는 주일학교를 가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성당에 가는 것은 저에게 지극히 평범한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추운 겨울 월요일 새벽 첫 마을버스를 타고 새벽미사 복사를 서러 갔던 수많은 날들도, 부활성야 미사 때 잠이 와서 들고 있던 초에 눈썹을 태울 뻔한 일도, 친구들과 함께 캠프를 가는 것도 말입니다. 그렇게 어릴 적 저에게 신앙은 특별함이 아니라 일상이고 평범한 것이었습니다.

처음 그리고 평범함. 제가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떠올렸던 두 가지 단어입니다. 사실 많은 학자들이 요한 복음 21장이 후대에 덧붙여진 것이라는 가설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그러한 신학적 논쟁이나 토론보다는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복음 텍스트를 부활시기에 맞게 묵상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큽니다. 사실 오늘 복음의 시작은 부활의 기쁨에 사뭇 어울리지 않습니다.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요한 21,3)라는 베드로의 말에서부터 무언가 힘이 없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다른 제자들이 이야기합니다. “우리도 함께 가겠소” 무언가 맥이 빠진 듯합니다. 그렇게 그들은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자기들이 살았던 그 평범한 나날들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예수님께서 등장합니다.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라는 주님의 질문에 “못 잡았습니다”라는 제자들의 대답. 이것은 루카 복음 5장을 떠올리게끔 합니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루카 5,4)라는 주님의 말씀에 시몬 베드로는 ‘그물이 찢어질 만큼’(루카 5,6) 고기를 잡게 됩니다. 

예수와 함께 먹던 식사. (이미지 출처 = Pixabay)

오늘 복음도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요한 21,6)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의 반응도 비슷합니다. 첫 순간 베드로는 이 순간이 두려워 주님께 떠나가 달라고 청합니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루카 5,8)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는 다른 모양새로 주님을 떠나려고 합니다.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들었다.”(요한 21,7) 하지만 첫 순간 예수님을 따랐던 베드로에게 그분은 다시 다가오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주님께서는 예전에 자신이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빵과 물고기를 주시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십니다. 그리고 여기에 숯불(ἀνθρακιὰν)이 등장합니다. 숯불 역시 과거를 회상하게 만드는 매개체가 됩니다. “날이 추워 종들과 성전 경비병들이 숯불(ἀνθρακιὰν)을 피워 놓고 서서 불을 쬐고 있었는데, 베드로도 그들과 함께 서서 불을 쬐었다.”(요한 18,18) 숯불을 쬐며 추위를 달래던 그 밤 베드로는 주님을 배신하였지만 주님께서는 아침에 숯불에 고기를 굽고 계십니다. 배에 올라 그물을 뭍으로 끌어 올린 베드로의 마음도 한번 생각해 봅니다.

이처럼 처음 주님을 만났던 그 순간과 같이, 고기를 잡으러 배에 있던 그 찰나에 그들은 다시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분명 자신들이 처음 예수님을 따라 “모든 것을 버리고”(루카 5,11)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던 그 마음을 다시 한번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한 곳은 특별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평범한 공간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의 삶의 터전에서 주님을 만납니다. 거창하고 화려한 곳이 아니라 그들에게 가장 익숙하고 가장 일상적인 그 자리에 주님은 찾아오십니다. 우리의 삶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찾으러 특별히 어느 곳을 찾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지금 있는 그 공간에 충실하면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고,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는 곳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그곳이 예수님이 계신 곳이 되고, 내가 머물고 있는 곳에서 예수님의 뜻이 드러날 수 있도록 나의 일상에 충실한 하루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유상우 신부(광헌아우구스티노)

천주교 부산교구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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