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생각하는 용산참사와 뉴타운 개발]

 

▲ 용산참사 후 현장에서 열린 드림예배(사진/한상봉)

용산참사, 아직도 현재진행형

기억하시는지? 서울 한복판 용산의 한 빌딩에서 6명의 무고한 목숨이 유명을 달리한 지난 겨울에 벌어진 참사를.

지난 1월 20일, 한겨울 추위 속에 그것도 아직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인 새벽에 용산4구역 철거민 5명과 경찰관 1명이 불구덩이 속에서 몸이 뒤틀리고 차가운 물대포를 맞으며 참혹하게 죽어갔다. 우리같은 가난한 사람도 사람이라고, 우리에게도 생존권이 있고 주거권이 있다고, 우리도 숨 좀 쉬며 살게 해 달라고 외치는 사람을 처참하게 짓밟아 주검으로 돌려보낸 그 학살이 자행된 지 벌써 6개월이 다가온다.

‘여기 사람이 있다!’고 절규하며 죽어간 그 모습들이 아직도 선연한데 벌써 6개월이 지나가건만 참사희생자들은 여전히 순천향병원 냉동고에 안치되어 있고, 유가족은 영안실과 참사현장을 지키며 불안정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한편 용산4구역 현장은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철거와 공사가 한창이고, 경찰의 비호 속에 용역의 불법적인 폭력은 그 수위가 높아가고 있다. 용산참사는 아직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용산참사는 좁게는 건물주와 상가세입자 간에 보상을 둘러싸고 벌어진 문제다. 재개발조합 측은 상가 임차인들이 영업을 위해 투자한 권리금과 시설투입비 등에 대해서는 현실적 보상을 하지 않고 단지 토지보상법에 의거해 3개월분의 휴업보상금만을 지급하며 철거를 진행했다. 상가세입자들에게 이것은 현실적 대책이 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동안 투자한 적게는 5천만 원에서 억 단위의 돈을 어디에서도 보상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용산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재개발(뉴타운 포함)이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 구석구석에서 자행되고 있고, 가난한 이는 더 가난하게 부유한 자는 더 부유하게 만들어 사회구성원간에 이질감을 심화시키고 있는 사회총체적인 문제다.

광역별 재개발 수익사업, 뉴타운

용산참사의 근본적인 원인은 2002년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이 시작한 새로운 재개발사업인 뉴타운사업에서 찾을 수 있다. 1960~70년대에 우후죽순 형성된 도시 마을들은 1980년대에 들어 합동재개발사업으로 아파트로 모습을 탈바꿈했는데, 공공의 성격을 띤 재개발사업이 그 당시 이미 민간건설재벌이 주도하면서 수익사업으로 변질되었다. 대규모 합동재개발사업이 완료된 후에는 단위사업이 아닌 광역적인 재개발사업으로 이어졌는데 그것이 뉴타운사업이다.

그런데 뉴타운사업은 자치구가 개발지역을 선정하고 시공사는 도시환경정비계획을 수립, 서울시는 승인하는 것과 같이 재개발지역에 사는 주민을 철저히 배제한 채 진행되고 있다. 과거에는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따라 재개발을 할 때 해당 지역 주민들의 동의를 2/3이상 받아야만 했으나, 현재 ‘도시재정비촉진특별법(도촉법)’은 뉴타운 지정과 관련해서 주민의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 단지 “14일 이상 주민에게 공람하고 지방의회의 의견을 들은 후” 이를 신청서에 첨부하기만 하는 것이다.

먹고 사는 일이 빠듯하여 일하러 나가고 잠자러 들어오는 것이 전부일 수 있는 열악한 가옥주나 세입자에게는 살고 있는 동네가 재개발이 되는지 어떤지는 신경 쓸 여유가 별로 없다. 법은 교묘하게 가난한 이들의 이런 처지를 이용하여, 가난한 이들의 돈을 빼앗아 있는 이들의 배를 더 불리고 있다. 물론 도촉법 1조에는 ‘도시의 낙후된 지역에 대한 주거환경 개선과 기반시설의 확충 및 도시기능의 회복’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이미 도촉법은 있는 자들을 위해 법적 절차들을 생략하거나 규제를 완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도시의 유랑민 양산하는 뉴타운사업

살고 있는 사람이 중심이 아니라 건설자본이 중심이 되어 재개발사업을 진행하다보니 당연히 보다 높은 수익을 내기 위해 소형주택은 감소하고 중대형·고급형 주택을 중심으로 공급한다. 작은 집이지만 맘 편하게 살던 영세 가옥주는 높은 추가부담금을 감당할 수 없어 순식간에 세입자로 전락하게 되고, 적은 임대료를 받아 노후를 살아가는 노인들은 졸지에 수입원이 끊기고 오랫동안 살던 곳에서 떠나야 할 지경에 이른다.

세입자들은 살던 곳에서 비슷한 가격대의 전세나 월세를 찾지 못해 외곽으로 밀려나지만, 그곳도 언젠가 불어 닥칠 재개발의 광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미 몇 번 씩 재개발 때문에 보금자리를 옮겨야 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도 있다. 이미 도시의 유랑민으로 떠돌아다니는 신세다.

또 상가세입자들은 권리금과 인테리어 비용, 영업권에 대해 적절한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쫓겨나게 된다. 그 결과 뉴타운사업이 완료된 곳의 원주민 재정착률은 매우 낮다. 난곡재개발지역은 8.7%, 길음뉴타운1~6구역은 약17.1%, 은평뉴타운1지구는 약 20% 로 과연 누구를 위한 재개발사업인가를 묻게 만든다. 결국 재개발사업은 잘 살고 있는 마을공동체를 해체시키고 가진 자와 가난한 자를 편 가르고, 가진 자들 속에서 가난한 이들을 ‘그들만의 성’ 밖으로 내모는 것이다.

정부의 반사회적 행위로 학살당한 용산 철거민

거대건설자본과 용역업체, 공권력은 재개발사업의 공공연한 주체다. 공권력은 국민의 안정과 권익을 보호해야 할 책임을 저버리고 오히려 불법을 일삼는 건설업체와 용역을 비호하며 재개발사업을 돕는다. 공권력과 건설자본과 용역이 하나가 되어 진행되고 있는 도시재개발사업은 이 시대 약자들의 기본권을 박탈하고 삶의 터전에서 쫓아내는 반사회적인 행위이다.

이런 반사회적 행위에 대응하여, 더 이상은 이대로 살 수 없다고, 우리에게도 생존권이 있다고, 우리도 사람답게 살 권리가 있다고 천명하다가 학살당한 것이 바로 용산참사다. 공동체를 해체하고 가난한 이들을 유랑민으로 만들어 버리는 현행 재개발정책은 개선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또다시 제2,3의 용산참사를 불러올 것이다. 

내가 한국사회의 10%에 해당되지 않는다면, 용산참사는 남의 일이 아니라 언젠가 내 앞에서도 전개될 현실이다. 그러기에 90%의 서민이 서로 관심을 나누고 연대할 필요가 있다.  당장 나의 일이 아니라고 모르쇠할 일이 아니다. 더 이상 가난하다는 이유로 보금자리를 빼앗기고 재개발의 광풍에서 소중한 재산과 생명이 거대자본에게 침탈당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