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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열쇠들[구티에레스 신부] 4월 28일(부활 제2주일) 사도 5,12-16; 묵시 1,9-13. 17-19; 요한 20,19-31

이번 주일에, 우리는 우리에게 깊은 영향을 주는 진복을 선포하게 된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 왜냐하면 믿음에 의하여 우리는 생명을 나누기 때문이다: “그렇게 믿음을 통하여 여러분이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20,31) 주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은 생명을 일으키는 일로 변화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부활은 어떤 증거물로 제시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의 출현은 천천히 제자들의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 믿음은 제자들 가운데에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에 우리 마음을 들어 올리도록 해 준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요한 20,20) 그렇지만 이 현존과 그것의 열매인 기쁨은 친밀한 관상을 위한 것이 아니다; 대신 이것들은 사명을 위한 힘이다. 예수님은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시고 말씀하신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한 20,21) 아버지와 그분의 사랑으로부터 오는 사명, 용서하고 생명을 주려는 하느님의 갈망으로부터 그리고 (왜냐하면 “용서하는 것은 생명을 주는 것”이기에) “흩어져 있는 자녀들을 모으시려는” 그분의 관심으로부터 사명은 온다. 그러한 목적을 위하여 하느님은 그분의 아들과 그분의 교회를 보내고, 성령으로 강화시킨다. 성령은 “주님이며 생명을 주는 분”이다.

주님께서는 교회 안에 현존하고 교회가 세상을 향해 열려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교회는 수많은 때에 그 생명을 무릅쓰기를 두려워하고, 특히 적의와 죽음이 교회 주위에 만연되어 있을 때 무균의 고립 속으로 움츠러드는 경향이 있다. 오늘의 말씀이 말해 주는 것처럼, 주님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던”(20,19) 공동체 한가운데에 나타난다.

예수의 부활. (이미지 출처 = Pxhere)

그분은 죽으셨고 그리고 영원히 살아 계신다

아버지께서 그분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고 세상은 그분을 죽였으나, 그분은 사명을 다 성취하셨다: “아버지께서 저에게 하라고 맡기신 일을 완수함으로써”.(요한 17,4) 교회를 격려하기 위하여, 오늘날 주님께서 말씀한다: “나는 죽었었지만, 보라,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다.”(묵시 1,18) 그분은 생명의 주님이 되었다. 세례자 요한과 같이, 교회도 아버지께서 우리의 사명을 통하여 전해 주고자 하는 생명을 증언하도록 초대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초대에는 또한 우리들이 “예수님 안에서 더불어 환난을 겪고 그분의 나라에 같이 참여하며 함께 인내하는”(1,9) 참여자들이요 동료들이라는 사실이 내포되어 있다. 사명을 지닌 이 교회, 그래서 생명을 무릅써야 하는 이 교회에 주님은 말씀한다: “나는 죽음과 저승의 열쇠를 쥐고 있다”,(1,18)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처음이며 마지막이고 살아 있는 자다”.(묵시 1,17)

우리는 믿음을 통하여 생명을 얻게 되었고, 그러나 우리의 믿음과 주님께 대한 헌신은 초기 공동체에 의해 증명된 생명의 징표들로 변화되어야 한다.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백성 가운데에서 많은 표징과 이적이 일어났다.”(사도 5,12) 부활의 권능을 증언한다는 것은 비생명의 경계에서 생존하고 있는 가난하고 결핍된 사람들을 섬기는 것을 의미한다. 첫 공동체에서, “예루살렘 주변의 여러 고을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병자들과 또 더러운 영에게 시달리는 이들을 데리고 몰려들었는데, 그들도 모두 병이 나았다.”(5,16) 예수님의 현존의 권능이 생명으로 경험된다. 부활에,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존과 생명을 기념하고, 고통받고 무시되는 사람들의 희망을 기억한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 리마 출생. 의대를 졸업한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가 된 뒤에는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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