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장애인사목에 헌신, 군부독재 저항 추방 위기도

13일 세상을 떠난 지정환 신부의 빈소는 전주 중앙 성당이며 장례미사는 16일이다. (사진 제공 = 전주교구 홍보국)

13일 지정환 신부(88)가 세상을 떠났다.

벨기에 출신인 지정환 신부(디디에 세스테벤스, 전주교구)는 1959년 한국에 온 뒤로 평생을 농촌사목과 장애인사목에 헌신하고 군부독재에 항거하는 등 전쟁 이후 한국 현대사를 한국인과 함께했다.

1931년 12월 5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난 그는 1958년 사제품을 받고, 이듬해 한국에 왔다. 그 뒤 전주교구 전동 성당, 임실 성당, 부안 성당에서 사목했다.

부안 사목 당시에는 간척으로 농지 100만 제곱미터를 일구었고, 1967년 임실 성당 주임신부 시절에는 치즈 공장을 세우고 협동조합을 만들고, 유럽의 기술과 기계를 들여와 치즈를 생산해 농가 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했다.

또한 1970년대 내내 신용협동조합 운동을 펼치면서 당시 농민의 삶을 향상하는 데 애썼다.

그는 1980년대에는 장애인 사목에도 힘썼다. 그는 팔다리의 감각이 마비되거나 걷기 장애가 오는 등의 증세를 보이는 다발성 신경경화증을 앓았다. 회복과 악화를 반복하던 중 1970년대 후반부터는 허리 아래 일부가 마비돼 지팡이와 휠체어에 의존해야 했다.

1984년 교구 장애인사목 지도신부를 맡아 중증 장애인 재활센터인 ‘무지개의 집’을 만들고,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노력한 데 대해 2002년에는 호암상 사회봉사상을 받았다. 그는 상금 1억 원에 사재를 더해 2009년에 무지개장학재단을 만들어 장애인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그는 1983년 1월 1일 <가톨릭신문>에 장애인에 대한 교회의 관심과 배려가 부족하다며, “계단을 오르내릴 수 없는 장애자들이 마음 놓고 미사 참례만이라도 하도록 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 모두가 가장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2008년 5월 30일, 전주 중앙 성당에서 열린 금경축 행사에서 꽃다발을 받고 있는 지정환 신부. (사진 제공 = 전주교구 홍보국)

한편, 그는 1972년 유신헌법이 발표되자 박정희 정권의 독재를 반대하는 시위에 나서 경찰에 연행돼 강제 추방 위기에 놓이기도 했고, 인혁당 사건 규탄 시위에도 참여했다.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때에는 임실에서 우유를 싣고 광주로 가서 시민군에게 나눠 줬다는 일화도 있다.

법무부는 2016년 2월 한국 사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그에게 한국 국적을 줬다. 같은 해 9월에는 훈장 다음 격인 산업포장을 받았다.

장례미사는 빈소가 있는 전주 중앙 성당에서 16일 10시에 봉헌되며, 장지는 전주 치명자산 성직자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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