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경제적 성공이 곧 인격

우리 사회의 경제 제일주의 성공신화가 세월호 참사의 원인 중 하나라는 지적이 나왔다.

9일 예수회 이냐시오영성연구소 월례발표회에서 김기현 수사(예수회)가 “세월호 영령 앞에 바치는 신앙인의 양심성찰”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다.

양심성찰은 가톨릭의 기도법 중 하나다. 하루 중 시간을 내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감사한 뒤, 자신이 지낸 하루를, 즉 겪은 일, 만난 사람, 느낀 감정 등을 되짚으며 이에 대해 하느님과 대화하고 기도하는 방식으로 자신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돌아보는 데 도움을 준다. 

이 연구소 상임연구원인 김 수사는 서강대 신학대학원 석사과정 때 세월호 참사를 겪었다. 그는 수도자로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희생자를 애도하는 마음으로 세월호 참사를 주제로 논문을 썼으며, 이날 발표는 이 논문을 바탕으로 했다.

법제도 개혁만으론 부족, 인간성과 윤리적 쇄신 더 필요

“현재 위치에서 기다리고 배에서 밖으로 나오지 말라”

이는 세월호가 45도 이상 기운 상태에서 선원들만 탈출하던 참사 당시의 선내 방송이다. 승객들은 이 안내를 따랐지만 배가 계속 침몰한 2시간 반 동안 누구도 구조하러 오지 않았고 결국 304명이 목숨을 잃었다.

김 수사는 이를 지켜보며 “어른으로서 너무나 양심의 가책을 느꼈고, 살아남은 것이 부끄러워 무언가라도 해 보고 싶었다”고 당시 논문을 쓰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그는 지난 5년간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법과 제도, 정치, 언론 등 사회 구조적 문제에서 찾는 논의가 활발히 이뤄졌지만, 각 개인의 자기반성과 윤리의식의 개혁, 도덕적 쇄신에 대한 논의는 적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세월호가 침몰하고 승객들이 구조되지 못한 하나의 원인으로 우리 사회의 도덕적, 윤리적 가치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으로 봤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미국의 윤리신학자인 라인홀드 니버의 이론을 들었다. 법과 제도 개혁을 중심에 두는 사회구조적 접근법에서는 인간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놓치기 쉬우므로 사회개혁과 정의의 실현을 위해서는 인간성과 윤리의식에 대한 성찰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법과 제도를 바꾸는 것에만 그치는 것은 사회적 재난에 대한 일시적 해결일 뿐이라며, 인간성과 도덕성에 대한 사회의 신념과 윤리의식 수준을 살피는 것이 더 근본적이라고 했다.

예수회 김기현 수사가 "세월호 영령 앞에 바치는 신앙인의 양심성찰"을 주제로 발표했다. ⓒ김수나 기자

스스럼없는 경제 제일주의와 성공신화가 부른 참사, 세월호

김 수사는 사설 구조업체 언딘, 해양구조협회, 해운조합, 한국선급 등 해운업계와 관련 단체가 세월호 참사의 공범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명박 정부의 규제완화와 해운산업 민영화 정책에 따라 정부에게 각종 감독권, 인허가권 등을 받았다.

이들은 정부의 역할을 대신하면서 얻게 된 수익만을 좇으며, 돈이 되지 않는 안전과 생명 부문에는 예산 투자나 인력 배치를 소홀히 했다.

정부도 조직 축소와 예산 절감, 기업 자율성을 위주로 정책을 추진하면서, 관련업계와 단체들이 안전업무를 소홀히 하고 이권만 불리는 상태를 방관했고, 심지어 그 이권과 유착하는 도덕적 해이를 보여 줬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설명과 함께 그는 “경제 제일주의, 성공신화가 국가 통치라는 고단위 차원에서 스스럼없이 저질러졌다”면서 “이런 정신 지형은 사람이 떼죽음을 당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세월호 참사가 역사적 사실로서 보여 준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준법, 합리적, 비판적 도덕보다는 성공할 수 있다면 과정에 탈법이나 비양심, 부도덕이 있어도 결과로 덮을 수 있는 사회, 경제적 성공이 사람의 인격을 좌우하는 사회에 세월호는 그만하라고 말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그는 경제적 이득이나 효율성을 기준으로 사회 이슈를 다루지 않고 어떤 것이 질적으로 더 옳은 것인지를 판단한다면 사회의 윤리적 쇄신을 이룰 수 있다며 독일의 핵발전 지속 논의와 윤리적 척도를 사례로 들었다.

그에 따르면, 독일은 핵발전 구조조정 논의에서 생산성이 아닌 다음 세대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기준으로 핵발전이 옳은지를 논의해 결국 핵발전을 폐기하기에 이르렀다.

사회적 의사결정과 선택에서 “행복 기여도, 존엄성, 공정, 덕성”이라는 4가지 윤리적 척도를 기준으로 하라는 학계의 제안과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이며, 형제애와 보편적 사랑을 강조하는 그리스도교의 가치도 윤리적 쇄신을 위한 자원이 될 수 있다.

이와 함께 정치에 지속적 관심을 갖고 민주주의에 반하는 정치인을 선거를 통해 심판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중요 사회개혁 법안이 자주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기 때문에 국회를 소위와 상임위 위주로 개편해 항상 일하는 국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이날 발표에 예수회 박상훈 신부가 논평했다. ⓒ김수나 기자

그리스도인이라면 진실이 그대로 드러날 수 있도록 힘 실어 줘야

이날 논평을 맡은 박상훈 신부(예수회)는 김 수사의 발표처럼 세월호 참사를 도덕적, 윤리적 가치의 상실로만 설명하기에는 너무 깊고 큰 상처를 준 사건이라고 봤다.

그는 법과 제도의 변화보다 인간 본성의 변화가 더 먼저라는 관점에는 한계가 있다면서, “성서적 전통에서 악은 개인의 마음과 태도에만 있지 않고, 사회구조 자체에서 악이 재생산되므로 개인의 윤리적 태도의 변화를 더 중요하게 보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그는 세월호에 대한 양심성찰을 하려면, “사회적 고통이란 현상에서 출발해야 고통의 핵심에 더 잘 도달할 수 있다”며 “사회적 고통의 진실이 내 안으로 충분히 들어올 수 있도록 나를 열어 두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 신부는 많은 이가 세월호 참사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세월호를 잊으려 한 것은 “진실이 폭발하면 너무 무서워 도망가려 한 것”이라며,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진실이 그대로 드러나도록, 진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현 수사도 “세월호 참사로 인한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계속 기록하고 기억으로 남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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