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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와 온화함[구티에레스 신부] 4월 7일(사순 제5주일) 이사 43,16-21; 필리 3,8-14; 요한 8,1-11
'간음한 여인', 콜럼버스에 있는 성 마리아 막달레나 교회. (사진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사랑이 없다면, 용서도 없다. 화해는 죄인의 굴욕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만남의 결과다.

불일치에 대한 비난

죄를 지은 사람 앞에서 그것도 여성 앞에서 보여지는 예수님의 전혀 새로운 태도가 오늘 복음의 절정이다. 간음을 저질렀을 때 여성의 경우 율법은 죽음을 선고했다. 주님께 문제를 들고 온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예수님이 실수하면 고소할 생각이었다.(요한 8,4-6) 예수님은 땅에 무엇인가 신비스럽게 쓰기 시작함으로써 비난자들을 비난받는 사람들로 만들고 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 이러한 도전은 우리 자신의 행동은 접어 두고 다른 이들을 비판하는 우리의 끈질긴 성향을 볼 때 아직도 유효한 도전이다. 주님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들의 불일치를 거부한다. 비난과 용서까지도 자기의 양심을 성찰하면서 해야 한다.

여인이여, 그들은 어디 있는가?

간음을 한 사람이 남자면, 판결은 죽음이 아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모두 남자들인 고소자들을 하나씩 사라지게 만든다.(요한 8,9) 예수님의 행위는 죄인에 대한 용서이지만 또한 여인에 대한 잔인함의 거부이며 여성들과 남성들에 대한 이중 기준의 거부다. 이 이중잣대는 또 다른 형태의 불일치요 모순이다. 여인은, 그가 여성이기 때문에 중죄를 짓는 것이 되고 남자의 죄는 가벼워진다. 무슨 이유로? 예수님은 이러한 이중잣대를 가진 황당한 공의를 거부하고 부드럽게 간음죄로 붙잡혀 온 여인에게 말한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8,11)

주님은 과거에 초점을 두지 않는다. 사악한 것은(“다시는 죄짓지 마라”) 거부되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는 미래로 향해야 한다. 하느님은 항상 우리 안에서 새로운 어떤 것을 이루신다.(이사 43,19) 그리고 하느님처럼, 우리는 앞으로 벌어지는 일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과거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바오로가 말하듯이,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내달린다”.(필리 3,13)

용서는 죄지은 사람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한다. 사랑이 없다면 용서는 없다. 간음한 여인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는 그분의 예민함과 온화함을 잘 보여 준다. 다른 사람을 신뢰하는 그분의 능력, 그리고 어떤 형태든지 바리사이주의를 거부하는 것이 모두 이런 자질에 속한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 리마 출생. 의대를 졸업한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가 된 뒤에는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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