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천지창조. (이미지 출처 = Max Pixel)

학교 수업을 통해 알고 지낸 학생이 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시간 좀 내 주실 수 있느냐 해서 함께 차를 마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최근에 예비자 교리를 들을 결심을 했다고 말을 꺼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그리스도교 신앙과 관련하여 평소에 가지고 있던 몇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언젠가 신학 관련 수업을 들으면서 생겼던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오늘 속풀이에서 다뤄 보고자 합니다.

사실 “하느님은 세상에 만연한 악을 그냥 내버려 두시는 것 아닌가?”에 대한 답은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떤 답도 사람들이 느끼는 아쉬움을 해소시켜 주지 못할 것이니까요. 그래서 단지 그 친구에게 설명했던 내용만 정리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놀랍게도, 우리가 믿고 있는 하느님은 우리가 바라는 것처럼 전지전능하신 분이 아닙니다. 논리적으로 생각해 볼 때 하느님께서 온 우주를 가득 채우고 계셨다면, 당신이 창조하신 세상은 그 어디에도 끼어들 틈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당신의 권능을 피조물에게 자리를 내어 주는 데 사용하셨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창조 작업으로 인해 이미 당신의 권능은 그만큼 축소된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전지전능하지 않은” 하느님께서는 인간들이 저지르는 악에 대해서 늘 교정을 원하셨는데 그 방식이 인간의 협조를 통해서 그 일을 실행하신 것입니다. 노아도, 모세도, 유명한 예언자들도, 예수를 낳은 마리아도 다 그분의 협력자들이었습니다. 악을 극복하고자 하는 이 노력을 우리는 구원을 향한 여정이라고 봅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전지전능함을 통해 말 그대로 온 우주를 다 덮어 버릴 수도 있는 분입니다. 그러면 세상은 창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버릴 것입니다. 완전 볼 게 없는 것이죠. 그래서 이해하자면, 하느님은 세상에 만연한 악을 방관하신다기보다는 우리를 기다려 주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기다림은 사람들과 연대하여 세상을 “보시기에 좋았던” 그 시원의 모양새로 복원하시고자 하는 하느님의 태도입니다. 저는 그 학생에게 우리의 하느님은 그런 분이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제 설명을 통해 그 친구의 속이 얼마나 풀렸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자신이 뭔가 좀 더 생각해 보는 데는 자극이 되었을 것이라 어림해 봅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