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만 큰 소녀들도 곧 터진다

(윌리엄 그림)

약 50년 전, 미국 주교회의는 미국의 사제직 상황에 대한 연구를 위촉한 적이 있다. 여러 분야에 걸친 학제간 연구였다. 핵심 연구는 당시 미국 교회에서 유명인사이던 앤드루 그릴리 신부와 유진 케네디 신부가 했다. 그릴리 신부는 사회학자이고, 케네디 신부는 심리학자다.(미리 밝힘: 나는 신학생 때 이 연구의 초기 단계에 케네디 신부의 사무보조로 일했다는 연관이 있는 사람임.)

이들의 연구 결과는, 특히 심리학적 부분에서는 미국 사제의 대다수가 불만 상태일 뿐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저개발 상태이며, 따라서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발전시킬 수 없음을 보여 줬다. 사제들은 성직주의 문화에 맞게 양성되고 흡수되는 과정에서, 이런 양성은 빠르면 13살부터 시작되는 경우도 많았는데, (성숙한 성인으로 크지 못하고) 영원한 소년(기)으로 굳어졌다.

사람들은 주교들이 이 연구 결과를 가슴에 새기고 상황을 개선하기를 기대했지만, 주교들은 자기들이 맡긴 이 연구 결과를 무시해 버렸다. 그릴리는 호전성으로 유명했다. 이런 상황을 보고, 그는 “나는 정직한 사람으로서, 현재의 교회 지도부는 도덕적, 지적, 종교적으로 썩었다고 믿는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세계 곳곳에서 성직자에 의한 성학대와 은폐 사건들이 크게 보도되는 이제, 그 누구라도 그릴리가 얼마나 옳은 말을 했는지 다 알 것이다. 이러한 언론 보도의 뒷면에는 그릴리와 케네디가 이끈 사회과학자들이 경고했던 문제가 놓여 있다. 당시 주교들이 행동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전체 가톨릭교회가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성직자에 의한 성학대, 그리고 여러 형태의 학대는 성(sex)이 아닌 권력 오용, 또는 남용과 관련된 것임이 잘 입증된 상태다. 그리스도교 신자에게는 이는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악마가 예수에게 권세를 주겠다고 유혹했을 때, 이 유혹자는 권세는 자기 것이며 따라서 (남에게) 나눠 줄 수 있다고 선언한 것이다. 예수는 그 선언에 토를 달지 않았다.

미성숙한 남자아이들은, (실제) 나이가 몇이든 간에, 권력을 남용하고, 갑질을 해 댄다. 그리고 대개 이런 갑질의 피해자는 자기들보다 더 약한 다른 소년들이다. (성직자 성학대 사건에서) 소년들이 피해자인 경우가 놀랄 만큼 많은 배경에는 아마도 이런 이유가 있을 것이다. “동성애” 때문이 아니다. 조사연구를 보면 성직자에 의한 성학대는 동성애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또한, 이 점에 관해서는, 독신제 때문도 아니다. 이런 미성숙한 남자아이들이 자기보다 더 약한 다른 아이에게 저지르는 갑질은 보통은 학교 운동장에서 벌어지지만, 그런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남성이 성당 제의실을 책임 맡고 있을 때는 장소가 제의실로 변한다.

지난 3월 13일, 호주의 조지 펠 추기경이 아동 성학대 유죄 판결을 받던 날, 법원 앞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서 있던 피해자들. (사진 출처 = UCANEWS)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사제 양성에 변화를 일으킨 뒤로는 사제와 주교에 의한 성학대 사례가 줄었다는 점은 강조할 가치가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성학대와 은폐 사례의 대부분은, 그 대상이 아동이거나 아니면 신학생 같은 청년이거나 간에,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에 사제 교육을 받고 사제가 된 이들이거나 (제2차 바티칸공의회 뒤에도) “좋았던 옛날”의 방식을 고집한 교육기관에서 양성되어 사제가 된 이들이 저질렀다. 그러므로, 설사 앞에서 말한 1960년대 연구결과에서 나온 권고사항들이 온전히는 아니고 일부만이라도 실행됐다면 상황은 더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미성숙한 성직자 모두가 소년 또는 소녀, 심지어 청년을 학대하지는 않는다. 더 피해자가 많은 것은, 아동 성학대 문제가 (이에 비해) 너무 크게 부각됐다는 점이 요즘에야 인식되고 있는데, 여성들이 사제와 주교에게 당한 것이다. 물론 여성 성학대는 성직자들만 저지른 것이 아니다. 미투 운동으로 우리는 여성 학대가 모든 종류의 미성숙한 남성들 사이에 더욱 흔한 형태의 학대임을 알게 됐다.

그리고 여성들. 작은 소년들은 자라기는 하지만 그저 키만 더 큰 소년이 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이에 비해) 작은 소녀들은 자라서 여자가 될 능력이 더 좋아 보인다. 하지만 모든 작은 소녀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작은 소녀가 성숙한 여자로 자라지 못하는 문제를) 교회라는 특정한 상황을 놓고 보자면, (수녀회의) 수련원, 수녀원, 학교, 고아원을 비롯해 수녀들이 운영하는 기관들에 놓인 이 폭탄이 터질 도화선이 지금 불이 붙으려 연기를 내고 있다. 수녀들에 의한 소녀를 비롯한 다른 여성, 소년 학대 문제는 화약통이다.

이 모든 것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첫 번째 교훈은 가톨릭교회가 겪고 있는 현재 위기는 그게 언제든 가까운 시일 안에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 문제는 이제 겨우 시작됐을 뿐이다. 앞으로 더 많은 폭로, 더 큰 폭로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터질 폭발들로 일어난 먼지가 가라앉고 교회가 회복되려면 앞으로 여러 세대가 지나야 할 것이다. 현재 상황을 500년 전 종교개혁과 비교하는 이들이 있는데 맞는 말이다. 우리는 아직도 500년 전 종교개혁 때 입은 상처와 타격에서 회복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갈수록 많은 수의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이 숫자는 폭로가 이어질 때마다 더 많아질 것인데, 누가 그들을 비난할 수 있겠는가?

남기로 결정한 사람들은? 현 상황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우리가 고해성사 중에 하는 것과 같은 행동이 되어야만 한다. 통회, 고백, 회두.

통회는 교회 지도부가 보호하지 못함으로써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내보이는 공감과 겸손한 정직함에서 시작되며, 무엇보다 먼저 그들에게 큰 피해를 입힌 미성숙한 자들을 처벌하는 가운데 더 잘 이뤄질 것이다.

고백은 문제를 뿌리뽑는 일에 수동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선제적으로 움직이는 데서 이뤄진다. 심지어 지금도, 교회 지도자들이 해야 할 일이 미디어와 사법제도에 의해 수행되고 있다. 이런 일이 더 많이 일어날수록 일은 더 나빠질 것이다. 이 고백에는 법적 처벌이나 나쁜 평판이라는 위협에 강요됨이 없이 (먼저) 시민사회의 기준에 맞춰 협력하는 것이 포함된다.

회두에는 성직 생활과 수도 생활이라는 모습에 상당한 변화가 있다는 형태로, 교회의 실제 운영에 더 많은 평신도가 성직자, 전문가들과 마찬가지로 참여하는 형태로 이뤄질 것이다.

그렇게 하고서, 앞으로 수백 년에 걸쳐 치유가 이뤄지는 가운데, 우리는 이 질병이 치명적이지만 고칠 수 없는 것만은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고,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치유의 길을 따라갈 용기와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만 한다.

(윌리엄 그림 신부는 뉴욕 태생의 사제로 도쿄에서 활동하고 있다. 캄보디아와 홍콩에서도 일하고 있으며, <아시아가톨릭뉴스>의 발행인이다.)

기사 원문: https://www.ucanews.com/news/schoolyard-bullies-in-the-sacristy/84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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