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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아버지[구티에레스 신부] 3월 31일(사순 제4주일) 여호 5,9-12; 2코린 5,17-21; 루카 15,1-13.11-32

사순시기는 모든 그리스도교의 기념제가 기쁨과 또한 용서의 특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을 수 없게 한다.

죽음으로부터 생명으로

보통 때처럼, 바리사이들과 율법자들은 여전히 경계하고 조심한다. 그들은 예수님이 공적으로 죄인이라고 간주되는 사람들, 그 이유 때문에 그들이 소외시키고 경멸하는 사람들을 환영했다고 비난한다.(루카 15,1) 이것이 계기가 되어 루카는 주님의 태도에 있는 동기를 드러내는 아름다운 비유 세 가지를 전해준다. 마지막 두 비유는 루카 복음서에만 있다. 오늘 우리가 읽는 것은 세 번째 비유이다. 이것은 전통적으로 되찾은 아들의 비유라고 알려져 있다. 이 비유에 대한 더 나은 제목은 아마도 친절한 아버지일 것이다.

실제로, 아버지가 이 비유의 중심인물이다. 자기 몫의 유산을 다 낭비하고 비참한 지경에 처한 둘째 아들은 그의 행동을 후회한다. 아버지를 알고 있는 그는, 그가 집에 돌아갈 수 있고 용서를 청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15,11-19) 이 아들이 경험으로부터 그의 아버지의 사랑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아버지의 반응은 아들을 압도할 것이다. 아들은 마음속으로 그가 어떻게 뉘우칠지 준비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를 말하지도 못하게 하고, 아들을 맞으러 뛰어나가 그를 먼저 포옹한다. 아들은 그가 오랫동안 준비한 말을 되뇌이지만, 아버지의 사랑 앞에서 그 말은 형식이 되어버린다.(15,20-21) 용서는 참회하는 죄인으로부터가 아니라 맞아들이는 사람으로부터 온다. 용서하는 것은 생명을 주는 것이다.

사랑하는 것과 잔치를 벌이는 것

모든 진정한 기쁨처럼, 아버지의 기쁨도 나누어져야 한다; 그냥 담아둘 수는 없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다시 불이 켜진 우정을 다른 사람들도 함께 즐거워할 수 있도록 잔치를 계획한다.(루카 15,21-24) 큰아들은 항상 올바르게 처신해왔는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아버지에게 화가 나서 그에게 속한다고 생각한 것을 달라고 요구한다.(15,25-30) 그의 태도는 마태오 사가가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에서 묘사한 태도를(마태 20,1-16) 연상시킨다. 아침 일찍부터 일한 일꾼들은 늦게 도착한 사람들이 자기들과 똑같은 임금을 받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시기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은 사랑의 무상성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큰아들의 경우에도 이와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아버지의 기쁨은 집으로 돌아온 작은아들이 생명으로 돌아왔다는 사실로부터 오는 것이다.

사랑의 무상성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복음을 단순히 어떤 의무조항들로만, 외적 규칙으로, 도덕적 가치가 없이 권위의 보장이라고만 여긴다면, 우리는 복음을 희화화하는 것이다. 사랑의 무상성만이 사랑을 표현하는 창조적 방식들을 보장하기 때문에, 우리는 바오로 사도와 함께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모든 것이 새것이 되었습니다.”(2코린 5,17) 새로움은 항상 이웃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새롭게 만드는 하느님의 영원한 사랑으로부터 온다.(5,18-19)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드러낸 그 새로움의 “사절들”이다.(5,20)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 리마 출생. 의대를 졸업한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가 된 뒤에는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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