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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침묵, 침묵의 신비[신학과 성찰 - 조민아]
이 글은 <가톨릭평론> 2019년 3-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말로 담지 못하는 것을 품는 침묵

원고청탁을 받던 날, 나는 침묵에 관해 묵상 중이었다. 주님 공현 대축일 다음 날이었고, 전날 미사의 강론이 마음에 깊이 남아 있던 까닭이다. 강론의 주제도 침묵이었다. 사제는 동방박사들이 그 어린 아기와 순박한 부부를 마주한 순간에 존재했을지 모를 침묵을 이야기했다.

"비범한 별을 발견하고 길을 나섰을 때, 이들은 찬란한 왕좌에 앉아 있을 어린 왕을 상상했을 것입니다. 적지 않은 비용과 위험을 감수하고 먼 길을 여행하여 마침내 별이 머무른 곳에 닿았으나 이들이 발견한 것은 여물통에 누워 있는 핏덩이 아기와 가난한 부부였지요. 이들의 첫마디는 무엇이었을까요. 젊은 어미는 이 이방인들의 차림새와 손에 든 값진 선물을 보며 아마도 이들의 신분을 짐작했을 것입니다. 어미는 부끄럽고 민망하여 이렇게 물었을지 모릅니다. “저희가 이렇게 누추합니다. 실망....하지 않으셨나요?” 여행을 시작하던 때의 설렘과 기대를 떠올리며 박사들은 잠시 침묵했을 것입니다. 길고 어색하게 느껴졌을지 모를 그 침묵 끝에, 아마도 그들 중 한 사람이 단호하고 깊은 어조로 이렇게 대답하지 않았을까요? “아닙니다.” 단지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 그들은 아무 설명이 필요 없음을 서로 알았을 것입니다."

침묵은 말이 담지 못하는, 말로 다다르지 못하는, 말이 되어서는 안 될, 이렇게 깊고 아득한 것들을 품는다. 오로지 침묵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들이 있다. 말이 없었기에 비로소 열리는 광대한 소통의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 말이 개입하면 아무리 수려한 언사라도 소통을 방해한다. 때로는 방해를 넘어 폭력이 되기도 한다.

사실 침묵의 종류는 사람의 감정만큼이나 다양하다. 침묵은 경외, 환희와 슬픔과 같은 깊은 감정의 그릇이 되기도 하지만, 무관심과 경멸, 시기, 실망, 수치, 두려움, 비겁함, 이기심, 또 권태와 피로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렇게 규정하기 힘든 것이 침묵이지만, 침묵이 지향하는 방향을 생각한다면 아마도 두 가지 종류로 구분할 수 있겠다.

우선 소통을 거부하는 침묵이 있다.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흔하게 발견하는 침묵이다. 이 침묵은 관계를 포기하고 고립을 택한다. 눈을 감고, 귀를 닫고, 감각을 봉쇄하고, 어느 누구와도 감정을 교류하지 않는다. 이런 종류의 침묵에 익숙해진다면 인간은 끝내 입력된 반응만을 반복하는 기계가 되어 버릴 것이다.

그러나 다른 침묵이 있다. 위의 강론이 초대한 그런 침묵이다. 소통을 향한 열망을 극한의 지경으로 활짝 열었을 때 경험하는 역설적인 침묵이다. 눈과 귀와 피부의 감각을 모두 열고 살아 있는 것들과 투명하게 만날 때, 그들의 행복과 고통의 정점을 보았을 때, 그 도저함을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어 입을 다무는 그런 침묵이다. 이 침묵은 세 치 혀의 잔망스러움을 거두고 겸허히 말을 지움으로써 나와 당신 사이에 빈 공간을 연다. 말에 가리어 들을 수 없었던 깊고 가늘고 안타까운 소리를 듣게 한다. 그 소리는 하느님의 음성이다.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이 두 번째 종류의 침묵에 관한 것이다.

18세 소녀 T의 죽음

2015년 여름, 나는 4년 동안 가르치던 대학교에 사직서를 내고 미국 중서부의 도시 시카고로 이사했다. 아름답지만 총기폭력과 빈부격차의 그늘이 짙은 이 도시에 살았던 3년 동안 나는, 흑인들과 라틴계 학생들이 대다수인 작은 여자고등학교의 대체교사로, 시카고에 인접한 인디애나주 게리(Gary)의 여성 노숙인 자활시설에서 임상사목 인턴으로, 또 시카고 서부 빈민가의 노숙인 정신보건 시설에서 워크숍 진행자로, 도시의 주변부에서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 일할 기회를 얻었다.

T는 내가 2015년 가을학기 대체교사로 근무하던 고등학교의 상급생이었다. 그 학교의 대다수 학생들이 그렇듯이, T 또한 빈곤 가정의 학생이었다. 어린 그들에게 삶은 힘겨웠다. 누군가는 안경점에 데려가 줄 어른이 없어 부러진 안경을 학기 내내 콧방울에 걸치고 다니기도 했고, 누군가는 직장도 잃고 집도 잃은 부모를 떠나 친척집을 전전하며 살기도 했고, 누군가는 수업이 끝나면 성인 클럽에서 일하며 용돈을 벌기도 했다. 나는 그 학교가 회색도시 시카고의 약하디약한 피부라 생각하곤 했다. 보호막이라곤 없는 그 연약한 살갗은 사소한 상처에도 피가 솟고 발갛게 부풀어 올랐지만, 앓는 것에 익숙했다. 아이들은 그 나이 때의 여느 아이들처럼 잘 웃었다.

T는 열여덟 살, 동급생들보다 나이가 많았다. 나는 T의 생김생김을 그저 흐릿하게 기억할 뿐이지만, 그 아이의 눈만큼은 제법 분명하게 떠올릴 수 있다. 도드라지게 짙은 눈썹 아래로, 아이의 눈동자는 검고 깊어 감정을 읽기 어려웠다. “Old Soul.” 교사들은 T를 그렇게 기억했다. T는 그해 겨울에 시카고 외곽의 한 아파트에서 사체로 발견되었다. 행방불명된 지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50대 남자의 사체와 함께 있었고, 아파트는 그 남자의 소유였다. 시카고 강력 사건 보도가 흔히 그렇듯, 신문의 보도는 짧았다.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고, 사체는 훼손되지 않았다. 약물을 흡입한 흔적이 있는지 조사 중이라 했지만, 신문에는 그 이상의 언급이 없었다. 소식이 끊긴 지 수일 만에 나이든 남자와 죽은 채로 돌아온 아이의 마지막 시간을 두고 추측만 무성했다. 쉬쉬하며 떠도는 말들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증거보다 더 잔인했다.

T의 장례식에 갔다. 검은 옷을 입은 소녀들로 붐볐다. 파릇파릇한 육체의 생기에 어울리지 않는 검은 옷들만큼이나 장례식엔 삶과 죽음이 불균일하게 섞여 있었다. 미국 장례식에는 참석한 지인들이 고인에 대한 기억을 나누는 시간이 있다. 어린 문상객들이 하나둘씩 나와 마이크 앞에 섰다. 그들은 기억이 말로 표현되지 않아 흐느끼다, 즐거웠던 시간들이 떠올랐는지 까르르 웃다, 흐읍 숨을 들이쉬고는 고개를 떨구고 오열했다. T의 죽음은 그렇게, 부피도 무게도 없이 방안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발작처럼 가슴을 꾸욱꾸욱 짓누르는 통증이 되어 부당함을 호소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장 뚜렷하게 드러내는 것은 T의 얼굴이었다. 죽음을 가리려고 짙게 화장하고 고요하게 누워 있는 소녀의 몸은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작았다. 그것은 그저 물질이었다. 땅에 떨어진 지 오래된 나무껍질처럼 딱딱하고 거칠고 뻣뻣했다. 생명이 완전히 빠져나간 열여덟 살의 육체라니, 이렇게 극명한 부조화가 있는가, 나는 망연했다.

장례식은 T의 친척에게 소개받아 왔다는 젊은 목사가 진행했다. T를 잘 알지 못한다는 그는 성령의 부름을 받아 그 자리에 섰다고 했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복음선포라고 확신하는 듯했다. “하느님의 뜻이오!” 젊은 목사는 모든 것이 신의 계획이니 살아 있는 자들은 그저 신의 영광을 드러내면 된다 했다. 크고 웅장한 그의 목소리는 장례식장 내에 분리가 되지 않은 채 서로 걸쳐 있던 산 자들의 영역과 떠나간 자의 영역을 갈랐다. 신음과 원망과 아쉬움과 미안함, 말로 표현되지 못했고 표현될 수 없는 모든 것이 ‘하느님’이라는 이름 아래로 접수되었다. 죽음 앞에 드러난 알 수 없고 돌이킬 수 없는 모든 것이 ‘신’이라는 만능 해결사의 이름으로 마름질되었다.

나는 화가 났다. 열여덟 살 소녀의 죽음을 도대체 무슨 고고한 섭리로 설명할 수 있으며, 그 쓸쓸한 빈자리에서 어떻게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가. 이해할 수 없다면 입을 다물어야 한다. 소녀의 빈자리는 그렇게 비통한 채로 그 자리에 남겨져 있어야 했다. 나는 그 자리에 더 머물렀어야 하는, 말이 될 수 없는 그 도무지 알 수 없고 혼란스럽고 무겁고 끈끈하고 서럽고 절망스러운 것들이, 신의 이름을 빌려 정리되는 것이 못마땅했다. 내가 아는 신은, 그 자리에 있었던 하느님은, 소녀의 빈자리를 차고앉아 뻔뻔스럽게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그런 신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빈자리를 지키는 침묵이다. 그는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할 수 없는 채로 품으며 그 자리에 고요하게 머물렀던 침묵이다.

하느님의 침묵을 묵상하며

3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 그 장례식을 잊지 못한다. 그날은 내게, 하느님의 이름이 오용되는 장면을 목도한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 있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하느님의 침묵이 어떻게 고통 가운데 존재하는지, 하느님의 침묵이 왜 하느님의 무관심이 아닌지, 하느님이 침묵을 통해 어떻게 소통하시는지, 그 깊이에 아주 조금 다가간 날이기도 하다.

"신을 기다리며"(Waiting for God)에서 시몬느 베유는 “고통 그 자체 그 깊은 곳에서, 결코 위로받을 수 없는 통렬함 바로 그 한가운데서 하느님의 자비는 빛을 낸다”라고 말했다. 하느님의 자비는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무엇’이 아니라 단지 거기, 고통 속에 있을 뿐이며, 가늠할 수 없는 깊이로부터 올라와 우리를 건드리고 감싸 안을 뿐이다. 이때 말과 지식은 의미를 담지 못한다. “하느님의 존재에 관한 지식은 어떤 위로도 주지 않는다. 말은 고통이 주는 공포를 덜어줄 수 없고, 찢긴 영혼을 치유할 수도 없다. 그러나 고통과 함께하는 이들은 고통 속에서 확실하게 깨닫는다. 하느님의 사랑은 그 통렬한 고통과 상처의 본질임을.” 그리고 베유는, 이 하느님 체험은 고통에서나 환희에서나 다르지 않은 한가지라 했다. 나는 그날 이후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열여덟 소녀의 죽음과 같은 황망한 삶의 비극 앞에서, 인간이 개발한 소통의 도구인 언어는 무용하다. 오직 침묵만이 그 안타까움과 분노를 담을 깊이가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인간이 언어의 한계를 깨닫고 침묵하는 순간은 비로소 언어와 이미지에 가려져 있던 본질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고 아무것도 표현할 수 없어 단지 침묵 속에 남을 때, 우리는 비로소 심장에서 차오르는 뜨거운 느낌을 감지하고 겸허히 그 박동을 듣는다. 그리고 박동의 근원인 하느님께 향한다.

그 순간부터 우리는 신비를 경험한다. 듣지 못하던 것들을 듣고, 보지 못하던 것들을 보기 시작한다. 울음인지 웃음인지 모를 소녀들의 흐느낌이 마침내 들리기 시작하고, 깊고 검은 소녀의 눈동자가 보이기 시작하고, 관에 누워 있는 작은 소녀의 몸에서 그가 겪었을 방과 후의 외로움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이런 침묵은 분석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모든 하느님의 신비가 그러하듯 말이다. 그저 잠기는 것이며 스며드는 것이다. 마음을 여는 것이고, 함께 우는 것이다. 몸을 움직여 묵묵히 다가가 어깨를 내어 주는 것이다. 이렇게 침묵은, 어떤 언어도 표현할 수 없는 위로와 인내를 건네고, 공감과 연대의 지평을 연다. 그 안에서 우리는 말 없이 바라보고 소통한다. 사람과 사람으로 소통하고, 나와 당신 속에 있는 하느님과 하느님으로 소통한다.

침묵 안에서 맞는 사순 시기

고통 속에서 침묵으로 현존하는 하느님은, 그 건너편, 지극한 기쁨과 환희 속에서도 침묵으로 현존한다. 인간이 말을 잃는 순간은 지극한 고통 속에서뿐 아니라, 넘치는 기쁨 속이기도 하다. 새롭게 태어난 생명 앞에서, 깊이 사랑하는 이의 웃음 앞에서, 긴 겨울 끝에 찾아온 봄 앞에서, 우리는 말을 잃는다. 격렬한 생명의 환희 또한, 침묵밖에는 담을 그릇이 없다. 이렇게 죽음과 부활은 결국 하느님의 신비 안에서 하나가 된다. 침묵은 죽음과 부활을 연결한다.

참으로 말이 많은 세상에서 우리는 다시 사순 시기를 맞는다. 나는 이 사순 시기에 내가 겪었던 말이 될 수 없는 많은 것을 묵상하려 한다. 알츠하이머에 걸려 기억과 말을 동시에 잃어가던 여성 노숙인이 내게 그려 주었던 푸른 장미를 거머쥔 판다를, 분노를 조절하기 힘들어 수시로 약을 먹던 한 청년 노숙인이 썼던 시, 아니 시라기보다 분절된 이미지가 나열된 그 단어들을,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했던 노숙인 흑인 청년이 겪었을 폭력의 밤을, 스물네 살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이 남긴 배낭 속 컵라면을, 이제 5주기를 맞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아, 그리고 예수의 십자가, 침묵 속에서 죽어 오직 침묵으로만 만날 수 있는 그 십자가, 모든 신비의 근원이며 죽음과 부활을 잇는 그 깊고 슬픈, 그러나 희망과 환희의 십자가를.

조민아 

평신도 신학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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