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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구티에레스 신부] 3월 24일(사순 제3주일) 탈출 3,1-8. 13-15; 1코린 10,1-6. 10-12; 루카 13,1-9

사순시기는 보통 참회의 시기로 여겨진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를 죄와 그 결과에 대한 편협하고도 억압적인 관점에서 해방되도록 해 준다.

죄를 짓는 것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다

루카 복음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역사의 사건들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 사건들에 대한 예수님의 대화는 그분의 백성들의 삶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들과 그분의 가르침이 어떻게 어느 정도까지 연관되는지 우리가 보도록 해 준다. 기쁜 소식을 선언한다는 것은 일어나고 있는 일을 민감하게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가능할 수 없는 일이다. 하느님나라는 역사로부터 분리되지 않는다. 하느님나라는 역사에 질문을 던지고 역사를 해석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 삶의 사건들도 우리들로 하여금 메시지의 범위에 대하여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여기에서, 주님은 그분 메시지의 중요한 측면을 강조하기 위하여 두 사건을 이용한다. 그 메시지란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불운과 죄 사이에는, 그 원인이 인간에서 오든(빌라도, 루카 13,1) 아니면 우연한 것이든,(13,4)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메시지다. 이 선언에 의하여, 예수님은 당대에 매우 상식처럼 받아들여졌던 개념에 반대한다. 그것은 질병, 불운, 가난이 죄를 저지른 것 때문에 오는 결과라는 사고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오늘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이처럼, 각박한 생활고에 덧붙여서, 가난하고 병든 이들은 고통스러운 죄책감에 짓눌린다.

주님은 이러한 관점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 준다. 이러한 관점은 한편으로, 우리에게 일어나는 사악한 일들의 진짜 원인을 대면하지 않고 어떤 운명의 탓으로 돌리며 우리를 수동적으로 만든다. 다른 한편, 이러한 관점은 우리에게 사랑과 생명의 하느님에 대하여 잘못된 이미지를 준다. 예수님이 이어 즉시 따라오는 비유에서 언급했듯이,(13,6-9) 죄를 짓는 것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하느님께서 인내롭게 우리의 행동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 하느님은 징벌의 하느님이 아니라 사랑의 하느님이다.

죄를 짓는 것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 Flickr)

나는 생명이다

바오로는 구약을 해석하는 데 있어 중요한 원칙을 알려 준다. 그 원칙은 구약에서 말한 것이 단순히 과거에 속하는 것이 아니며, 오늘날 우리들에게 메시지를 전해 주고 있다는 원칙이다.(1코린 10,11) 탈출기의 구절은 주님이 모세에게 백성의 해방을 맡기는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사명을 준다. 왜냐하면 그분은 억압받는 백성들의 외치는 소리를 들었고 그래서 그들을 공의로운 사회를 세울 수 있는 땅으로 데려가고자 원하기 때문이다.(탈출 3,7-9)

이것이 하느님의 이름, 자주 “나는 있는 나다”라고 번역되는 야훼라는 이름이 나타나는 직접적 배경이다. 그런데 이 단어에는 또 다른 의미가 가능한데, 매우 흥미로운 측면이다. 성경의 사고방식에서 보면 삶이란 “함께 살아가는 것”, “누구를 위하여 사는 것”,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현존하는 것”이라는 의미들을 내포하고 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친교를 뜻한다. 죽음은 그와 정반대다. 절대적 고립이다. “야훼”라는 말은 이러한 맥락의 해석을 따라야 할지도 모르고 따라서 정확하게 이런 의미일 수 있다: “나는 너와 함께 있는 존재, 나는 생명이다.” 하느님의 현존은 창조적이고 해방을 가져온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 리마 출생. 의대를 졸업한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가 된 뒤에는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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