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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가[신학 오디세이아 2 - 박정은]

봄이 오는가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띄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늘 삼월은 아직은 쌀쌀한 가운데, 그렇게 꽃을 피우며, 우리에게 다가왔었던 것 같다. 입학을 하고 아직은 어색한 교실 창가에 드는 햇빛을 보면서, 내가 살아갈 세상을 막연히 꿈꾸었던 것 같다. 내가 다닌 여자 고등학교는 삼일 정신을 기리느라 강당을 “삼일당”이라 불렀고, 조회 때는 “민족 정기 삼일 정신이 솟구친다”는 노래를 늘 불렀었다. 그래서인지, 그 삼일 운동이 일어난 지 백년이 되는 올해의 삼월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학생들과 함께 찍은 사진. ⓒ박정은

나는 오늘 내가 가슴을 두근거리며 기억하던 그 민족정기를 가지고 있는 건지, 그걸 물으면서 삼일절 백주년 새벽에 학생들을 데리고 미시시피로 향했다. 이 글로벌한 세상에서 내가 우리 민족혼을 살려서 산다는 것은 무슨 뜻일지를 생각하면서, 새벽 3시에 일어나 공항으로 떠났다.

내가 가르치는 대학에서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해마다 봄 방학이면,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농촌 지역에서 집짓기를 해 왔고, 올해가 열한 번째다. 흑인 인구가 99퍼센트인 텃와일러(Tutwiler) 오지에 집들을 지어 왔는데, 이제 더 이상 가난한 사람을 위해 내어 줄 땅이 없어서 집을 지을 수가 없으므로 어쩌면 “사회정의와 영성” 수업은 올해가 마지막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동안 이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을 초대해서, 식사라도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럼 이제 이 사람들은 잘살게 되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절대로 가난한 이들이 없어지는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마음은 씁쓸하다. 처음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집이 없는 가족들을 위해 집을 지어 준다는 것은 설레는 일이었다. 그래서 학생들과 함께 하고 싶은 일이었다. 집짓는 일을 해 본 적이 없는 학생들은 두려워하며, 실수를 연발해 가며, 노동을 배워 갔고, 좁은 합숙소에서 공동생활을 했으며, 많은 학생은 처음으로 요리를 해 보기도 했다. 이 동네에 살고 있는 아이들도 자랐다. 자기가 다니는 학교의 선생님이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푸념하던 1학년 꼬맹이 쟈미르는 어느덧 자라서 내년에는 미시시피 대학에 가려고 준비한다고 살짝 이야기하고 갔다. 그들에게는 풍요와 부의 상징으로 보이는 캘리포니아에서 온 우리와 친하는 것이 자기들 사이에서는 미움받는 일이라 나랑 긴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고 제법 어른스럽게 설명을 하고 갔다. 난 여길 뜨는 게 소원이란 말과 함께.

무너져 가는 미시시피의 집. ⓒ박정은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우리 학생들을 졸졸 따라다니던 로렌조가 올해로 스물넷이란다. 2년제 대학을 졸업했지만, 직장이 없어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지낸다. 신장병을 앓고 있는 엄마를 돌보며 살고 있었는데, 이제 엄마가 돌아가셨다면서, 어디론가 떠나려고 한다고 했다. 이제 이곳에 친구가 아무도 없다면서. 많은 사람은 이 시골을 떠나, 어디론가 사라져 갔다. 대도시로 나갔다. 남부의 깡시골 출신의,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흑인들이 대도시로 가서는 무슨 일을 하며 먹고 살까 생각하면서 우리나라 1980-90년대의 농촌과 비슷하단 생각을 했다.

이곳에서 30년 전에 미션을 시작했던 우리 수녀회의 앤 브룩 수녀님도 떠났다. 의학박사로 미시시피의 오지로 들어갔던 앤 수녀님은, 그곳에 처음으로 정착한 의료진이었고, 그곳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람들이 아픈 이유가 다 부서진 집에서 전기와 수도 없이 사는 때문이라고 판단해서 집을 지어 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의사의 진단서를 읽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문맹퇴치 교육을 시작했고, 아빠 없이 혼자 아이들을 키우는 가난한 엄마들이 일하는 동안 방치된 아이들을 위해 탁아 시설을 시작 했고, 모든 음식을 튀겨 먹는 남부 노예들의 식단이 건강 문제와 직결됨을 깨닫고, 식단 개선 프로그램을 시작했었다. 내가 보기에도 30년을 앤 브룩은 가쁜 숨을 내쉬며 일을 했는데, 몇 년 전부터 조금씩 달라져 갔다. 자기는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며, ‘너는 머릿속이 점점 가벼워지는 걸 아느냐'며, 웃었다. 나는 아직도 그 수녀님이 나를 왜 그렇게 사랑해 주었는지 잘 모르며, 또 왜 기꺼이 자신의 이야기를 해 주셨는지 잘 모른다. 그렇게 앤 브룩은 알츠하이머를 앓으면서, 하나하나 떠날 준비를 했고, 지금은 뉴욕에 요양원에 계신다.

옆 동네 존스타운에서 아이들을 돌보던 데레사 수녀는, 난데없이 침입한 동네의 정신병자의 칼에 찔려 병원으로 옮겨졌고, 시애틀로 돌아가 휴양을 하고 다시 돌아와서 삼년 동안 몬테소리 교육을 계속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를 하고 떠났다. 처절하게 무너져 내리는 가난한 거리에, 그 수녀가 일하던 보육원 앞길은 테레사 쉴즈 거리라 이름이 붙여졌고, 이 거리와 만나는 거리는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거리라 명명되었다.

데레사 수녀를 기념하는 테레사 쉴즈 거리. ⓒ박정은

나는 이번 여행 중, 학생들과 매일매일 하루를 성찰하며 나눔을 계속했는데, 가난은 너무나 처절하다는 나눔은 차마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예민한 나의 학생들, 특히 흑인 학생들은 벌써 이 동네에 감지되는 가난에 무력과 분노를 이야기했다. 남부의 델타는 세계적 곡창지역이고, 그 거대한 농지는, 서부의 도시에 사는 우리 학생들에게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그러나 아직도 존재하는 인종차별의 벽, 그리고 이 많은 대지는 소수 백인들의 것이며, 구조적으로 농촌에 사는 흑인들은 기본 생활권조차 누릴 수 없다는 사실 앞에 힘들어 했다. 나는 특별히 마지막 밤, 함께 춤추고 저녁을 먹고, 가난한 이민자 가족인 히스패닉계 학생들과, 흑인 학생들에게, “겸손한 인간이 되지 말고, 시건방진 젊은이가 되라고. 대신 건방진 것에 대한 책임을 지라고” 이야기했다. “너희들의 나이는 이따위로밖에 세상을 바꿀 수 없었냐고 기성세대를 욕할 수 있는 그런 호방함으로 한껏 건방져도 된다”고 이야기했다.

이 텅 빈 광대한 미시시피의 시골에, 가난한 사람들의 땅은 한 치도 없다. 세상을 조금이나마 바꾸려던 사람들도 흘릴 땀을 다 흘린 뒤 또 이곳을 떠났다. 나도 얼마나 더 이 미션을 내 학생들과 할 수 있을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나와 함께 이 미션을 하면서 우리가 서로를 얼마나 필요로 하며, 또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이야기하고 또 느꼈다는 것. 그것으로 나는 나의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또 봄은 왔다. 목화가 피어날 광대한 이 땅에, 한 뼘 땅을 갖지 못한 가난한 자에게도 봄은 올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한.

박정은 수녀
미국 홀리네임즈 대학에서 가르치며, 지구화되는 세상에서 만나는 주제들, 가난, 이주, 난민, 여성, 그리고 영성에 대해 관심한다. 우리말과 영어로 글을 쓰고, 최근에 “슬픔을 위한 시간: 인생의 상실들을 맞이하고 보내주는 일에 대하여”라는 책을 썼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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