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시 - 박춘식]

아기 모세. (사진 출처 = Flickr)

왕골 상자의 모세는

- 나모 박춘식

 

그런데 모세라는 사람은 매우 겸손하였다

땅 위에 사는 어떤 사람보다도 겸손하였다(민수기12장3절)

 

성경을 심독(心讀)하면서 겸손이란 두 단어에 밑줄을 긋습니다

! 어라 어라, 이게 먼 짓이람

밑줄 두 가닥이 꼬물꼬물 기어가더니 한 줄로 이어져 사라집니다

잠시 후, 책갈피 어디서 찾았는지

나일강변 갈대 사이의 왕골 상자 그림을 가져옵니다

 

? 이건, 다 아는 이야기인데 웬일로

왕골 상자를 보고 다시 보면서 손뼉을 칩니다

물 → 겸손 → 모세 ← 겸손 ← 물

 

-모세는 진정 내리흐르는 골물처럼 매우 겸손하였습니다.

-바다 밑 가운데로 마른 땅을 걸을 때는 너무 겸손하였습니다

-광야에게 산에게 나무에게 강에게 항상 겸손하였습니다

-모세의 지팡이는 물을 만나면 물렁물렁한 떡가래로 변했습니다

위의 넉 줄은,

민수기 12장 3절에 대한 ‘령시인의 성경 주석’입니다

 

<출처> 닐숨 박춘식 미발표 시(2019년 3월 11일 월요일)

 

사순시기는 철저하게 겸손의 덕행을 실천하는 시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에서 가장 겸손해야 할 사람이 성직자들이라고 말씀 드려도 될는지 여쭈어 봅니다. 사제들이 모두 겸손하기를 바라는 신자들의 마음은 꿈에도 변함이 없습니다. 겸손한 신부 주교들을 본받아 모든 신자들도 거만함을 꼭 버려야 합니다. 개인 생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고, 성경에도 교리책에도 성전에도 피정에도 강론에도 덕행론에도 기도에도 순교전기에도 영성수련에도 훈화에도 수덕론에도 성인전기에도 신학에도 영성이론에도 어디든 믿는 이들은 무조건 겸손하여야 함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겸손은 가장 두려운 계명이라는 생각을 가짐이 좋을 듯합니다. 그러니까 십계명 ‘일(1).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여라.’ 그 앞에 ‘영(0). 사람은 가장 먼저 겸손하여야 하느니라’라고 붙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예수님이 거만하셨다면 사람으로 오시지도 않았고, 사람으로 오셨다고 하더라도 십자가를 피하였을 것입니다.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2장 8절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묵상하고 눈물 흘리는 교우들이 참 많습니다. 사순절의 첫 깃발 첫 걸음은 ‘겸손’임을 다시 강조하고 싶습니다.

닐숨 박춘식
1938년 경북 칠곡 출생
시집 ‘어머니 하느님’ 상재로 2008년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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