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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티’를 잡는 일,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강신숙 수녀] 3월 3일(연중 제8주일) 집회 27,4-7; 1코린 15,54-58; 루카 6,39-45

제 눈에 들보 감추자고 비겁하게 남의 눈에 티만 보면서 죽자고 매달리는 사람들, 그것도 모자라 ‘티’를 확대하고, 사람 소외시키고, 매장하는 일을 되풀이하는 사람들, 너무 많다. 가끔씩 그 포착능력에 감탄도 한다. ‘티’는 ‘티’니까 일부 맞는 것도 있다. 그러나 티 없는 사람 어디 있다고 족집게로 잡아내고, 먼지까지 터는가. 문제는 이들이 제 심각성에 대해선 무지할 뿐만 아니라, 알려 줘도 오토매틱이라 손쓸 길이 없다는 데 있다.

프로이트가 정신분석을 진행하면서 발견한 업적 중 하나엔 “방어 기제”라는 것이 있다. 지금은 너무도 대중화된 말이지만 초기엔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프로이트는 오랜 임상과 관찰 끝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여러 양상을 발견하였는데 이것이 오늘날 ‘방어기제’다. 방어기제가 문제가 되는 것은 현실을 왜곡하는 태도와 행동에 있다. 이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 아무리 알려 줘도 교정하기가 어렵다. 방어기제는 심리학이 대중화되고 발달하면서 초기 십수 개 정도로 분류됐던 것이 지금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해졌다. 여기서 등장하는 몇몇 심리적 용어는 이제 일상적이고 대중적이라 모두의 입에 착 붙는다. 가령, 누군가를 흠집 내고, 험담하면 ‘투사’라는 용어가 툭 튀어나온다. 

투사는 ‘무의식적으로’ 자기 열등감에 불안을 느낀 사람이 남의 ‘티’를 간파하고 단죄(판단)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면 그 사람보다 우위에 서서 자기 열등감을 미리 감출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사실 말이 ‘티’이지 실상은 타자든 공동체든 흠집 내기의 다름 아니다. 이런 사람이 많이 모인 공동체(조직/사회)는 집단투사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소위 팩트체크도 어렵고 실재와 진실이 뒤엉켜져서 불신만 난무할 뿐 아니라 서로를 끌어내리면서 건강한 성장을 가로막는다. 그렇다고 투사가 일어나지 않는 개인도, 집단도 없어서 누구도 자신은 예외인 척, 그들과 다른 척, 청정한 척할 수도 없다. 우린 매번, 할 수만 있다면,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간청하는 수밖에 없다. 방어기제는 사실 나에게도, 너에게도 고단한 일이다. 멈출 수만 있다면 멈춰지는 것이 좋다.

사실상 오늘 예수의 말씀은 율법과 규범을 다루는 사람들이 자기 식의 잣대로 사람들을 판단하고 심판하는 것에 대한 질책이다. 물론 이 말씀은 제자들을 향한 가르침이기도 하다. 유대인들은 율법 가운데 매우 작고 사소한 율법을 ‘티'(카르포스)라 불렀는데 본래는 ‘가시’ 혹은 ‘작은 알갱이’를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한다. 또 가장 중요하고 뼈대를 이루는 큰 율법을 ‘들보'(도코스), 혹은 ‘통나무’로 지칭했다. 예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들보처럼 중요한 모세 율법의 정신은 쉽게 어기면서 지극히 사소한 것을 어기는 사람들에겐 가차 없이 혹독하게 대했다. 예수도 이들의 그물망을 벗어나지 못해 “율법을 모르는 근본 없는 사람”으로 비난과 욕설을 들어야 했다. 

공동체 불화. (이미지 출처 = Pixabay)

이런 험담은 예수가 대중을 향해 베푼 기적이나 말씀, 새로운 질서로 이끌려는 그의 모든 시도를 불신으로 선도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지금도 수구적 정치세력이 진보진영을 분열시킬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수법이기도 하다. 처음엔 사소하게 보인 티끌이 과장되고 덧붙여져서 후에는 겉잡을 수 없는 분열과 진흙탕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소규모든 대규모든 인간이 모여드는 집단에 가장 무서운 적은 험담이고, 험담은 왕따로, 인격적 살인으로 출처도 이유도 모르는 채 분열을 거듭해 나간다. 학교 폭력도, 사내 폭력도, 이로 인한 피해자의 죽음도 모든 시작은 이렇듯 누군가가 잡아낸 ‘티’에서 시작한다.

예수는 이미 유대 사회에서 통용되던 속담을 들어 ‘티’와 ‘들보’의 의미를 새롭게 밝히고자 했다.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은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은 무시한다.”(마태 23,23) 또 “눈먼 인도자들아! 너희는 작은 벌레들은 걸러내면서 낙타는 그냥 삼키는 자들이다.”(24절) 공동체에 영향을 끼치는 지도자들 소위 정치적 권력을 쥔 자들이 “티와 들보”를 구별하지 못하고 현실을 왜곡할 때 어떤 결과를 내게 되는지는 너무도 자명하다. 그래서 어떤 양상으로든 지도자가 된다는 것, 권력을 쥔다는 것은 그만큼 엄중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폐해와 해악의 반경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그들이 문제 삼는 것은 ‘율법이나 복음 정신(정의, 자비, 신의)’의 훼손에 있지 않다. 이런 것은 사실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권력’이 주는 환상이다. 권력에 붙은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서 사람을 통제하고 낚아채는 힘을 부린다. 그런데 그 방식이 매우 조잡하고 비겁하다. 일상에 자질구레한 규칙들을 지뢰밭처럼 깔아 놓고 입맛에 따라 처단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부모로부터, 혹은 또래나 주위로부터 부정당한 경험이 많은 아이는 다양한 기제를 사용할 확률이 크다. 기제는 자기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생존장치기 때문이다. 당장 현실을 모면하기 위해 둘러대는 거짓말, 합리화, 왜곡, 부정, 변명은 모두 이런 불안 심리에서 온다. 자신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져 본 경험이 없는 아이들, 부정적이고 폭력적인 부모 밑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니 다 자란 뒤에도 몸만 어른일 뿐 실제로는 어린아이가 살고 있는 것이다. 아이의 성장을 가로막는 경계심과 차단벽은 더는 불안하지 않아도 될 때, 위협을 느끼지 않을 때 제 스스로 허물어져 나간다. 성장은 다른 것이 아니다. 자신을 입증하고자 벌였던 모든 기만적 행위들, 자기환상, 시기, 질투, 경쟁을 그만 내려놓는 것이다. 그래야 제 영혼이 평안히 쉴 수 있고, 다른 형제의 눈에 박힌 티도 (관대하게) 빼내 줄 수 있다.(루카 6,42) 눈이 열리고 양손이 자유로워지면 무엇인들 못하랴. “좋은 열매”를 맺는 일은 당연한 것이다.

강신숙 수녀

성가소비녀회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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