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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교회가 위기에 대응하는 방식[신학과 성찰 - 신한열]
이 글은 <가톨릭평론> 2019년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두 사제의 자살과 신자들의 충격

2018년 10월 19일, 프랑스 중부 루아레(오를레앙교구)의 한 본당 사제관에서 38세의 피에르 이브 퓌메리 신부가 목을 매 자살했다. 게임과 영화를 좋아하던 그는 젊은이들과 함께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교구장 자크 블라카르 주교에 따르면 9월 7일 본당 신자 세 사람이 교구에 있는 ‘상처의 경청’ 위원회를 찾아왔다. 퓌메리 신부가 “열서너 살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부적절한 행동”을 했으며, 무엇보다 “과도한 신체 접촉이 있었고, 한 여자아이를 여러 차례 안았고 차에 태워서 데려다 주었다”고 신고했다. 그의 행동 자체는 법적 제재를 받을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주교는 그에게 본당을 떠나서 당분간 전문가의 상담 치료를 받도록 제안했다.

퓌메리 신부는 4주 동안 자리를 비웠고 10월 8일 아무 직책이 없이 자신이 머물던 본당으로 돌아왔다. 그사이에 지역의 검사는 이미 신고된 정보를 토대로 9월 21일 “15세 미만 아동 성폭력 혐의”로 예비조사를 시작해, 여러 명의 진술을 확보한 다음 10월 15일 퓌메리 신부를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했다. (경찰은 그에게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해 주었다.) 바로 한 달 전인 9월 18일 루앙에서도 같은 38세 나이의 장 바티스트 세브 신부가 자살했다. 그가 2년 전 한 젊은 여성에게 키스를 시도했다는 사실이 교구에 신고되었다. 일이 발생했을 때 그 여성은 이미 20세로 성인이었다. 그는 당시에 부모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했는데, 2년이 지난 뒤에 어머니가 딸에게 알리지 않고 교구에 신고했다. 교구장 대주교에게 불려간 세브 신부는 자신의 부적절하고 경솔한 행동을 시인하면서 그 일이 있었던 뒤로는 그 여성을 만난 적이 없다고 고백했다. 사제관으로 돌아온 그는 다음 날 자살했다.

세브 신부는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으면서 정력적으로 일하던 사제였다. 한 달 사이 두 사람의 젊은 사제가 자살하자 프랑스 교회는 충격과 슬픔에 빠졌다. 오를레앙교구의 블라카르 주교는 몇 해 전부터 사제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2014년 가을에 교회 책임자들이 성학대 희생자들을 맞이하는 기구를 프랑스에서는 처음으로 만들었다. 2016년 3월에는 ‘상처의 경청’이라는 기구를 출범했다. 리옹의 사제 성범죄와 관련해서 바르바랭 추기경의 태도가 한창 언론의 주목을 받을 때였다. 이어서 10월에는 교회 안에서 벌어진 성학대 희생자들에게 용서를 청하고 회복을 위한 교구 기도회를 개최했다. 2017년에는 교회 안에서 젊은이들과 만나는 교육자와 교리교사들을 위한 ‘행동 지침’을 만들었고, 사제들의 성학대가 새롭게 드러난 2018년 4월에는 신자들이 질문과 의심, 분노를 표현할 수 있게 ‘말하는 모임’을 두 차례 개최했다. 이런 일련의 행동에 대해 일부 사제들은 “주교가 사제들을 보호하기보다 불특정한 피해자를 더 챙긴다”라며 공공연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사제가 자살하는 비극적 사건이 발생했다.

스트라스부르 대학교 성당 학생들. ⓒThomas Wender

봇물 터지듯 나온 증언들

최근 들어 리옹과 스트라스부르, 낭시, 낭트, 니스 등지에서 사제들의 아동 대상 성범죄 사실이 줄 이어 드러나면서 오랫동안 말하지 않거나 못했던 사람들이 피해 사실을 증언하기 시작했다.

리옹대교구에서는 베르나르 프레나 신부가 가톨릭 스카우트 소년들을 성적으로 유린한 혐의가 드러나 입건된 이후 신고가 줄을 이었다. 1970년대부터 1991년 사이에 70명의 소년이 피해를 입었다. 피해자 몇 사람이 시작한 단체인 ‘해방된 말’(La Parole libérée)에는 단 몇 달 사이에 400명이 연락해 왔다. 모두 어린 시절 사제들의 성폭력에 노출된 경우다. 피해자/생존자들은 50세 이상이 대부분이었고 공소 시효가 이미 지났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놀랍고 믿기 어려운 점은, 피해자/생존자들이 과거에 이미 이야기했지만, 부모나 교회 당국이 그들 말을 믿지 않거나 귀담아듣지 않았을 때가 많았다는 사실이다. 피해자들은 교회 지도자들이 사제들의 범행 사실을 알고 난 다음에도 아동들을 보호하기 위해 충분한 조처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리옹대교구장 바르바랭 추기경은 경찰에서 2년 전 10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지만,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 뒤로 여러 정황 증거가 보완되었고 바르바랭 추기경은 결국 입건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발랑스교구의 한 사제는 바르바랭 추기경의 사임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하지만 그가 일하던 관구 법원에서 배제하는 조처만 있었을 뿐이다. 바르바랭 추기경에 대한 재판은 2018년 4월에 예정이었지만 2019년 1월로 연기되었다. 프랑스 교회의 수장(Primat)이 법정에 서면 다시 언론에 집중 조명을 받게 될 것이다.

프랑스에서 가톨릭 주교가 법정에 서는 일이 지극히 드물지만, 바르바랭 추기경이 처음은 아니다. 2001년 리지외교구의 피캉 주교도 재판을 받았다. 그는 한 본당 사제가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저지른 성범죄 사실을 알았지만, 그 사제에게 치료를 명하기만 하고 사법 당국에 신고하지 않아 불고지죄에 걸렸다. 르네 비세 신부는 1987년과 1996년 사이에 11명의 미성년자를 성폭행, 성추행한 혐의로 18년 형을 선고받았다. 피해자 가운데 네 가족이 그를 고발했다. 변호사는 피캉 주교가 비세 신부와 나눈 대화의 비밀을 유지해야 했다고 주장했지만, 법정은 주교와 사제의 대화를 직업상의 비밀로 간주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주교가 사제의 범죄 행위를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다며 비록 집행유예였지만 유죄로 판결했다. 프랑스 혁명 이후에 가톨릭 주교가 처음 법의 심판을 받는 순간이었다. 피캉 주교는 “판결을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피해자들 마음이 진정되기를 바라기에 항소를 포기한다”라고 말했다. 나중에 알려졌지만, 교황청의 성직자성 장관 카스트리옹 오요스 추기경은 당시 피캉 주교에게 “역사와 세계의 주교들 앞에서 자기 사제를 고발하느니 감옥을 택하려 한 형제 주교를 가져서 기쁘다”라는 편지를 보냈다. 그는 요한 바오로 2세 교종이 자신의 편지를 승인했다고 알려 주었다. 피캉 주교는 2010년 주교직에서 은퇴하면서도 자신의 선택을 전혀 후회하지 않으며, 다시 같은 상황에 부닥치더라도 “국가법에 따라 감옥에 가더라도 양심을 거역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피캉 주교의 재판 뒤에 프랑스 주교들은 사제들의 아동성범죄를 묵과하지 않을 것이며, 알게 되면 즉시 사법 당국에 신고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래서일까? 아일랜드와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 그동안 교회가 은폐해 왔던 사제들의 아동 성학대 같은 끔직한 일이 계속 드러났던 여러 해 동안 프랑스는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피캉 주교는 2018년 8월에 선종했다. 얼마 뒤인 11월 22일에는 오를레앙교구의 앙드레 포르 은퇴 주교(83)가 8개월 형(집행유예)을 받았다. 17년 전 피캉 주교처럼 아동을 성폭행한 사제를 알고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포르 주교도 항소를 포기하여 형이 확정되었다.

스트라스부르 대학교 내 성당. ⓒThomas Wender

천천히 오래 계속되는 출혈

오를레앙교구의 피에르 드 카스틀레 신부(1949년생)는 1993년 여름 수련회 때 여러 명의 아동을 성추행했다. 그 일에 대해서는 여러 명의 교회 인사가 알았지만, 불고지죄로 처벌하기에는 이미 공소 시효가 지났다. 그런데 2010년에 피해자 한 사람이 포르 주교(2002-10년 재임)에게 편지를 보내 이 사실을 알렸다. 주교는 이 피해자를 만났고 드 카스틀레 신부가 아이들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는 사법당국에 신고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재판에 넘겨졌다. 이 피해자는 후임자인 자크 블라카르 주교에게도 편지를 보냈다. 새 주교는 즉시 피해자를 만나는 한편 곧바로 당국에 신고했다. 그렇게 해서 2012년 드 카스틀레 신부가 입건되고 오랜 사법 절차를 거쳐 포르 주교와 같은 날 3년형(그중 1년은 집행유예)을 받았다. 그런데 블라카르 주교가 드 카스틀레 신부에게 사제직무 정지 처분을 내린 것은 그가 입건된 지 4년 뒤인 2016년이었다. 주교는 기자회견을 통해 정직 사실을 알리면서, 그 조치가 많이 늦은 것을 사과했다.

음악활동을 하는 올리비에 사비냑은 피해자/생존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1980년생인 그의 증언을 들어 보자. 여름캠프에서 드 카스틀레 신부에게 성폭력을 당했을 때, 그는 열세 살이었다.

"나는 그때 내 몸 안에 내 정신 안에 또 내 믿음 안에 이름 지을 수 없는 그 무엇을 만났다. 그 일을 당한 즉시 트라우마가 생겼다. 출혈은 천천히 오래 계속되었고 그때까지 배웠던 모든 가치와 기준이 사라졌다. 방향을 잃고 부서진 채로 나는 ‘신뢰’라는 말을 더는 알지 못하고 더는 원하지도 않게 되었다. 신뢰(confiance)는 그 어원이 ‘함께 믿는다(cum fidere)’라는 것, 다른 사람의 호의에 자기를 맡긴다는 말인데, 그게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10년 넘게 암흑처럼 도사리던 이 사건은, 그가 성인이 되어 한 교구가 운영하는 기숙사에서 교사로 일할 때 두 번째 트라우마가 되어 그를 엄습했다. 2005년 이름 지을 수 없는 그 무엇을 다시 마주하게 된 것이다. 학생 몇 사람이 그를 찾아와 기숙사 원장 신부에게 당한 것을 털어놓았기 때문이다. 그 신부는 많은 사람의 존경과 사랑과 추앙을 받는 사제였다. 바로 그 원장이 학생들을 성추행한 것이었다.

"그 사제는 당시에 내 친구였고 5년 전부터 나의 영성 지도신부이기도 했어요. 나는 그를 신뢰할 수 있었고, 그는 내가 다시 길을 찾아 가게 도와준 분이었어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충격으로 나는 거의 죽을 지경이 되었어요."

하지만 그 순간 올리비에는 자기 안에서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강하게 느꼈다. 어른이 된 어제의 소년은 이제 떨쳐 일어나 싸우기로 한다. “한 인간의 삶 전체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저 은밀한 악과 싸우기로” 그는 거듭 다짐했다.

"우리가 열두세 살 혹은 더 어렸을 때 어른들이 우리 말을 듣고도 침묵했던 것과 달리, 나는 이 아이들을 침묵 속에 버려둘 수가 없었어요. 먼저 아이들과 함께 사회복지사를 찾아갔어요. 그 다음에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교구의 벽에 부딪혔지요. 모두가 이 엄청나게 무서운 행위를 침묵 속에 덮어버리고 지나가려고 했어요. 이 사실이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게 교구에서는 온갖 수작을 다 했습니다. 교회라는 기관을 보호하려고 사실을 부정하고 은폐하려는 ‘열심한 신자’들의 노력은 희생자들에게 겹으로 피해와 아픔을 줍니다. 악마의 행위는 정말 은밀해요. 이미 부서진 피해자들이 그들을 보호해야 할 사람들의 비겁과 이기주의로 다시 고통받는 것을 받아들이기란 무어라 말로 표현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인생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낸 드 카스틀레 신부가 25년이 지난 후이지만 마침내 법의 심판을 받자, 올리비에 사비냑은 판결에 만족했다. “(사법부가) 마침내 우리 이야기를 들어 주었어요. 내가 이 나라의 시민이라 행복합니다.” 고소인 세 사람의 변호사는 “이제부터는 이렇게 법원이 피해자의 이야기를 들어 준다는 데 의의가 있다”라며 “우리 모두에게는 비슷한 사례를 고발할 법적 의무가 있다”라고 말했다.

스트라스부르 대학교 성당에서 운영하는 식품은행. ⓒThomas Wender

주교단의 반응과 대책

프랑스 가톨릭 주교회의는 2018년 가을 정기총회에서 사제 성폭력 피해자/생존자 7명을 맞이해 대화를 나누었다. 그 가운데는 여성 한 명과 사제 한 명도 포함되었다.

총회 첫날부터 주교들은 네 그룹으로 나눠서 이들의 증언을 들었다. 어린 시절 성직자들에게 성학대를 당한 이들의 증언을 주교들이 함께 경청한 것은 생존자들에게는 대단히 중요하고 ‘역사적인’ 순간이었고, 이것은 주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 만남과 대화가 있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참가자들에 따르면 여전히 조심스럽고 경계하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편견이나 선입관 없이 대화를 나누려고 모두가 노력했다. 더 깊고 진솔한 대화를 통해 성폭력과 성범죄를 예방하고 제대로 다룰 수 있게 교회의 의식과 행동에 철저한 변화를 이끄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했다. 주교회의 의장 조르주 퐁티에 대주교는 피해자/생존자들에게 “여러분은 주교인 저를 아무것도 하지 않았거나 겁먹은 사람, 혹은 후속 조처를 하지 않은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신뢰의 관계를 맺고 함께 일하면서 나아가고 싶은 사람으로 보아 주었습니다”라며 감사를 표했다.

생존자들은 각자 자신이 겪은 트라우마를 이야기했고, 함께 성찰할 점을 제시했다. 자기 교구에서 사제 성폭력의 희생자들을 만나지 못한 주교에게는 더욱 손에 땀이 나는 시간이었다. 그들은 피해자/생존자들이 내면에 어떤 극심한 고통을 겪었는지, 성폭력이 학대를 당한 사람에게 긴 시간 동안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낳았는지 들었다. 주교들은 교회 안에서 성폭력을 예방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로 뜻을 모았다.

주교회의 총회는 폐막하면서 1950년 이후 프랑스 가톨릭교회 안에서 벌어진 미성년자 성학대를 조사하는 독립위원회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위원회는 이 문제가 다루어진 방식과 경위, 이유를 이해하고 2000년 이후 주교회의의 결정도 평가하여 지금부터 1년 반에서 2년 사이에 보고서를 발표하게 했다. 주교들은 또 교회 안에서 아동성애를 근절하기 위해 피해자/생존자들과 시민사회 인사의 도움과 협력을 받기로 했다. 피해자/생존자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듣고 그들의 경험을 모아 기록하게 했다.

프랑스 교회에서는 이렇게 아동 성학대 문제와 관련하여 희생자/피해자들에게 귀 기울이는 것이 최우선으로 되었다. 많은 주교도 이제는 교구에서 문제가 드러나면 더는 감추려 하지 않고 피해자들의 회복에 힘을 기울이려 노력한다.

가을 총회에서 주교들은 또 “아동성애를 저지른 사람과 약함을 드러내고 위험 요소가 있는 사제들”을 동반하겠다고 발표했다. 아직 그 방법은 명시하지 않았지만, 일부에서는 이 일을 이미 시작했다.

몽플리에교구에서는 2016년 대학병원과 협약을 맺고 교회 내 아동성범죄의 피해자들뿐 아니라 가해자들도 동반하면서, 아동성애 성향이 있는 사람이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도록 예방하게 했다. 교구에서 보내기도 하고 스스로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이 프로젝트 담당 종신부제는 가해자 역시 “엄청난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대학병원에서는 심리학, 정신의학, 성의학적인 평가를 토대로 내담자들을 돌본다. 물론 피해자가 있으면 즉시 사법 당국에 신고한다. 일부 교구에서는 성학대 문제를 넘어서 고립감, 여러 가지 중독, 중압감 등 사제들의 생활과 사목의 어려움에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낭트교구에서 성직자 자문 담당으로 임명된 르네 파나티에 신부는 신자들에게 부적절한 태도를 보이는 사제들에게 조심스럽게 경고한다. 때로는 구두 경고에 그치지 않고 정신과 상담 치료를 받도록 권한다.

로데스교구에서는 지난해 교구 시노드 이후에 사제들의 ‘작은 우애 공동체’가 만들어졌다. 한집에서 살지 않더라도 정기적으로 만나서 함께 일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낭트교구에서도 ‘생활나눔팀’이 매달 한 번씩 만난다.

한 전문가는 사제들을 완벽한 사람으로 보는 신자들의 인식에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사제들은 흔히 신자들에게 자신의 나약함을 받아들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사제 자신도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이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제들에 대한 영적 동반의 중요성은 거듭 강조된다.

떼제 화해의 교회 유리화 ‘부활절’. ⓒ신한열

자기방어와 성직주의

비록 맞는 말이라 해도, “아동 성학대가 제일 많이 발생하는 곳이 가정인데....” 혹은 “20-30년 전에 일어난 일을 오늘의 기준으로 볼 수는 없지 않나?”라는 논리를 동원한 교회의 자기방어적 태도는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다시 상처를 줄 뿐만 아니라 교회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성학대 문제의 원인을 사제의 독신이나 성적 지향보다 ‘성직주의’에서 찾는 시각도 설득력이 있다. 새 수도회를 창설한 몇몇 카리스마적인 사제가 고해성사와 영적 지도의 시간을 이용해 성인 여성이나 수녀를 성추행한 사례가 드러나기도 했다. 일부는 그들의 사후에, 그것도 일부에서 시복 운동을 추진하려는 와중에서 피해자들의 증언이 나왔다. 대상이 아동이든 성인 약자이건 성학대가 사제의 권위를 오해하고 오용하는 성직주의와 연관이 있다는 견해다. 과거에 수도회나 교회, 심지어 가정에서조차 피해자의 증언이 사제의 명성과 권위 앞에서 아무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때가 적지 않았다.

교회가 신앙의 공동체라기보다 오히려 종교 기관으로 기능해 왔고, 교회 안에서 섬기는 직능을 신성화한 결과가 오늘을 낳았다는 더 근본적인 진단도 있다. 공동체를 섬기는 직무와 서품받은 사제 개인을 동일시한 결과 온갖 남용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종도 모든 형태의 성직주의를 버려야 한다고 거듭 역설한다.

어쨌든 많은 사람이 이제야말로 이 구역질 나는 악의 뿌리를 완전히 뽑고 교회를 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 과정은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다. 당분간은 과거의 성학대 피해 사실이 계속 드러나고,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사람, 말했지만 교회가 들어 주지 않았던 피해자들이 말하게 될 것이다. 온갖 추문이 드러난다 해도 이것은 결코 교회에 재앙이 아니다. 과거의 잘못이 더는 은폐되지 않고 드러나는 과정을 통해 희생자/피해자들은 치유된다. 그들 역시 교회이기 때문에 이것은 오히려 기쁜 소식이다. 어떤 사람은 “10-20년이 지나면 가톨릭교회가 솔직하고 용기 있게 이 냄새 나는 악을 드러내고 퇴치하는 데 제일 앞장섰다고 더 긍정적으로 볼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올리비에 사비냑은 이전 주교들이 자기의 신고를 무시했지만, 블라카르 주교가 자신을 만나 장시간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경청해 준 것에서 힘을 얻었다. 그는 고통과 분노와 수치심으로 교회를 떠난 일부 피해자와 달리 교회에 남았다. 블라카르 주교는 성학대 문제를 잘 처리하면 교회는 더 강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이 아픈 과정이 오히려 교회를 살리게 될 것이라 보는 것이다.

성학대 추문으로 심각한 위기에 봉착한 프랑스 교회. 한 교구 사제는 “지금은 위기의 시작이고 교회는 더 깊은 나락으로 내려갈 것”이라고 내게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일부 언론에서는 아동 성학대 문제에 이어 교회의 돈 문제를 들여다본다. 투명성 결여에 횡령도 있고 해서 이 문제가 보도되면 교회가 다시 흔들리겠지만, 그는 이것 역시 거쳐야 할 과정이라 생각한다. “바닥까지 내려가면 교회가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을 것이고, 새로운 무언가가 시작될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 속에 있는 교회

스트라스부르교구의 대학생 본당에는 매주 수요일 저녁이면 200명가량의 가난한 학생들이 단 2유로를 내고 쌀, 파스타, 채소, 기름, 통조림 등 1주일 동안 먹을 갖가지 식료품을 한 상자씩 담아간다. 학생본당 주임인 토마 벤더 신부가 시작한 이 식품은행은 학생들과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6년째 계속되고 있다. 프랑스인과 외국인을 불문하고 이 식품은행이 없다면,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할 대학생들이 여전히 많다. 프랑스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빈곤이 확산되고 있다. 유럽 의회를 비롯해 여러 국제기관이 자리한 스트라스부르시에만 해도 노숙자가 1000여 명이나 된다.

대학생 본당이 자리한 베르나노스센터에는 동반자가 없는 미성년자 난민 30명이 머물고 있다. 경당에도 매트리스를 깔고 이들이 쉴 수 있게 했다. 이들은 이곳이 아니면 길거리에서 지낼 수밖에 없다. 방이 4칸인 사제관에서 토마 신부는 멕시코 유학생 신부와 아프가니스탄, 콜롬비아 난민에게 각각 방을 하나씩 내어 주고 제일 작은 방에 살고 있다. 토마 신부는 “교회가 더 가난한 사람 곁으로, 가난한 사람들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는 사제 성폭력 문제로 허우적거리는 교회가 거기서 머물지 않고 난민을 맞이하고 노숙자를 돌보려 애쓸 때, 복음의 본질에 가까워질 수 있고 교회를 정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2018년 11월 중순 프랑스 전역에서 시작되어 여러 주 동안 이어진 ‘노란 조끼’의 시위와 도로 점거는 이 선진국에서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쪼들리게 생활하며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 살아가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었다. 그것은 프랑스 상층부를 향한 하층부의 반란이었다.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고 세대 간, 계층 간의 연대감이 옅어지는 사회 안에서 교회는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사제의 성추문으로 촉발된 위기가 전례 없이 심각한 것은 사실이지만, 교회가 자신의 문제만 골몰한다면 더 깊은 수렁에 빠질 수도 있다.

프랑스에서 미사에 나오는 사람은 다양한 인종과 계층이 섞여 있는 파리 지역을 제외하면 조금 여유 있는 중산층 일부와 은퇴한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여행객이나 외부에서 보면 눈에 띄지 않고 언론의 주목을 받지도 못하지만, 가장 가난한 이들을 위해 교회와 신자들은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스트라스부르의 토마 신부처럼 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불법 이민자나 난민들을 돌보는 것이 한 예다. 이제는 탄생, 결혼, 장례 등과 관련해서도 교회와 접촉점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 전통이나 습관 때문에 교회에 나오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지만, 그럼에도 그 소수의 신자는 정말 신앙과 예수님 때문에 교회 생활을 한다. 역설적이지만 거기서 희망을 찾을 수도 있다.

프랑스가 ‘성인들의 나라’, ‘교회의 맏딸’이라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오늘과 내일의 위기를 겪으며 프랑스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복음을 재발견하고 증거하게 될까? 그들의 증거를 통해 또 교회는 얼마나 새로운 모습을 띠게 될까?

신한열

떼제공동체 수사. 대학을 졸업하고 잠깐 직장생활을 한 뒤에 1988년 프랑스 떼제공동체에 가서 1992년 종신서약을 했다. 떼제에 살면서 국제 청년 모임을 조직하고, 매년 동아시아 여러 나라를 방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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