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한 친구가 물었습니다. 신앙생활을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 편이라 하느님과의 관계도 느슨한 것 같지 않은데 뭔가가 허한 것 같다. 불행하다는 느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행복한 기분도 아니다. 진정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뭘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살아도 건강에 이상이 온다면 그 일에 대해 행복감을 느끼기는 쉽지 않습니다. 나는 옳다고 생각하지만 적잖은 이들이 나로 인해 고생을 하는 상황이 되면 나는 깊은 회의에 빠집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쉴새 없이 바쁘게 지내다가 친구들과 소원해진 나를 만나기도 합니다. 

햇살만 가득한 날이 계속된다면 논밭은 사막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비만 계속 내린다면 홍수가 날 일입니다. 그 둘 사이의 균형이 맞아야 세상이 건강하게 돌아갑니다. 우리는 이렇게 공허함과 충만함 사이에서 늘 오가고 있습니다.

양극 사이에서 잘 사는 법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살지 않도록 내 기분을 잘 이해하고 돌보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이런 자기 돌봄이 우선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노력입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많은 사람이 인정하고 있는 몇 가지 기본 조건이 있습니다. 신앙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기본 항목에 들어갈 수 있을지는 사람마다 의견이 분분할 듯합니다. 신자들은 보통 그렇다고 할 것이고, 비신자들은 양념과 같은 정도로 인식할 듯합니다.

신앙인인 우리는 성경에서 행복의 조건을 찾아볼 수 있겠습니다. 행복에 관해 제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구절이 있다면 예수님의 산상설교 부분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로 시작하는 이 구절을 우리는 복음적 행복선언문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내용을 잘 읽어 보면, 안락함에 기우는 우리의 기본욕구와는 다른 삶이 보입니다. 그런 삶이 행복하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신앙인이 지향해야 할 고양된 가치를 일깨워 주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그런 고양된 가치들이 나로 하여금 현실에서 멀어진 삶을 살게 할지도 모릅니다. 하늘을 날다 떨어지면 중상 아니면 사망입니다. 그걸 피하려면, 현실에 발을 딛고, 이웃과 함께 실제적인 실천을 모색해야 합니다. 

웃어 보자. (이미지 출처 = Pxhere)

산상설교까지 고려하여 행복을 위한 조건을 간단 정리해 보겠습니다. 독자분들도 여러분의 경험에 비추어 다듬어 보실 수 있겠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나의 기분을 잘 돌봐야 합니다.

산상설교의 가치를 바탕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할지 고민하기에 앞서 어떤 삶을 살아갈지를 묻습니다. 그 안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일을 (이웃과 함께) 실현시켜 보려고 합니다.

행복한 사람들은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지 않습니다. 제 할 일을 충실히 할 따름입니다. 누군가를 시기 질투할 필요도 없으니 마음 고생할 일도 별로 없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자신의 삶을 살아갈 줄 압니다.

말씀 드렸듯이, 그렇게 의미 있는 일을 찾아 한다고 해도 지칠 때는 나를 지지해 줄 친구들이 필요한 법입니다. 주변에 따스하고 유쾌한 친구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친구들을 알아 둡니다.

가난함을 마다하지 않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스스로에게 가난함을 강요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이 없게 된 상황에서도 나는 여전히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내가 설정한 기대치에 못 미치는 삶을 살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런 태도 안에서 나는 어떤 특정한 조건이나 인간관계에 연연하지 않는 자유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자유를 박탈당한 행복이란 없습니다. 초라해도 괜찮습니다. 자유롭고 넉넉한 내게 ‘엄지 척’ 할 수 있으면 됩니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한다고 해도 건강에 적신호가 올 수 있습니다. 최근에 알게 된 조건이 있습니다.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신체적 운동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운동은 요즘 사회에 부쩍 두드러진 우울증, 스트레스나 다양한 정신적, 육체적 장애를 예방, 치료해 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여기에 사족을 단다면, 소리 내어 웃어 보고 더불어 남들도 웃길 수 있도록 기술을 연마해 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아시다시피 엄숙하게 사는 것이 신앙인의 품위를 유지시켜 주지는 않습니다. 그런 품위 따위에 신경쓰기보다는 우리가 웃는 모습을 보고 함께 웃으실 하느님을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