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벨기에 팍스 크리스티, 조나단 프레릭스 씨

국제적 가톨릭 평화운동 단체인 ‘팍스 크리스티’(Pax Christi) 한국지부 창립 준비가 진행되는 가운데, 벨기에 팍스 크리스티 회원인 조나단 프레릭스 씨가 한국을 방문했다.

프레릭스 씨는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열린 평창평화포럼에 참석한 뒤, 한국 지부 준비위원단과 알프레드 슈에레브 주한 교황대사를 만나고, ‘핵 없는 세상을 위한 한국 그리스도인 연대’에서 주최하는 세미나에 참석하는 등 일정을 소화하고 지난 15일 제네바로 돌아갔다.

루터교인인 그는 현재 유엔 군축위원회에서 팍스 크리스티 대표로 일하고 있으며, 세계교회협의회(WCC) 에큐메니칼 평화대회 국장을 지내며, ‘핵 없는 세상을 향한 WCC 선언문’을 작성했다. 현재까지 그는 평화와 군축을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전 세계의 군축과 비핵화를 위한 활동에 투신해 온 그는 평창평화포럼에서도 가톨릭교회의 핵무기에 대한 입장 변화를 들며, “핵무기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입장이 바뀌고 있다. 냉전시대까지 교회는 핵무기 사용에만 유감을 표했지만 현재는 소유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며, “그리스도인들은 현재 무기 기술뿐 아니라 앞으로 생산될 첨단무기와 이에 관련된 기술까지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팍스 크리스티 한국 지부 준비위원과 조나단 프레릭스 씨가 2월 14일 주한 교황대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 제공 = 박문수)

프란치스코 교황은 11월, 바티칸을 방문한 핵폐기와 군축 관련 국제회의 참석자들에게 “국제 사회가 핵무기를 완전히 폐기해야 한다”고 말했으며, 12월 아시아 국가를 방문한 뒤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는 “핵무기를 보유하는 행위는 비이성적이며, 앞으로 가야 할 유일한 길은 전면적 비핵화뿐”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국제 가톨릭 평화운동인 팍스 크리스티는 유럽, 중동, 아시아, 아메리카 및 태평양 지역에 120개 회원 조직을 두고 있으며, 가톨릭과 다양한 종교 회원 약 50만 명이 활동하는 에큐메니컬 단체이기도 하다.

‘팍스 크리스티’ 활동의 키워드는 “평화증진, 인권존중, 정의, 화해”이며, 평화운동으로서 일관적으로 지켜 온 원칙은 “비폭력”이다.

회원 단체는 각 소속 국가와 지역에서 국제적으로 평화와 신앙에 관련된 문제를 다룬다. 인권은 당연한 공통 관심사다. 현재 팍스 크리스티의 우선적 관심사는 “핵무기 금지에 대한 새로운 조약의 발효와 이행, 라틴아메리카를 중심으로 한 광업 지역에 대한 옹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평화, 모든 정부와 사회의 적극적 비폭력과 평화 구축” 등이다.

이 같은 평화운동의 관점에서 팍스 크리스티는 한반도 평화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오늘날 팍스 크리스티를 비롯한 신앙인들의 평화운동은 어떻게 실행되어야 하는지 조나단 프레릭스 씨에게 서면을 통해 물었다. 

“오늘 네가 평화의 길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너는 그 길을 보지 못하는구나”(루카 19,41)

먼저 그는 한반도 평화기류에 대해 팍스 크리스티 전체 의견을 단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면서도, “다만 공유하고 싶은 생각과 느낌은, 한반도로부터 새로운 평화의 신호가 오고 있다는 ‘새로운 희망’”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반도를 비롯한 여러 비평화의 상황을 보며, 갈등과 분쟁으로 찢어진 예루살렘에 입성한 뒤 예수가 했던 기도, “오늘 네가 평화의 길을 알았더라면... ...”이라는 기도를 생각한다며, “한국에 평화가 올 것이고, 또 와야만 한다는 희망은 오랜 신념과 오래 지속된 슬픔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 기도는 우리가 가진 모든 의도와 계획에 대한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다. 세상 곳곳의 많은 사람들, 특히 권세 있는 지도자들이 논의하는 주제나 말, 행동 안에 ‘평화를 이루는 것들’이 있는지 보고, 듣고, 판단해야 한다”며, “이를 염두에 두고 베트남에서 열릴 북미 정상 회담을 지켜보자”고 말했다.

또 그는 “무기가 들어찬 한반도는 평화롭게 존재할 수 없으며, 통일의 길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평화 구축과 통일을 위해서 핵무기와 핵동맹을 제거하고 새롭고 포괄적인 지역 안보 체제로 바꿔야 한다”며, “또한 남한과 북한의 모든 이웃 동맹국이 동북아의 공동 안보 협약에 대해 같은 책임을 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팍스 크리스티는 제2차 세계대전 뒤 프랑스와 독일 간 화해를 구하기 위해 가톨릭 신자들에 의해 시작됐습니다. 분단된 한반도에 사는 이들이 갖고 있는 화해를 향한 희망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평화’라는 이 이름은 이와 같은 다른 많은 약속을 담고 있습니다.”

2월 10일 평창평화포럼에 참석한 조나단 프레릭스 씨가 종교협력 섹션에서 발언를 맡았다. ⓒ정현진 기자

지난 2016년 4월, 팍스 크리스티가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와 함께 주최한 회의에서는 바티칸에 ‘정당한 전쟁’ 교리를 폐기하고 ‘정의로운 평화’로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이 회의 결과는 다음해인 2017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문에 상당부분 반영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평화를 위한 정치방식으로서 비폭력”에 대해 말한 이 담화문에서, “적극적 비폭력을 통한 평화건설은 필수적 요소이며, 교회가 폭력 사용을 도덕 규범으로 제한하고자 노력을 기울이는 것과도 일치 한다”며, “또한 (비폭력은) 세계 전체의 정치, 종교 지도자들, 국제기구의 책임자들, 기업과 대중매체 경영인들이 각자 책임을 수행하는 데에 참행복을 적용하는 계획이며 도전”이라고 말했다.

이 ‘정당한 전쟁’ 교리는 1920년대 평화운동 진영에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지만, 교회 안에서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가톨릭평신도영성연구소 박문수 박사는 이에 대해, “그동안 교회가 밖으로부터 자극을 받으면서 서서히 정당한 전쟁론이 그리스도교에 맞지 않는다는 자각을 했고, 그 결과가 2016년 4월의 회의 그리고 2017년 담화문”이라고 설명했다.

'정당한 전쟁론' 또는 '정의의 전쟁론'은 전쟁 중에는 정의로운 전쟁도 있다는 중세에 확립된 가톨릭교회의 교리다.

이에 대해 조나단 프레릭스 씨는 “전쟁에 대한 기본 대응으로서 “정당한 평화”를 선택하는 것은 “정당한 전쟁”에 초점을 맞추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정당한 평화”에 대한 요청은 많은 국가와 공동체가 겪은 현실을 근본적으로 인식한 것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또 그는 “평화는 건설되고 유지되고 보호되어야 하고, 또 정의와 뗄 수 없다. 팍스 크리스티의 한 주제는 ‘평화는 정의를 필요로 하지만, 또한 평화를 위한 방법은 정의의 길’이라는 것”이라며, “이 접근법은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한 예수의 방법을 모델로 한 것이고, 종교적, 정치적, 경제적 및 군사적인 힘에 대한 도전이다. 불의와 폭력을 초월하고, 위험을 감수하고 십자가에 희생된 예수가 지향한, 관계의 회복과 치유에 중점을 둔 ‘회복적 정의’”라고 설명했다.

프레릭스 씨는 팍스 크리스티는 시민 사회 단체이지만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영감을 얻은 영적인 운동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평화를 가르치고 추구하라”는 말이 그 역할에 대한 적절한 답일 것이라며, “평화 증진은 성서적, 신학적 뿌리에서 비롯된 소명이다. 평화는 모든 사람들의 일이고, 사랑의 노동이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마태오 5,9)’라는 성경 구절로 한국지부를 응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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