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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 외면, 신앙의 진수로 못 들어간 것"[지금여기 연중기획 1] 평화 : 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장 강주석 신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신년 기획으로 2019년, 한국사회가 직면한 주요 이슈를 어떻게 읽고 대응하고, 살아갈 것인가를 살펴보기로 했다. “노동, 평화, 인권, 농업” 등 네 가지 주제에 대한 교회 안팎의 전문가 또는 당사자로부터 그동안 우리가 각 이슈에서 놓친 것은 무엇이며, 새롭게 인식할 것들은 무엇인지 인터뷰를 통해 들었다.

기사 순서

1. 노동 : 김선기 서울일반노조 교육선전국장 / 부산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이영훈 신부

2. 평화 : 이대훈 성공회대 교수 / 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장 강주석 신부

3. 인권 : 이성훈 한국 인권재단 이사 /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장 나승구 신부

4. 농업 : 가톨릭농민회 정한길 회장 / 서울대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백광진 신부 /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이재욱 소장


“세계 평화의 증진은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구원 활동을 계속해 나가는 교회 사명의 필수적인 한 부분이다. 사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사이며, 세상 안에서 세상을 위한 평화의 표지이며 도구다. 진정한 평화의 증진은 모든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표현이다.”("간추린 사회교리", 516항)

평화를 증진시키고 지키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숙명이자 소명이다. 최근 남북관계 변화가 급물살을 타면서, 한반도의 평화 프로세스는 전 세계인의 지지와 관심의 대상이다.

하지만 ‘평화’라는 가치는 우리 사회에서 그동안 그 의미가 반쯤 잘려 나갔거나, 그 구체적 형체 없이 각자의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것, 또는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 가치였다. 그리고 그것은 교회 안에서도 똑같은 모습이었다.

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장 강주석 신부는 현재 한반도 프로세스에 적극 참여할 교회의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면서, 우선적 방법으로 교육과 연대를 제시했다.

그는 진리와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우선 현장과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야 하고, 우리 안에 자리 잡은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는 것이 먼저라면서, “교육을 통해 사실을 접하고, 또 다른 입장에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것이 필요하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연대의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평화를 위한 ‘화해와 용서’는 또한 신앙의 본질이고 중심이기도 하다며,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신앙인들이 남북 간 화해와 용서에 대해 외면한다는 것은 신앙의 진수에 들어가지 않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의정부교구 민족화해학교를 운영하고, 각 본당의 민족화해분과를 지원하는 강주석 신부를 통해, 한반도 평화, 나아가 궁극적 평화를 위한 교회의 역할이 무엇인지 들었다.

의정부교구 민화위원장 강주석 신부. 그는 교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남북 간 '평화의 중재자'라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 의정부교구는 북과 가장 가까운 교구 가운데 하나인 만큼 남북관계 개선, 한반도 통일과 관련해 많은 활동을 해 왔다. 민족화해위원회와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 왔는데, 구체적인 활동 지향은 무엇이었는가?

<강주석 신부> : 민족화해위원회와 가톨릭동북아연구소를 중심으로 그동안 신자 교육에 주력했다. 민족화해위원회가 할 일은 우선 남북 관계와 한반도 평화 문제에 대한 공감대와 의식을 형성하는 일이라고 봤다. 그 뒤에 연구소가 생기면서 국내적으로는 교육, 학술행사를 통한 국제적 연대에 나섰다. 굳이 연대를 이야기하는 것은, 사회교리에서도 ‘평화’를 가르치지만 막연한 개념인데, 평화와 연관되어 강조되는 것 중의 하나가 ‘연대’다.

그 연대가 왜 중요한지 학술대회를 통해 알았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는 두 차례에 걸쳐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평화에 대한 국제학술심포지엄을 열었다.) 지난번 미국 국제정의평화위원회 브롤리오 대주교의 방문도 학술대회 결과의 실천 선상에서 이뤄진 연대 방문이었다. 연대라는 것은 일방적인 한 쪽이 아니라 서로에게 힘을 주고, 동력이 된다. 또 잘 모르고 잘못 아는 것을 현장에서 제대로 알게 되는 점도 있다.

또 특히 한반도 평화 문제는 남과 북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최소 6자 간의 문제다. 국제 심포지엄을 통해 종교계 6자회담과 같은 자리를 마련해 보고 싶었지만, 현실적 한계로 이뤄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일본의 평화세력에 대한 이야기를 일본 주교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또 같은 입장은 아니더라도, 이런 자리를 통해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이 만나 서로 이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지금여기> : 다른 국가의 평화세력, 또는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과 만나고 소통하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연대의 역할을 말씀하셨다. 하지만 연대가 제대로 이뤄지려면, 남북관계, 평화나 통일의 개념에 대해 왜곡된 시선부터 어느 정도 걷어내야 할 것으로 본다. 그런 차원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이며, 그에 대한 교회의 역할은 무엇인가?

<강주석 신부> : 가장 우선은 교육이다. 먼저 알아야 하고 앎을 통해 진실과 진리에 접근할 수 있다. 신앙의 목적 자체가 진리와 진실 추구 아닌가. 지난 70년간 한반도의 상황은 진실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들다. 또 북한에 대한 악마화, 적대화를 해 왔다.

세상은 복잡하고 다양한 사건, 인물, 상황으로 얽혀 있음에도 정치적인 이유로 너무 단순화시킨 것이다. 적대화하기 위해서 다양성을 배제했고, 그 안에 있는 사람을 삭제하고, 상대를 악마로 규정한 것이다.

그리고 교회 안에도 분명 그런 인식이 있었다. 교구에서 운영하는 민족화해학교를 통해서 그것을 어느 정도 걷어낼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있다.

올해 민족화해학교 주제는 “민족화해와 교회의 성찰, 사회주의 체제 안에서의 천주교, 북한 사회의 이해, 통일 방법론과 미래상, 민족의 화해와 일치” 등으로 구성했는데, 이런 내용을 통해 한반도의 분열과 갈등을 신앙의 눈으로 판단하도록 돕고자 한다.

하지만 보다 일상적이고 보편적으로 교리교육을 할 때 먼저 남북문제나 평화문제를 필수로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 교회가 가르치고 살아야 하는 것이 ‘하느님나라’인데, 한반도 자체가 폭력과 갈등을 겪고 있는 이 상황을 신앙의 눈으로 성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회가 적극 노력할 바다. 그래서 의정부교구는 견진 교리 과정에 전통적 교리와 함께 민족화해학교 교육 과정을 넣기도 한다. 2015년부터 현재까지 23개 본당에서 학교를 열었고 약 2100명이 수료했다.

또 하나는 각 본당의 민족화해분과 설치다. 민족화해분과를 적극적으로 만든 것은 지난 2016년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에서 전국 각 본당 민족화해분과 설치 방안을 논의하면서다. 2018년 9월 현재 의정부교구는 전체 81개 본당 가운데 51개 본당에서 민족화해분과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분과 설치는 남북관계에 대한 관심과 민족화해에 대한 공감이 더 많은 신자들 사이에서 일상적으로 이뤄지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이전에 교회가 남북관계에 관심이 많았고, 주교들의 방북도 이뤄졌지만 그것은 위에서만 이뤄진 것이었고 아래로 흐르지는 못했다. 분과를 설치하면서 처음에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각 본당 별로 남북 관계 주제의 사진전, 특강, DMZ 순례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동안 부족한 것들을 조금씩 채우고 있고, 무척 고무적이라고 본다.

민족화해학교 참가자들이나 각 본당 신자들이 남북 간 화해 분위기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고, 다양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다양한 입장들이 모여 서로 생각을 나누고 듣고, 공부하는 과정의 의미다. 복음의 핵심은 평화이고, 평화의 중심은 화해와 용서다. 그렇게 나누고 스스로가 화해와 용서를 이루는 것이 평화의 실천일 것이다.

화해와 용서는 신앙의 본질이고 중심인데, 현재의 한반도를 함께 살아가는 신앙인들이 남북문제를 외면한다는 것은, 결국 신앙의 진수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회가 본당 민족화해분과 지원을 위해 매달 발행하는 소식지와 '평화'에 대해 가르치는 사회교리. 그리고 동북아평화연구소가 진행한 국제학술심포지엄 자료집. 그동안의 중요한 성과이기도 하다. ⓒ정현진 기자

<지금여기> : 분단과 이념 갈등에 대한 한국교회의 책임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있다. 사회적 갈등에 교회가 동참한 과오가 있다면 그 매듭을 푸는 것이 또한 화해와 용서의 시작이자 평화의 구축점일 것이다. 그러나 공식적인 언급이 되지 못하고 있는데, 이 부분을 어떻게 같이 성찰할 수 있을까?

<강주석 신부> : 그 부분은 민화위학교에서나 강의를 통해 열심히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회교리에도 명확하게 평화를 위해서는 화해가 이뤄져야 하고 화해를 위해서는 참회가 있어야 한다고 이른다. 그러니 먼저 성찰하는 것이 교회가 할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잘못과 부족한 모습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그래도 역사 교육이나 성찰의 기회를 통해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용기이고 평화에 더욱 가까워지는 길이다. 참된 교회의 모습은 스스로 잘하고 선하고, 정의롭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을 성찰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고, 그것이 자연스러워질 때, 비로소 그리스도의 평화에 가까워진다. 교회의 복음화가 양적인 확산도 있지만 그런 성사적 행위가 어디서나 이뤄지는 것이 바로 복음화다.

그런 면에서, 북한 교회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의 문제도 있다. 북한에서 일어난 박해와 순교자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한 축이 있지만 다른 축에서는 판단하고 단죄하고 적대하는 모습도 증가될 수 있다.

순교의 의미를 어떻게 보느냐, 즉 평화의 극명한 상징으로서 비폭력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대립과 영광, 보복적 정의로 볼 것인가의 문제다. 분단 과정에서 일어난 순교, 이념 갈등에 따른 순교를 보면, 비폭력의 극명한 표현이었다. 그 속에서 예수의 십자가를 봐야 하고, 그것이 성찰의 출발이어야 한다.

<지금여기> : 앞서 말씀하신 성찰과 함께,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 방북 가능성을 보면서, 교회가 할 수 있는 직접적 역할이 제시되고 있다. 일상적 노력 외에 화해와 용서를 이끌어 내기 위한 교회의 역할은 무엇이 있을까?

<강주석 신부> : 교회가 가진 중요한 매력 가운데 하나가 ‘중재자’의 역할이다. 한쪽 편에 서서 대립하고 갈등 유발, 행위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서 중재한다는 것이다.

예수의 말처럼, 세상 안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고, 교황님도 그 역할을 염두에 둔 것 같다.

중재자로서의 역할이 왜 중요한지는 문재인 정부의 역할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남한 정부가 북미 사이에 중재자로 나서면서 남북 간 관계도 진전을 맞았고, 북미 간 대화도 이뤄졌다. 이것은 큰 변화이고 성과다. 남한 정부가 적대적 행위자에서 중재자로 돌아서면서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북한의 비핵화와 인권 문제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역할도 마찬가지다. 교황의 가장 큰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핵무기 없는 세상”이다. 비핵화는 비단 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핵확산금지조약을 했지만 해당 국가들이 지키지 않고 있다. 보편 교회의 입장은 한반도뿐 아니라 핵무기 없는 세상을 지향하는 것이고, 이는 ‘하느님나라’라는 이상을 가진 신앙인이라면, 이상적인 이야기라고 밀어 둘 문제는 아니다.

인권 문제도 교회는 정치적으로 북한인권을 이용하려는 것에서 벗어나 인도적 지원조차 막는 상황, 미국의 경제 제재로 누가 고통받고 있는지 이야기하는 것이 복음적이고 교리에 맞는 입장일 것이다.

인권문제를 악화시키는 것은 적대적 전쟁이다. 사실상 여전히 남북은 전쟁 중이고, 북한의 인권, 나아가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인권이 보장받기 원한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전쟁과 적대적 상황을 끝내는 것이고, 또 북한의 경제적 상황을 개선시키는 것이다.

교회의 역할 가운데 중요한 것은 바른 가치를 알리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교회는 진실고 진리를 용기 있게 이야기해야 한다. 또 교회 내에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에게도 올바른 맥락과 사실을 설명하고 대화해야 한다.

<지금여기> : 구체적으로 평화를 산다는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삶 안에서 신앙인들이 평화를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을까?

<강주석 신부> : 정의와 평화를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개인 내면의 평화도 중요하지만, 정의에 가까이 가려는 노력을 평화적으로 하는 것이다.

또 우리가 겪고 있는 남북 갈등과 남남갈등이 평화로 가는 길에 각오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북한이라는 단어 자체를 혐오하거나 두려워하는 이들, 그리고 그들과 겪는 갈등과 분열 역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평화를 위한 노력은 그 상황에 대한 고민이다.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가장 폭력적인 죽음을 맞았지만 그것은 결국 평화였다. 분단이라는 십자가를 통해 결국은 화해와 평화에 가까이 갈 수 있다는 것을 묵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교육의 필요성을 말했지만, 교육은 단순 정보가 아니라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이해는 단순히 정보와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위한 것이다. 변화는 행동과 삶의 변화이고 그 방향은 평화와 가장 가까운 모습이다. 또 상대방을 변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변화가 우선되어야 한다.

평화는 과정이자 결과다. 우리가 변화되는 과정에서 더 많은 이들이 평화를 고민한다면, 그렇게 변화된 시민들에 의해 정치도 바뀔 것이다. 그리고 연대를 통해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 세계의 평화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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