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문제는 육체의 문제나 경제적 측면이 아니라 정신적 호스피스 차원에서 고려되어야..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는 존엄사법 제정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사진은 기자회견에서 성명서를 읽는 주교회의 사무총장 이기락 신부. 

7월 8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위원장 장봉훈 주교)는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안락사로 인식되는 존엄사법 제정을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최근 인공호흡기 제거를 대법원에서 판결받은 김할머니의 사례에서 보듯이,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이 곧 죽음을 의도한 존엄사 판결로 인식되는 상황에 따른 문제를 주교회의가 지적하고 나섰다. 이른바 '존엄사' 판결 시행 후에도 김할머니가 자력으로 호흡을 유지하며 생명을 지속하는데 대해 "왜 빨리 죽지 않느냐"는 사회의 반응을 통해 존엄사 논의가 안락사를 목표로 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경악한다고 주교회의가 밝힌 것이다. 

성명에서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는 "존엄사에 대한 법률제정을 반대한다"면서 '존엄사'라는 그럴듯한 명칭이 안락사를 아름답게 포장한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즉, 고의로 죽음을 의도하는 것은 부도덕한 행위라는 것이다. 따라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 '존엄사'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데도 반대했다.

생명윤리위원회는 삶의 마지막 단계에 임박했을때,   다만 환자가 미리 밝힌 의사에 따라서만, 불확실하고 고통스러운 생명연장 수단으로서의 기계적 처치를 거부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비록 인공호흡기까지 제거한 말기환자라고 하더라도 정상적인 간호는 중단되지 말아야 하며, 영양공급이나 수분공급 역시 당연히 베풀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호흡기 제거 등이 죽음을 의도하는 행위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성명에서는 "사람의 마지막 시기를 보내고 있는 환자에게 있어 참된 의미의 존엄이란 자기 자신에게 다가온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자연스럽게 맞아들이면서 편안히 눈을 감는 것"이며, 인간존중을 위해 "죽음의 과정이 자연스러운 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죽음을 의도하는 치료의 중단은 당연히 말기환자의 자연적 죽음을 방해하고, 인간의 존엄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는 것이므로, 이를 국가가 법률로서 지지하는 것은 결국 우리 사회를 죽음의 문화 속으로 밀어넣는 것"이므로, 안락사를 조장하는 존엄사법 제정을 반대한다는 것이다. 

이번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의 성명은 서울대병원 의료윤리위원회가 지난 7일 말기 암환자 뿐만 아니라 뇌사 상태 환자, 말기 만성질환자도 연명치료 중단이 가능하다는 내용의 존엄사 가이드라인을 확정 발표한 데 따른 즉각적인 교회의 반응이었다.

서울대병원은 이날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진료권고안’을 의결, 최종 확정했으며, 이에 따라 존엄사법 입법화가 본격화되리라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번 권고안에 따르면 병원은 연명치료 중단이 가능한 상황을 ▲사전의료지시서에 근거해 진료현장에서 결정이 가능한 상황 ▲환자의 추정적 의사를 판단해 진료현장에서 결정이 가능한 상황 ▲병원 의료윤리위원회의 의학적 판단에 따라야 하는 경우 ▲법원의 결정에 따라야 하는 경우 등으로 세분화했으며, 말기 암환자 뿐만 아니라, 뇌사상태 또는 만성 질환 말기상태 환자에 대해서도 연명치료 중단 결정이 가능하도록 명시했다.

특히, 환자의 평소 가치관이나 신념 등에 비추어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최선의 이익에 부합된다고 판단되고, 환자에게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연명치료 중단을 희망할 것이라고 여겨지는 경우엔 환자의 대리인이 사전의료지시서에 서명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또한 의사표현이 어려운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는 반드시 병원 의료윤리위원회의 의학적 판단을 받도록 했다. 위원회 결정이 어려운 경우에는 법원의 결정을 따라야 한다.

지난 5월 19일부터 현재까지 서울대병원에서는 11명의 말기암 환자 측이 사전의료지시서를 작성했고 이중 7명이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임종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총무 이동익 신부.
이번 서울대병원의 권고안에 대해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총무를 맡고 있는 이동익 신부는 "서울대의 권고안이 일반적인 연명치료 중단과 안락사로 나아갈 여지를 남기고 있으며, 특히 환자의 평소 가치관이나 '추정적 의사'로 연명치료 중단을 판단하는 것은 유추가능성을 열어서 혼란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사전의료지시서 역시 "계속치료의 위험성을 강조하여 환자를 협박하는 수준이어서 환자가 자유롭게 계속치료 의사를 표현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라면서 "환자가 편안한 마음으로 남은 삶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고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치료중단 여부를 결정하는데 의료진의 의도에 따라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한편 이동익 신부는 '존엄사'라는 명칭이 죽음을 의도한다는 점에서 용어문제가 있으며, 오히려 '말기환자에 대한 치료법'이나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관한 법' 등으로 바꾸어 불러야 혼란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대학교의 권고안은 "안락사 의도가 다분하다"고 비판했다.

이 신부에 따르면, 가톨릭계 병원에서는 교회문헌과 생명윤리위원회의 입장에 따른 가이드라인이 있어서 큰 어려움 없이 말기환자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한다. 

또한 국회에 제출된 존엄사법 법률안 초안을 경실연에서 만들어진 것 자체가 의료문제를 단순히 경제적 측면에서 다루어지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고 개탄했다. 즉, 연명치료가 단순히 의료자원의 낭비라는 측면에서 다루어지는 것은 문제가 있으며, "호스피스 차원에서 죽음의 문제가 다루어져야 하고, 이는 죽음을 단순히 육체의 문제로만 보지 않고 정신적 문제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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