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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지 설교[구티에레스 신부] 2월 17일(연중 제6주일) 루카 6,17. 20-26

주일 전례를 보면, 독서들 간의 연결점에서 해석의 열쇠를 찾을 수 있다. 이것이 오늘 독서의 경우인데, 한번 흘낏 보면, 아무런 상호 연결점이 없는 것 같다.

도전

복음은 평지설교의 시작을 알린다.(마태오 복음에서는 산상설교) 예수님께서 하룻밤 기도하면서 보낸 산을 내려오니, 그때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있다.”(루카 6,17) 루카는 예수님 주변에 수많은 군중이 모여들었다고 자주 강조하기를 좋아한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말하려고 하는 것은 소수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을 듣고 질병도 고치려고 온”(6,18) 모든 사람에게 해당된다.

“그분은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셨다.”(6,20) 직접적으로, 그들에게 “너희들”이라고 말하면서, 그분 앞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씀했다. 그리고 그분은 네 가지 참 행복들을 가난한 이들에게, 지금 굶주린 이들, 사람의 아들 때문에 미움을 받고 박해받는 이들에게 선포한다.(6,20-22) 그분은 또한 부유한 이들에게 매우 단호한 경고를 한다. 지금 배부르고 웃는 사람들, 지금 모든 사람에게서 좋은 말을 듣는 사람들에게 경고한다.(6,24-26) “그분의 말씀을 들으려고” 온 사람들은 예수님이 그들에게 말하고 질문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들은 “너희들”이라고 되풀이하는 말씀을 놓칠 수 없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어떤 그룹에 넣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은 풍요와 행복의 하느님나라와 반대되는 “지금”의 상황을, 혹은 치료할 수 없는 필요와 압도적인 고통의 미래를 결정적으로 에워싸는 종말의 심판처럼 들린다.

'평지 설교'. (이미지 출처 = newemangelization.com)

하느님의 심판

예수님은 분명하게 실제 삶의 조건들을 말하고 있다: 가난과 그 결과들, 즉 굶주림, 불행 그리고 박해; 재물과 그것의 메아리인 만족, 웃음 그리고 칭송을. 또한 그런 상황들에 맞서 종말론적 미래를 시작하면서 예수님은 상황들에 대한 “구세주의 전복”을 선포하고 있다: 지금 굶주리고 지금 우는 사람들은 충만과 행복을 얻을 것이다; 지금 배부르고 지금 웃는 사람들은 굶주림과 고통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것은 역사의 복수가 아니라 인간 삶의 심오한 진실을 -구체적 상황, 갈망, 가치체계, 생활방식 등- 구원사건과 하느님의 다스림의 선포에 비추어 드러내는 하느님의 심판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회개에 대한 심판이고, 역사 속에서 우리의 태도와 상황을 바꾸라는 초대다. 예수님이 이미 현존하며 지금 일하고 있다고 선언하는 미래의 하느님나라의 관점으로 우리의 열망과 일들을 바꾸라는 부르심이다. 바오로가 코린토인들에게 말하듯이,(1코린 15,17)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믿음은, 그것 없이 우리의 믿음은 헛된 것인데, “현세”(15,19)를 초월하는 희망의 지평선을 향해 인간의 실존을 열어 주고 있다. 부활 믿음은 우리에게 상황과 일들을 이해하고 대면하게 하는 새로운 열쇠를 마련해 준다. 또한 우리의 마지막 신뢰를 어디에 둘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게 해 준다.

예수님의 참 행복들과 불행 선언은 인간 조건에 관하여 명료하고도 구체적인 이해를 하면서, 길을 잃지 않고 우리의 여정을 계속하도록 인도해 주는 명확한 요점들을 구성한다. 또한 우리가 세상의 기준과 가치체계에 현혹되지 않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그 선언은 현세의 삶의 실제들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가져온 희망과 함께 우리 삶의 “지금”을 이끌어 줄 것이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 리마 출생. 의대를 졸업한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가 된 뒤에는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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