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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을 녹이며 '명절 순회 공연'[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 8]

결혼한 뒤로 명절을 보낼 때마다 가장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는 시간이 있으니 바로 신랑의 친척들을 만나는 거다. 성묘를 마치고 나면 반드시 큰 고모 댁, 작은 고모 댁, 작은 아버님 댁, 이모님 댁까지... 들러야 할 집이 네 곳인데 그곳에 가면 자녀 분들이 모여 있고 대개는 한두 번 본 얼굴 또는 아예 처음 보는 얼굴인 경우도 많아서 대면하게 되면 뻘쭘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만나면 꼭 한 번씩 듣는 질문과 걱정들(그 산골짝서 뭐해 먹고 사냐, 애들 크는데 돈 벌 궁리는 안 하냐, 얼굴이 그게 뭐냐, 애들이 잘 못 먹어서 그런지 째깐하다 등등) 앞에서 뭐라 말도 못하고 주눅이 든 채 묵묵히 견디어야 하는 형편이니 더더욱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나는 안 가고 싶다. 애들이랑 신랑만 보냈으면 하는데 신랑은 내가 안 가면 엄청 삐친다. 이번 설 명절에도 어떻게 좀 안 가 볼까 하고 말을 꺼냈더니 신랑이 왕창 삐쳐서 저녁까지 굶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죽었다 생각하고 따라다니는 수밖에.... 하나 덧붙이자면 어차피 죽기로 결심했으니 '꺅' 소리라도 내고 죽자.

여기서 '꺅' 소리란 짐작하는 바대로 노래다. 명절과 노래, 너무나 훌륭한 조합이고 잘 어울리는 느낌이지 않은가? 하지만 누가 멍석을 깔아 주지도 않고 아무도 노래하지 않는 곳에서 노래를 불러야 한다면? 생각만 해도 손발이 오그라들고 강추위가 몰려오는 느낌이지만 나에겐 천군만마와도 같은 아이들이 있다는 게 비책이다. 아무튼 조금이라도 틈이 보인다면 그때 바로 노래를 들이밀기로.... 가자, 어색하기 그지없는 적진(?)으로~~~!

우리는 노래 사기단! (어떤 분이 붙여 주신 별명이다. 노래를 통해 사기를 북돋운다고.... ㅋㅋ) ⓒ정청라

# 노래 공연 1. 작은 아버님 댁

이곳에서 처음으로 작은 아버님의 며느리들(결혼한 지 얼마 안 돼 아직 파릇파릇한 새댁들)을 만났다. 결혼 사진 속에서만 만난 터이고 어디 살고 무슨 일을 하는지도 서로 모르는 사이. 하지만 큰 며느님이 배부른 걸 보고 "몇 개월 됐어요?"라고 쉽게 말문을 틀 수 있었고, 대화를 몇 마디 나누다 보니 그녀 뱃속의 아기가 남이 아니란 사실이 실감이 났다. 그리하여 헤어지는 인사를 하는 순간에 그 아기에게 노래를 불러 주고 싶다는 간절한 열망이 불쑥 올라왔다.

"뱃속에 있는 아기한테 노래를 불러 주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노....노래요? 좋죠...."

"애들아, 아가한테 '동지 노래' 불러 주자~~ 시작!"

 

# 노래 공연 2. 작은 고모님 댁

대문을 열고 들어가 목청껏 고모님을 불렀지만 아무 기척이 없다. 집안이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명절에 다들 어디 바람 쐬러 가셨나 보다' 싶어서 준비한 선물만 두고 가려고 문을 열었는데, 그때야 고모님이 나오시는 게 아닌가. 부스스한 얼굴에 낯빛도 썩 좋지 않은 걸 보면 어디가 편찮으신 기색이다.

"다른 식구들은 어디 갔어요?"

"이번엔 암도 안 오고 아들만 왔는데 아침 일찍 느그 고모부 요양병원에 데려다 줌시로 바로 서울로 올라갔다."

"고모부님은 계속 요양병원에 계세요?"

"응, 거동이 불편해서 암것도 못하니 거그 있는 게 편치. 어서 죽어야 할 거인디...."

작은 고모님은 일주일에 한 번 광주에 있는 요양병원까지 문병을 가신다고 했다. 본인도 허리가 아파 잘 걷지 못하니 설 명절 끝나고 서울 가서 허리 수술을 하신다고.... 말씀 중에도 다리가 저리신지 자꾸 주무르시기에 신랑이랑 같이 한 다리씩 주물러 드리다가 아이들에게 작전명령을 내렸다.

"얘들아, 우리 고모할머니 건강하게 사시라고 노래 불러 드릴까? '동지 노래' 시작!"

 

# 노래 공연 3.(스페셜 무대) 이모님 댁

이모님은 팔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어쩜 저렇게 정정하실까 싶게 강해 보이는 분이었다. 슬하에 11남매를 두셨고 이모부님도 아직 정정하셔서 그 집에 가면 늘 북적북적 시끄러운 분위기.... (안 그래도 식구가 많으니 찾아가는 게 오히려 민폐인 느낌이었다.) 그런데 재작년 가을에 이모님이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신 뒤로 명절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모인 사람도 얼마 안 될 뿐더러 자녀 분들 표정에 지친 기색이 역력하달까? 이번 설엔 오전 일찍 들렀더니 아드님 내외 두 가족밖에 없었다.

대화 중에 그 집에 오래된 감나무 두 그루를 베어 냈는데 처치 곤란이라 하시기에 '성묘 갔다가 이따 오후에 저희가 실어 갈게요' 말씀 드리고 오후에 다시 갔다. 그랬더니 그땐 아예 자녀분들이 다 떠나고 요양보호사 아주머니만 계셨다.

"앗, 다들 가셨나요?"

"네. 원래는 명절엔 저도 쉬거든요. 근데 자녀 분들이 급하게 전화를 했어요. 식구들이 얼른 가야 할 형편이라 어떻게 사정 좀 봐 달라고.... 그래서 휴일인데 나왔어요."

다울 아빠가 나무를 싣는 사이 나와 아이들은 집안에 들어가 기다리기로 했다. 의식이 흐릿하셔서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고 누워만 계신 이모님 침대 앞에서 말이다. 딱히 할 말도 없고 적막함을 달랠 길이 없어서 다시 뜬금없이 노래를 소환하기로 했다.

"얘들아, 우리 이모할머니한테 새해가 왔다고, 어서 기운 차리시라고 노래 불러 드리자."

하여 '동지 노래'와 '천릿길'(김민기님 노래)을 힘차게 불렀더니 요양보호사 아주머니가 깜짝 놀라며 좋아하신다.

"어머, 너희들 덕분에 내가 더 힘이 난다. 어쩜 이렇게 고운 노래를 부를 수가 있니? 말씀은 안 하셔도 할머니도 너희들 노래에 감동받으셨을 거야."

그러면서 아이들한테 용돈까지 쥐어 주시니 아이들이 신이 나서 연거푸 몇 곡을 더 불렀다. 그랬더니 누워 계신 이모님도 어렵게 입을 열어 말씀 한마디를 하시는 게 아닌가.

"쓰겄다...."

그 짧은 한마디가 그 어떤 환호와 칭찬보다 값지게 들렸다. 우리 노랠 듣고 계실까 확신이 없었는데 어쩌면 다 듣고 계셨던 건지도!

명절 순회 공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다른 때보다 마음이 한결 가볍고 뿌듯했다. 노래를 통해 마음과 마음이 닿는 경험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얼어붙은 관계, 뻘쭘한 분위기만을 의식하여 얼음처럼 꽁꽁 얼어 있었던 나의 지난날이여 안녕! 노래가 얼음을 녹였으니 이제 봄은 더 성큼 다가올 것이다.

덧.

아이들과 함께가 아니었다면 내가 어찌 노래를 불렀겠는가. 나는 그냥 묻어갈 뿐이고 사실상 노래의 주역은 아이들! 언제 어느 자리에서나 흔쾌히 함께 노래를 불러 준 아이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아침마다 부르는 노래인데, 새해가 떠오르는 시점에도 잘 어울릴 것 같아 담았다.)
새해 맞이하러 가 복수초꽃 꽃밭에 가 보니 환한 빛 머금은 꽃망울이 여러 개 보인다. 이제 활짝 피는 건 시간 문제! (성질 급한 몇 송이는 벌써 피었다.)

정청라

인생의 쓴맛 단맛 모르던 20대에 누가 꿈이 뭐냐고 물으면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막상 엄마가 되고 1년도 채 안 되어 좋은 엄마는커녕 그냥 엄마 되기도 몹시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좋은 엄마'라는 허상을 내려놓았다. 그 뒤로 쭈욱 내려놓고, 내려놓고, 내려놓기의 연속.... 이제는 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살아 있음을 만끽하며 아무런 꿈도 없이 그냥 산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스스로 길이 된다는 것'임을 떠올리며 노래로 길을 내면서 말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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