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문제부터 여성, 성소수자 문제까지

가톨릭 청년들이 "청년이란 누구인가"에서부터, 새로운 청년회의 모습, 교회 내 여성과 성소수자 문제까지 폭넓게 논의한 세미나 방식의 피정이 열렸다.

이 자리는 가톨릭 청년들의 독서모임인 CRF(Catholic Reading Forum)가 ‘청년이 묻고, 청년이 답한다’를 주제로 왜관 베네딕도 수도원에서 2월 9일부터 10일까지 마련했다. 서울, 대구대교구와 대전, 부산, 의정부교구에서 온 청년 등 20여 명이 참여했다.

CRF는 지난해 7월 한 교구에서 진행된 인문학 피정에서 만난 네 사람이 자발적으로 만든 청년 평신도 독서모임으로 이들은 지금까지 모두 11권의 책을 함께 읽고 토론했으며, ‘성소수자’를 주제로 1차 공개 세미나도 진행했다.

이 모임에는 지도사제는 물론 특정 대표도 없고, 의사결정은 만장일치라는 규칙 외에 회원 의견에 따른 자율적 방식으로 모임을 하다 보니, 교회 인가 여부부터 신천지는 아니냐는 질문까지 받았다며 “우리는 왜라는 질문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톨릭 청년들일 뿐”이라고 말했다.

CRF 회원인 이원길 씨(요한 보스코)는 “‘왜’라는 소중한 물음을 지니고 각자의 자리에서 분투하는 청년 신앙인을 지지하고, 단절돼 있는 청년들이 연대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피정의 목적을 밝혔다.

이들은 교회 안팎 청년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교회는 어떤 노력을 했는가를 묻고, 대안을 찾고 싶었다며, 피정에서 나온 의견을 각 교구 청년사목 담당 사제들에게 전달하겠다고 했다.

CRF가 그동안 함께 읽은 책. (사진 제공 = CRF)

무기력하고 우울한 청년은 청년이 아닌가?

참가자들은 첫 주제로 새로움과 도전, 진보의 상징으로 인식됐던 역사 속 청년의 모습을 짚어 보고, 만약 청년일 수 없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토론하며 이 시대 청년을 다시 정의해 보았다.

“젊은 애가 왜 그래?”, “청년이 왜 이렇게 불만이 많아?”, “젊은 애가 패기가 있어야지, 우울한 생각만 하나?”, “돌도 씹어 먹을 나이”....

참가자들은 우리 사회가 청년은 항상 밝고 막혀 있지 않고, 새로워야만 하는 존재로 인식한다며, 청년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와 많은 의미부여 때문에 이 시대의 청년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어렵게 됐다고 지적했다.

한 참가자는 “청년은 꼭 행동하고 고민하는 사람, 밝은 사람이어야 하나? 그게 청년이라면 무기력한 청년은 청년이 아닌가?”라며 청년에 대한 고정관념이 강하다고 짚었다.

치열한 생존 경쟁에 놓인 현재의 청년들을 뜻하는 말로는 패기, 희망, 도전이라는 말보다 ‘포기’라는 말이 이 시대에 더 적절하다고, 각 시대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청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20-30대 청년을 바라보는 중장년층이 자기 세대를 스스로 정의할 수 있어야 청년에게 여러 이미지를 씌우지 않을 것이란 지적도 있었다. 이들과 청년의 대화와 중장년층을 포용할 수 있는 교회 안의 자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또 참가자들은 청년과 중장년을 구분하는 나이와 결혼여부 등 인위적 기준을 넘어서고, 이것이 차별적 기준이 되지 않도록 세대를 구분하는 포괄적 기준을 마련해 다양하고 풍요롭게 세대를 인식할 필요도 있다고 봤다.

이 시대 청년이 왜 무기력하고 주체로서 움직이기 어려운지와 청년에 대한 개념을 명확하게 정의 내리고 싶어 하면서도 왜 청년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만 채워 가려고 하는지에 대해서도 물어야 하며, 청년에 대한 정의는 바뀔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교회 청년회 어떻게 살려 볼까?

교회에 청년이 많지 않은 상황에 대해 다양한 대안도 논의됐다.

참가자들은 몇 안 되는 청년들이 복사, 성가 등 전례를 전담하다 보니 소진되는 경우가 흔하다면서 먼저 교회가 청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 성직자에게 청년사목에 대한 전문적 교육을 할 것과 다양하고 적극적인 사목 방법을 펼쳐야 한다고 제안했다.

주일학교 시기 때 열심히 성당에 나오던 이들도 청년기에 이르면 발길을 끊는데, 이는 신앙인 양성에 연속성이 없기 때문이라며, 청년이 돼도 성당 활동 속에서 관계를 맺고 소속감을 느끼며 의미를 발견할 수 있도록 교회가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참가자들은 편안하게 모일 수 있는 분위기도 중요하다고 봤다. 그러기 위해서는 청년들의 전례 준비에 대한 부담을 덜어 주고, 자발적이고 다양한 작은 모임을 만들어 교회가 본당을 넘어 지역을 중심으로 가톨릭 청년들의 쉼터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청년사목에 힘썼던 사제가 다른 곳으로 떠나더라도 다양한 청년 소모임이 지속될 수 있는 구조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봤다.

이밖에도 지역 청년에게 성당 공간 개방, 청년 신앙인에 대한 재교육, 교적을 넘어서는 새로운 사목규정 도입, 다른 교구 청년들과의 연대 시스템 마련 등의 방안도 나왔다.

참가자들은 청년 신자가 줄어드는 문제를 한 본당이 해결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데 공감했고, 사제에게 집중된 역할을 나누기 위해 전문 평신도 활동가를 양성할 필요도 있다고 봤다.

한 참가자는 “교회가 구체적, 실천적 청년회를 양성할 수 있도록 역할을 다해야 하고, 청년은 누구이며 무엇을 위한 사목인가에 대한 물음도 계속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참가자들은 모둠을 나눠 각 주제에 대해 집중 토론했다. ⓒ김수나 기자

교회, 성평등 문제 사회보다 뒤쳐져....

교회 내 여성의 역할과 성소수자들의 신앙에 대한 의견도 나누었다.

참가자 대부분은 가톨릭교회가 여성을 억압하는 모습이 분명히 있다고 봤다. 특히 낙태죄 폐지에 대한 논의를 단편적으로만 진행해 온 가톨릭교회의 태도를 비판했다.

낙태는 남성과 여성 모두의 책임인데도 여성에게만 법적 책임을 묻는 낙태죄 법 자체의 문제점을 교회가 놓치고 있고, 낙태를 곧바로 죄와 연결시키는 지점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참가자들은 적어도 교회라면 낙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대한 진단과 논의를 먼저 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며 낙태죄 폐지 반대를 외쳐야 한다고 봤다. 그러지 않기 때문에 가톨릭교회가 많은 이들에게 여성을 억압하는 종교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혼과 피임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교회는 평신도가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당사자의 고통을 배려할 수 있도록 충분한 논의 과정을 마련해야 청년 세대도 공감할 것이란 의견도 있었다.

사회는 성역할이 빠르게 재정립되고 있는데, 교회는 그 흐름에 뒤쳐진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참가자들은 교회의 중요 사안에 대한 의사결정에 여성이 참여할 수 없는 구조와 가부장적 성역할을 바꾸려는 노력이 없다면 많은 이들이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 봤다.

교회가 성평등을 이루려면 여성 사제직이 현실화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 참가자는 “가톨릭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게 전례 성사인데 그에 대한 모든 권한이 남성 사제에 집중된 상황에서 그것을 배제한 채 본당 안에서 여성 역할을 확대하는 것만으로는 성평등이 완성될 수 없다” 고 말했다.

우리가 성소수자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이유

이어 다양한 성적 지향을 지닌 이들을 신앙 안에서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와 어떤 방식으로 이들과 신앙을 함께할 수 있는지도 토론했다.

발제를 맡은 이전수 씨(라파엘)은 지난해 열린 제15차 세계 주교시노드 최종문헌 제150항을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이 문헌에는 교회가 동성애를 당사자의 성적 지향을 고려해 그들의 성정체성을 이해해야 하며, 모든 종류의 차별을 배제하고 그들이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동행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는 성소수자에 대한 괴롭힘 금지 지침서를 둔 영국 성공회와 성소수자 사목을 하고 있는 한국 성공회 민김종훈 신부와 개신교인 섬돌향린교회의 임보라 목사의 사례도 소개했다. 이들 교회는 성소수자를 교회 구성원으로 존중하고 그들이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는 다양한 성적 취향을 유전적 결함의 문제로 바라보면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생길 수 있다며, 유전적 연구에 대한 것은 누구도 정확하게 말할 수 없고, 자칫 유전자의 우열을 가르는 우생학적 관점에 빠질 수도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참가자들은 성소수자를 만나 본 경험부터 그들에 대해 어떤 편견과 혐오와 차별이 있는지를 중심으로 토론했다.

이들은 성적 취향이 다를 뿐인데 성소수자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편견이 가장 큰 원인이며, 이런 편견 속에서도 그들을 관음하듯 보는 인식도 문제라고 지적됐다.

그리스도교가 이들을 배척하는 것은 성서에 대한 부분적 이해일 수 있다는 의견과 함께 현재 일부 종교인들에게서 극단적 혐오가 있는 상황이며, 교회가 이들을 당장 인정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최근 시노드 문건이나 교황의 발언을 통해 이들을 수용하고자 하는 노력도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고 봤다.

피정을 마치며 참가자들은 소감을 나눴다. 이들은 청년 신앙인으로서 다양하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을 만난 것이 가장 힘이 됐고, 청년들이 더 많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만남과 대화의 자리를 통해 신앙의 기본이 무엇인지 돌아보고, 자신만의 문제가 아닌 함께 고민하고 연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다고 평가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기 전에 참가자들은 피정에 대한 소감을 나눴다.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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