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사회
“누구나 정의와 정직을 말할 수 있지만 행하기는 어렵다”제정구 20주기 추모행사

‘빈민의 벗’ 제정구(바오로) 20주기를 기리는 추모행사가 7일 오후 명동성당 파밀리아 채플에서 열렸다.

추모미사의 강론을 맡은 유경촌 주교는 “누구나 정의와 정직을 말할 수 있지만 행동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제 선생님은 직접 그렇게 사셨다”며 “선생님께서 남긴 것은 18평 슬레이트 집 한 채와 빚 7000만 원, 가짐 없는 자유라는 가훈이었다는 기사를 읽으며 그분의 삶이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유경촌 주교는 “선생님은 가난을 행복으로 여길 수 있는 분”이었다며 “그분은 집 잃어 힘들어 하는 이들과 함께 하고 가난하고 힘없어 박해받는 이들과 함께 박해받으며, 그 억압을 이겨 내기 위해 애쓰고 사람들 사이에 평화를 심었다”고 했다.

유경촌 주교는 “그분이 정치에 뛰어든 것도 개인적 나눔과 연대만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와 목소리가 보장될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며 “정치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 주교는 “그분이 성직자는 아니었어도 성직자 이상으로 하느님을 갈망하고, 매일 기도 안에서 하느님을 탐구하며 그 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의 표지로 드러내 보였던 분”이라며 “제정구 선생님은 이 땅 모든 가톨릭 신앙인들의 모범”이라고 했다.

추모미사가 끝나고 제정구기념사업회가 주는 제정구 상 시상식이 있었다. 제정구 상은 국내외의 빈민현장 등 풀뿌리 지역에서 주민들과 함께 활동하는 개인 또는 단체에게 주며, 올해가 2회째다.

7일 명동성당 파밀리아 채플에서 열린 제정구 20주기 추모미사는 유경촌 주교의 주례로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사제들이 집전했다. ⓒ신재용 기자

이날 수상자는 인도네시아 도시빈민운동단체 UPC(Urban Poor Consortium)에서 주민조직가로 활동하는 군토로 구군 무함마드와 미얀마 빈민지역의 주민조직운동단체 베다(Bedar Social Development Group)였다.

시상식 뒤 부인인 사회복지법인 복음자리 신명자 이사장은 20주기를 준비하며 본 사진에서 제정구가 만나는 사람마다 그 눈높이에 앉거나 서 있었다며 “(그는) 높은 사람, 낮은 사람, 부자, 가난한 사람 어떤 사람에게도 최선을 다하고 예수님 만나듯 정성을 다했다”고 술회했다.

제정구기념사업회 원혜영 이사장은 참석자들에게 “이제 제정구기념사업회는 그간의 결실을 기억하며, 25차 이사회와 오늘 16차 총회의 의결로 사단법인을 해산하기로 했다”며 “법인의 마지막 행사에 함께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제정구 추모행사도 이번이 마지막이다.

이날 추모행사는 제정구기념사업회,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제정구장학회, 사회복지법인 복음자리가 주최했으며, 약 300명이 참석했다.

제정구는 1944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났다. 1966년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했으나 1971년 교련반대 시위로 제적됐고,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1973년 청계천 판자촌에 들어가 살며 예수회의 정일우 신부와 함께 빈민운동을 시작했다. 양평동 철거민들과 경기도 시흥으로 이주해 1977년 복음자리마을을 만들었고, 이어 1979년 한독주택, 1985년 목화마을을 만들었다.

1980년대에는 천주교 도시빈민사목협의회(현 천주교도시빈민회) 초대 회장과 천주교빈민문제연구소(현 한국도시연구소) 초대 소장을 맡았고, 천주교 사회운동협의회 의장, 정의평화위원회 이사를 역임했으며 1987년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1986년에는 정일우 신부와 함께 막사이사이 상을 받았다.

1987년에는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를 지내는 등 민주화운동가로도 활동했다.

그 뒤로는 정당 활동을 하여 1992년부터 14, 15대 국회의원을 하던 중 1999년 2월 9일 폐암으로 숨졌다. 국민훈장 모란장이 추서됐다.

이날 추모행사에는 약 300명이 참석했다. ⓒ신재용 기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신재용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