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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동형 비례대표제.... 내가 주장할 때만 로맨스?[시사비평 - 최광웅] 여당, 근시안적 이익을 넘어서야

헌정 사상 최초의 여소야대를 가져온 1988년 13대 총선은 여당인 민정당의 득표율이 가장 낮았을 뿐만 아니라 의석수도 41.8퍼센트밖에 점유하지 못해 과반수에 크게 미달했다. 4개월 전 실시된 대선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이 양김 분열이라는 어부지리로 당선은 됐으나 36.6퍼센트 득표율을 얻는 데 그쳤다. 이는 고스란히 총선까지 이어지면서 민정당이 참패한 것이다. 그나마 전국구 의석(75석)을 지역구 1당에게 절반(38석)을 배분하는 선거법 규정에 따라 여당 의석은 약간 늘었다.

여소야대를 만든 건 소선거구제 때문이었다. 1972년 유신헌법 선포로 폐지된 국회의원 소선거구제가 16년 만에 다시 부활한다. 1987년 직선제 대통령선거 개표결과에서 확고한 지역적 기반을 확인한 김대중-김종필 등 양김이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려면 소선거구제를 채택해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여야 4당이 대구 경북과 호남, 그리고 충청에서 지역할거구도를 형성하며 지역주의라는 한국정치의 고질적 병폐가 뿌리내리게 되었다. 여당인 민정당은 당 총재인 노태우 대통령의 출신지 대구 경북에서 29개 의석 중 25석을 석권했다. 제1야당으로 올라선 평민당 역시 김대중 총재의 연고지인 광주와 전남북 37개 지역구 중 36석을 쓸어 담았고, 제2야당인 통일민주당도 김영삼 총재의 연고지 부산 경남 37개 의석 중 24석을 획득했다. 김종필 총재의 공화당 또한 충청권 27개 선거구 중 15석을 가져갔다.

13대 총선 이후 선거 때마다 나타나는 지역 할거구도는 현재까지 되풀이되고 있다. 그렇지만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개선 노력이 시작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집권에 성공하자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영남권 의석 확보를 위해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추진했다. 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는 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의원정수를 299인에서 250인 선으로 줄이되,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1대1로 조정하는 혁명적인 당론을 채택했다. 소선거구와 6개 권역별로 비례대표 의원을 선출하는 일본식 병립형이었다. 하지만 정치개혁특위가 가동되는 과정에서 공동여당의 한 축인 자민련이 비례대표 의석 확보에 유리한 1인 1표제를 고집하는 바람에 중대선거구제로 방향을 틀었다. 당시 자민련은 개별 지역구 출마자의 득표율은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으나 정당 지지도가 너무 낮아서 비례대표 득표율은 장담할 수가 없었다. 이후 공동여당의 협상안은 7대 대도시에 한해 2-4인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와 나머지를 소선거구제로 하는 ‘도농복합선거구제 +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바뀌는데, 당 지지율이 미약한 자민련을 위한 일종의 당리당략이었다. 지루한 3당 3역(사무총장, 원내총무, 정책위의장) 회담을 통해 한나라당이 전국 통일 소선거구제와 권역별 비례제 등을 역으로 제안했으나 이 안은 자민련의 거부로 최종 결렬됐다.

17대 총선을 앞두고도 선거제도 개혁열망은 뜨거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중대선거구 도입을 제안했다. 2002년 11월 18일 발표한 150대 핵심과제를 보면 “중대선거구제 개혁과 이를 위한 책임총리제를 실천하겠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03년 4월 2일 국회를 찾아 국정연설을 했다. “지역구도는 반드시 해소되어야 한다. 내년 총선부터는 특정정당이 특정지역에서 3분의2 이상의 의석을 독차지할 수 없도록 여야가 합의하셔서 선거법을 개정해 주시기 바란다. 이 제안이 17대 총선에서 현실화되면 저는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 또는 정치연합에 내각의 구성 권한을 이양하겠다.” 이처럼 권력의 절반 이상까지 내놓으려 하면서 선거제도 개혁에 매달린 노무현 전 대통령은 심지어 과거 ‘자민련의 대안’조차 받겠다고 제안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정기국회 회기 막판에 전체 국회의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지역구도 혁파를 위한 중대선거구제 또는 도농복합선거구제 논의를 요청했는데, “중대선거구제는 2-5인이 최선이며 농촌은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는 도농복합선거구제도 합리적 방안이다.”라고 밝혔다. 또한 "만약 소선거구제를 해야 한다면 최소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유럽 다수 국가에서 시행하는 중대선거구제 또는 독일식 소선거구 및 정당명부비례대표제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분당으로 소수가 된 여당(열린우리당)은 이를 추진할 힘이 없었고, 거대 야당(한나라당)은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을 의사가 없었다. 따라서 2001년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에 따른 기존 전국구 제도가 1인 2표제로 무늬만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81석 규모로 당세가 크게 위축된 18대 민주당은 당론이 중대선거구제였다. 2010년 당시 원혜영 민주당 원내대표의 국회연설을 보면 중대선거구제 개혁을 주장하고 있다. 낮은 당 지지율을 감안한 정략이었다.

20대 총선을 앞둔 민주당(당시 새정치연합)은 또 다시 말을 바꿨다. 당세와 당지지율을 반영해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제안하기에 이른다. 2015년 7월 27일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위원장 김상곤)는 5차 혁신안을 발표했다. 당시 문재인 당대표 체제가 출범시킨 혁신위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당론채택을 요구하면서 국회의원 증원에 대한 필요성을 제기했다. 한편 11명 혁신위원 명단에는 조국 서울대 교수(현 청와대 민정수석)과 우원식 민주당의원(직전 민주당 원내대표) 등이 이름을 올렸다. 김상곤 혁신위원장은 당론 채택을 요구하면서 “현행 지역구 의원수를 유지하면서 중앙선관위가 제안한 ‘지역구 대 비례대표 2대 1 의석 비율을 적용하면 지역구 246인, 비례대표는 123인이 돼야 하므로 국회의원 정수는 369석이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같은 날 이종걸 당시 원내대표는 한술 더 떠서 지역구의원 260인, 비례대표 130인 등 총 390인을 주장하고 나섰다. 정의당 심상정 당대표도 이에 호응하여 지역구 240명과 비례대표 120인 등 360인으로 제안했다. 

그렇지만 최근 민주당은 3년 반 전에 추진한 당론을 부인하고 이른바 한국형 연동형비례제 3종세트(준연동형, 복합연동형, 보정연동형)를 새로운 당론으로 선보였다. 자신들 의석확보에 최대한 유리하도록 하는 일종의 전략이다. 하지만 과연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심판은 오로지 유권자들의 몫이다.  

최광웅

데이터정치경제연구원 원장.
30년 동안 국회, 지방의회, 청와대, 민주당 등에서 일한 대한민국 1호 데이터평론가. 역대 선거데이터와 각종 사회경제적 지표를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을 해 왔다. 2015년 <바보선거> 출간 이후 주요 일간지 등에 다양한 데이터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20대 총선 여소야대 및 국민의당 정당투표 2위를 정확하게 예측해 냈다. 19대 대선 때도 홍준표 3퍼센트 지지율 시점에서 안철수 3위를 과학적으로 분석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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