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우 신부] 2월 10일(연중 제5주일) 이사 6,1-2ㄱ.3-8; 1코린 15,1-11; 루카 5,1-11

“큰일 났구나. 나는 이제 망했다.”(이사 6,5) 하느님을 만난 이사야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입니다. 예전에 사용하던 공동번역 성서를 살펴보면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는 이사야의 처지가 더 확실히 드러나는 듯합니다. “큰일 났구나. 이제 나는 죽었다.” 히브리어 원어를 살펴보면 해당하는 동사 '다마흐'(דָּמָה)는 ‘소멸하다’, ‘사라지다’, ‘폐허가 되다’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사야서에서 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구절을 하나 알려 드리면 그 뜻이 좀 더 잘 드러나리라 생각합니다. “아르 모압이 멸망하였구나. 정녕 밤사이에 파멸하였구나. 키르 모압이 멸망하였구나.”(이사 15,1) 결국 이사야가 외친 이 말마디는 단순한 실수로 인한 결과가 아니라 이사야의 존재 전체를 걸고넘어지는 심각한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구약의 전통에 따라 사람들은 하느님을 직접 만나면 살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에서 하느님과 씨름한 야곱이 했던 말을 떠올려 봅니다. “내가 서로 얼굴을 맞대고 하느님을 뵈었는데도 내 목숨을 건졌구나.”(창세 32,31) 이집트를 떠나는 여정의 출발점에서 모세를 향한 하느님의 말씀도 기억해 봅니다.“ 그러나 내 얼굴을 보지는 못한다. 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살 수 없다.”(탈출 22,20) 이렇듯 하느님을 뵙는 일은 우리의 힘과 의지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습을 우리에게 허락하셔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 결과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인 이사야에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전할 사명을 주십니다. 오늘 1독서는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주님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태도를 알려 줍니다.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주님에 대한 태도, 오늘 복음 역시 같은 맥락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루카 5,5) 당신의 존재를 드러내시려는 주님을 향한 시몬 베드로의 대답은 우리의 모습과 참 비슷합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내 방식대로 했는데 잘 안되더라.’ 하지만 그 다음 마디가 주님을 체험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많은 신앙인들이 하느님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는 열심히 하는데 내 신앙은 줄어드는 것만 같을까?’ 오늘 전례의 말씀들은 여기에 대한 돌파구를 마련해 줍니다. 내 의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내 방식대로 주님께 달려드는 것이 그다지 올바른 해답이 아니라는 점을 1독서와 복음은 절실하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고가 잡는 예수님 제자들. (이미지 출처 = Pixabay)

주님을 체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내어놓음입니다. 저는 이를 신학교에서 배운 말과 같이 ‘힘 빼기’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내 몸과 마음에 힘을 뺄 때 비로소 주님께서 다가오심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너무나 자신의 방식대로 힘을 주고 있었습니다. ‘밤새도록 애썼지만’ 그렇게 밤새도록 힘을 주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머리와 마음에 있는 힘을 빼고 주님의 뜻을 따랐을 때 결과는 완전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주님은 항상 우리 곁에 계십니다. 누구에게나 말입니다. 오늘 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이를 자신 있게 증언합니다. 주님께서 제자들과 다른 사도에게 나타나셨고 ‘가장 보잘것없는 자’(1코린 5,9)인 자신에게도 나타나셨다고 말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습니다.”(티토 2,11)라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당신을 항상 체험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구약을 뛰어넘어, 주님을 만나는 데 있어서 존재했던 모든 두려움을 없애 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다가오시기 때문에 내가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한 사람인지에 대한 걱정은 접어 두어도 됩니다. 이사야가 두려워했던 것처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고 베드로처럼 주님께 떠나 달라고 청하지 않아도 됩니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요한 15,16)라는 주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우리는 다가오는 주님을 위해 내 힘을 빼는 연습을 끊임없이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대로 힘을 뺄 수 있게 될 때 시몬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스승님이 아니라 주님으로 고백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단순히 내 삶에 있어서 조언을 해 주거나 도움을 주는 분이 아니라, 내 삶 전체를 주관하시는 주님으로 고백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을 체험할 수 있게 될 때 그분께서는 “두려워하지 마라”(루카 5,10)라고 말씀하시며 당신의 사랑과 평화를 함께 나누자고 우리를 초대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의 현존을 느끼는 기쁨이 나에게 다가올 때 이사야의 대답처럼 “제가 있지 않습니까?”(이사 6,8)라고 자신 있게 하느님과 함께할 수 있는 신앙인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유상우 신부(광헌아우구스티노)

천주교 부산교구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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