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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다이어트 2(성공과 실패에 관하여)[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92]

그래서 다이어트에 성공했냐고 묻는다. 나는 뭐라고 대답할지 몰라서 우물쭈물한다. 그이가 원하는 대답은 결과에 대해서고, 한 달간의 다이어트 프로젝트는 분명히 어떤 결과를 냈지만, 그건 이미 과거가 되어 버렸고 나는 과거와 같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근육량이 늘어나고 체지방이 줄고, 그래서 체지방지수 앞자리 수가 바뀌었다는 건 성공이다. 그런데 그 이후에 완전히 타락한 삶을 살고 있다면? 프로젝트 기간 동안 먹을 수 없었던 세속 음식에 제 몸을 제물처럼 바치고 운동은커녕 구석에 나자빠져서 흐리멍텅한 눈으로 삶의 허무를 들이키고 살아가고 있다면? 그럴 때 직전의 성공을 성공이라 부를 수 있을까. 성실하게 ‘음. 그때는 일단 성공했었지.’라고 대답할 수는 있겠지만 인생 전체로 보면 조금 실패했는지도 모른다.

프로젝트는 성공을 향해 달린다. 프로젝트의 구성원이라면 그런 확고한 마음가짐이 기본이다. 어느 미친 작자가 실패하기 위해 돈까지 내고 자신의 습관을 바꾸는 고통을 감내할까. 다이어트에 실패하기 위해 닭가슴살을 챙겨 먹고, 과자를 끊고, 화장실에 갈 때마다 스쿼트를 5회씩 3세트를 해치우는 사람이 있을까. 입 밖에 감히 말한 적은 없지만 나도 실패를 한번 해 보고 싶었다. 돌아보면 요사이 나는, 언제부턴가 아주, 여간해서는 실패를 안 했다. 정말 언제 실패라는 걸 했는지 모르겠다. 예를 들자면,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근사한 여행계획을 짜고, 미래를 위한 재테크를 하고, 끝내주게 맛있는 파이를 굽고, 더 끝내주게 맛있는 김치를 담그고, 매일 글을 조금씩 쓴다는 항목에서도 실패란 없다. 심지어 새해계획을 달성하는 데도 실패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건 바로.... 그런 일을 아예 하지 않기 때문이다! 새해계획도 세워야지 작심삼일이니 뭐니 하는 말이 나오고, 오븐도 돌려야 검게 탄 빵이라도 굽지, 깨끗한 백지상태의 계획표와 말끔한 오븐만으로는 실패도 거저 얻을 수가 없다.

누구나가 그럴 것인데 한 달간의 다이어트 프로젝트라도 성공하는 건 어렵다. 하지만 일단 마음을 먹고 시작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한 달은 변화하기에 짧은 시간은 아니다. 자신이 알든 모르든 몸은 반드시 변한다고 한다. 오늘 내가 한 노력만큼, 내일이 아니면 일주일 뒤라도 결과가 나타나게 마련이라고 한다. 사업투자니 주식투자 같은 건 대박이 날 수도, 망할 수도 있지만, 몸에 투자한 건 투자한 만큼 돌려받는다는 말이다. 욕심을 내지도, 조급해 하지도, 쉽게 실망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래서 정말로 겸손하지 않으면 계속하기가 힘든 게 다이어트인 것 같다. 이때의 다이어트는 운동과 식이를 동시에 진행하는 게 정석이지만, 힘들면 둘 중 하나만 한들 어떤가. 나를 포함해 우리 프로젝트 회원들도 더 자신 있는 분야에 치중했다. 배를 곯는 게 싫고 식욕이 샘솟는 사람은 느슨한 식이조절을 하는 대신 운동을 열심히 하고, 운동이 힘든 사람은 식이요법을 좀 더 철저하게 하는 식이다.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것도 쉬운 건 아니다. 나는 허용식단 내에서 배부르게 먹으면서도 매일 요가를 한 시간씩 하고, 실내자전거를 타고, 코치의 미션까지 해내는 운동파였다. 운동을 제외하고 식이요법은 그리 철저하지 못했고, 가끔 군것질도 하는 일탈을 감행했지만 그래도 조심했던 덕분일까. 그것만으로도 체중계의 숫자는 조금씩 내려갔다. 3주차에 이르자 근육량이 늘고 체지방이 줄면서 체지방률이 10퍼센트대로 내려가는 확연한 성과를 보였다. 

몸짱 캥거루 로저가 양동이를 구기는 모습. 이제는 이 세상 캥거루가 아니지만 그의 의연한 모습에 다이어터는 영감을 받는다. (이미지 출처 = CNN이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그런데 목표달성에 따른 기쁨도 잠시, 바로 무덤덤해지는 건 왜일까. 체중만 줄이면 답답한 인생이 확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이전의 기대가 허황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겠지. 살을 뺐는데도 인생은 그저그랬다. 어쩔땐 더 나빠진 것 같기도 했다. ‘이렇게 쓸데없이 몸매가 좋아져서 뭐할 거야. 티비에 나갈 것도 아닌데. 나이 들어 너무 야윈 것보다 살집이 있는 쪽이 더 편안해 보이지 않나? 에휴, 적당히 즐기면서 살아도 중간은 갈 텐데, 뭐하려고 이렇게 힘들게 살아.’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 보면 그건 악마의 속삭임이었던 것 같은데, 당시 내게는 그런 투덜거림이 필요했다. 그도 그럴것이 오늘의 목표를 애면글면 이루었다고 해서 다음 하루가 더 쉬워지는 법은 없었기 때문이다. 매일의 하루는 언제나 자신을 처음처럼 대해 주길 바라고 있었다. 어떻게든 또 하루를 처음부터 다시 살아내야 했다. 휴, 죽음의 운동 5단계, 5세트를 오늘 또 해야 해? 40분 이상 실내자전거를 또 타야 한다 말이지? 단백질과, 지방, 탄수화물 섭취를 신경쓰면서? 아무거나 막 주워 먹지 않게 조심하고 의식하면서? 그 말인즉슨, 이제는(전과 달리) 하루 동안 내 앞에 놓인 자유가 어마어마하다는 걸, 그래서 하루를 진짜 24시간처럼 살 수 있다는 걸 내가 깨달았다는 것이다. 

하고자만 한다면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는 것은 거의 모든 것인지도 몰랐다. 결과가 아닌 방식의 문제지만.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는 오늘을, 어제와 완전히 다르게 살 수도, 어제와 똑같이 살 수도 있음을 절실히 인정하고 말았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서 그것을 내 스스로에게 증명해 냈던 것이다. ‘아이들 때문에 운동할 시간이 없다’던 핑계는, 아이들을 다 재우고 난 뒤 자정이 넘은 시간, 코치의 운동 미션을 달성해 내는 나를 통해 깨졌고, ‘실내자전거 구입은 돈 낭비였다.’던 오래된 후회는 매일 저녁 그 자전거 위에 올라 바퀴를 굴리는 나로 인해 만족으로 바뀌었으니. 그런데 그런 변화에 내심 놀라면서도 아까 같은 의문을 품은 것이 문제였다. 산뜻한 컨디션 너머, 기어이 절제하는 이의 피로감을 찾아내고야 만 것이 문제였다. 즉, 매일을 허비하듯 보내며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하던 전날들과 비교해 내 의지대로 살기위해 애쓰는 오늘 중 보다 괴로운 것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때부터였다. 프로젝트 이후에 이어질 거나한 실패를 꿈꾼 것이.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만큼 반대방향으로 실패를 위해서도 막 살아 보면 어떨까? 모든 건 내 본능이 이끄는 대로. 아무것도 절제하지 않고, 의식하지 않으며, 내 맘이 이끄는 대로. 더 나태하게 나태하게.... 이것은 실험이야. 그래서 둘 중 더 좋은 걸 선택하기로 하자. 만일 실패가 성공만큼 달콤하다면, 나는 굳이 성공하기 위해 애써 노력하지 않을 테야. 라고 하면서.

하여 나만의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이름하야 ‘작정하고 다이어트 실패해 보기 프로젝트’ 그런데 이게 또 쉽지만은 않았다. 먹던 습관이 있어서, 자꾸 간식으로 삶은 고구마를 먹고, 통닭을 앞에 두고 이거 계속 먹어도 되나? 하는 자기검열을 자동으로 하게 되게 아닌가. 또 습관적으로 먹는 음식을 기록하고 영양가를 분석하면서 식단이 어떻네, 칼로리가 어떻네 자꾸 따지기도 하였고. 그런데 하던 운동을 끊은 그건 나름대로 몸이 편했다. 이제 아이들 재우고 따로 운동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내게 없던 자유가 생긴 듯했다. 어쨌든 이 프로젝트도 처음엔 자신을 타일러야 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미적지근하게 살지 말고 제대로 실패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좀더 과감하게 외식을 즐기며, 단백질보다는 탄수화물 섭취에 치중해 보자는 굳은 다짐으로 살려고 했고 어느새 그런 태도가 자연스러운 일상생활이 될 즈음, 또 변화가 일어났다. 암만 먹어도 늘어나지 않던 체중이 더디게 느는가 싶더니 한순간에 훅 하고 올라가는 게 보였다. 우리 몸은 야박하지 않아서 한 번의 일탈로 바로 살이 찌지는 않고, 정말 많이, 꾸준히, 신경 써서 작정하고 먹어야 살이 찐다는 걸, 나는 다시 한번 증명해 낸 것이다. 

남들이 보면 요요현상이 제대로 왔구나 하겠지만, 그것은 내가 처음부터 의도한 프로젝트의 결과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꼭 한번 해 보고 싶었던 실패였기에 마음을 의연하게 가지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그토록 멋진 실패를 이룬 나는 이제 기쁠까, 슬플까. 놀랍게도 별로 안 기뻤다. 살찐 인생이라고 고통스럽기만 한 것도, 즐겁기만 한 것도 아니라는 점은 먼젓번과 마찬가지였지만 (역시 인생은 그저그렇게 포괄하여 흘러간다.) 달콤한 음식과 나태한 생활에서 오는 즐거움은, 앞서 절제하고 조절하는 생활 중에 느꼈던 즐거움만큼 크지 않다는 점은 새삼스런 발견이었다. 처음 다이어트 성공을 위해 노력할 때는 절제하며 자신을 컨트롤하는 부분이 점점 늘어날수록 오히려 점점 늘어나는 자유를 느꼈다면, 나중 프로젝트에서는 그 반대였다. 주어진 상황을 내 의지대로만 끌고가는 것 같았는데, 어느덧 나의 자유의지는 없어지고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 자체만 있다고 느꼈다. 그러니까 애석하게도 ‘다이어트 대실패 프로젝트’에서는 하루하루를 내 마음대로만 하면 된다고 착각했었고, 실제로는 고삐를 놓치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미치광이 말 등 위에서 방향을 잃고 달린 것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다이어트는 보기 좋게 실패했다. 프로젝트로 치면 대성공이고. 하지만 나는 알았다. 그렇게 인생 전체의 실패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중이라는걸. 그래 그만. 고삐 풀린 말 등 위에서 내려오자. 모로 가더라도 내가 오늘의 주인이 되어 걸어가자. 그래도 거울 속의 나를 보며 웃어 줄 수는 있어야 하잖아.

그렇게 두 번의 프로젝트는 끝이 났다. 두가지 삶의 방식 중 더 좋은 것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성공이나 실패는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인생에서 ‘결정적인 것’은 그렇게 많지 않고 지난 성공과 실패는 한데 뭉쳐 이벤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이벤트는 많을수록 재미있다는 거지만, 이벤트에 목숨 걸 필요는 없으며, 이벤트가 뭐든 간에 오늘을 내 의지대로 노력하며 사는 방식이 가장 재미있다는 점이다. 그런 가운데서. ‘나도 좀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라는 감각을 찾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점. 나는 어제까지는 엉망으로 살았지만, 오늘부터 갑자기 잘 살 수 있다는 걸 안다. 비록 오늘의 나는 못났지만, 그것이 앞으로 불변토록 못날 것이라는 말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내일은 어떻게 살고 싶은가? 나는 나에게 질문을 던져 본다.

p.s : 어느 날 문득 다이어트란 세계에 입문하게 이끌어 준 남편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멋진 실패마저 감수하려는 나의 실험정신과 늘어나 버린 죄없는 뱃살과 별것 아닌 원고를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주신 (이제 전국에 다섯 명쯤 되는) 독자들에게도 감사 드린다. 또한 앞으로는 섣불리 다음을 기약하지 않을 것을 약속 드린다....

 
 

김혜율(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워킹맘이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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