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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울이가 보들이에게[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 7]

지난해 11월 26일 보들이가 죽었다. 보들이로 말할 것 같으면 강아지 때부터 5년 가까이 키운 우리 집 개. 그동안 아픈 적 한 번 없이 묵묵하게 마당 한구석을 지키며 든든한 배경과도 같은 존재가 되어 주었다. 먼 나들이를 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많이 그리웠노라 꼬리를 흔들며 반겨 주던 그 모습, 멧돼지를 쫓으라고 논에 묶어 놓았을 때 우리가 위문차 논에 찾아가면 먼 발치에서부터 짖고 날뛰며 우릴 환영하던 그 모습.... 이제는 아득해져 꿈처럼 느껴지지만 한때는 그것이 현실이었다. 보들이는 늘 그렇게 우리 곁에 있었다.

그랬던 보들이가 갑자기 밥도 물도 먹지 않고 때때로 노란 물 같은 걸 토했다. (몇 달 동안 개밥 끓여줄 때 친정집에서 냉장고 정리하면서 보내 온 오래된 고기나 생선 같은 걸 넣어 주었는데, 그게 탈의 원인이었을까?) 하루도 밥을 걸러본 적이 없는 대식가 보들이가 밥 먹기를 거부하다니! 분명 심상치 않은 징조라고 느꼈지만 자연 단식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할거라 믿고 기다렸다. 주사라도 맞혀야 하나 마음에 갈등이 있었지만 괜찮겠지 설마설마했다.

그런데 하필 그 무렵에 나와 아이들(다랑, 다나)까지 심한 감기몸살이 나 버렸지 뭔가. 그나마 덜 아픈 사람이 더 아픈 사람을 돌보아야 할 정도로 처절한 상황 속에서 보들이까지 챙길 여력이 도저히 없었다. 그렇게 보들이의 존재 자체를 까맣게 잊고 지낸 며칠, 몸 상태가 나아져서 정신을 차릴 무렵, 닭밥 주러 닭장에 갔다 온 신랑이 푹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보들이 죽은 것 같은데?"

그 말에 갖가지 감정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안타까움, 원망, 죄책감, 혼란스러움.... 한편으로 후련함도 있었다. 밥 끓여 먹이고 똥 치우고 하는 일이 고단해서 개 두 마리를 키우는 건 역부족이 아닌가 느껴 왔던지라 내심 한 마리라도 없어졌으면 해 왔으니까. 하지만 그게 보들이이길 원했던 건 아니었다. 보들이와는 알게 모르게 정이 깊게 들어 있어서 보들이 말고 복실이(재작년에 보들이가 낳은 아홉 마리 새끼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새끼. 다른 두 마리는 이웃 집에 분양했고 나머지 여섯 마리는 새끼 때 하늘나라로 떠났다)를 어디로 보내든가 개장수에게 팔든가 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복실이는 남았고 보들이가 떠났다. 이제 와서 보들이를 살려 낼 길은 없었다. 보들이가 살아 있던 몇 시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보들이 체온을 느끼며 마지막 인사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그 사실을 떠올리자마자 가슴 한구석에 커다란 구멍 하나가 뻥 뚫리는 느낌.... 그 느낌을 마주하며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헛헛함이로군' 하고 읊조리고 싶어지던 그 순간에 다울이가 울부짖기 시작했다.

"보들이, 보들이.... 꿈에 보들이가 나와서 내가 배를 만져 줬더니 세 번 짖었어. 그 꿈 꾸고 삼일 만에 보들이가 죽은 거야. 보들이, 보들이...."

울면서 쏟아 내는 다울이의 얘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들어 보니 다울이는 내가 아파서 정신 줄을 놓고 있던 지난 3일 동안 틈만 나면 보들이 곁을 지켰던 모양이었다. 보들이를 혼자 두는 게 불안해서 곁에 가서 만져 주고 이야기도 하고 노래도 불러 주었단다. 보들이가 점점 힘을 잃어 가는 게 느껴져서 병원에 데려가고 싶었는데 엄마 아빠가 자기 말을 들어 주지 않았다고 원망도 했다.

"다울아, 엄마 아빠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다시 옛날로 돌아간다면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이젠 그럴 수도 없잖아. 지나간 일에 대해 후회하거나 원망하지는 말자. 보들이는 그래도 다울이가 곁에 있어 주어 외롭지 않았을 거야. 그리고 이젠 하늘나라에 가서 행복하게 살 거야."

"그래, 형아, 그래도 복실이가 있잖아. 복실이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맞아, 울지 마, 오빠야."

다랑이 다나까지 다 달라붙어 주저앉아 흐느끼는 다울이를 일으켜 세우고 그날 오후엔 다같이 밭에 갔다. 다울 아빠가 보들이를 순돌이밭에 있는 매실나무 아래 묻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간단한 장례식을 치러 주었다. 보들이 모양으로 돌멩이 그림을 그리고, 수숫대로 무덤 앞을 장식하고, 보들이가 잘 떠나길 바라며 기도하고 동지 노래를 불러 주고.... 모든 예식을 마친 뒤, 나는 지나가는 바람처럼 말을 흘렸다.

"보들이한테 들려 줄 특별한 노래가 있으면 좋을 텐데..."

보들이에게. ⓒ박다울

그 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다울이 마음이 노래를 통해 보들이는 물론 자신까지 위로하고 싶었을까? 다음 날 오후 다랑이 다나 낮잠 자고 있을 무렵, 다울이가 살며시 들어와서 허밍으로 곡조를 하나 들려 주었다.

"엄마, 이거 보들이 노래 할까?"

"좋지. 근데 노랫말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엄마가 붙여 줘. 아니 사실은 노랫말을 생각한 게 있는데 노래를 부르면 눈물이 나서 여기에 적어 줄게."

다울이는 종이에 노랫말을 썼다.

 

나는 보들이 널 아주 좋아해

보들이 너가 가니까 나는 너무 슬퍼

보들이 너가 없어서 나는 자꾸 슬퍼

 

하지만 노랫말 따로 곡조 따로인 채로는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어서 다울이에게 부탁을 했다.

"다울아 미안하지만 노랫말과 곡조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모르겠어. 딱 한 번만 불러 줄래?"

그렇게 해서 다울이 노랫소리가 방구석에 울려 퍼졌는데, 그 노래를 듣다가 결국 나까지 눈물을 펑펑 쏟아 내고야 말았다. 다울이도 울고 나고 울고.... 그러다가 서로 눈물을 닦아 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노래를 부르니까 보들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더 잘 알 것 같아. 다울이 너한테나 우리 가족 모두한테 말이야."

"난 말이야, 보들이 물 주고 똥 치우라는 아빠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차라리 보들이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 그게 너무 미안해."

"그래, 너만 그런 게 아니라 엄마도 그럴 때 많았어. 보들이 산책도 한 번 안 시켜 주고 계속 묶어 놓기만 했던 게 젤로 마음에 걸리네. 우리, 이제부터라도 잘하자. 보들이 몫까지 더해서 복실이한테 잘하자."

"응! 복실이 날마다 산책시켜 줄래! 보들이는 없지만 복실이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그랬다. 아직 우리 곁에 복실이가 남아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보들이를 떠나 보내면서 된통 아프게 정신을 차린 덕분에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기회를 얻은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가. 보들이는 갔지만 그 너울거리는 슬픔은 노래가 되어 우리들 곁에 남았다. 있을 때 소중함을 알고 정성을 다하라는 메시지와 함께....

나는 오늘도 보들이 노래를 부르며 나 스스로에게 말한다.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잊지 말고 기억하자고, 지금 여기 함께 있음은 다시 못 올 놀라운 선물이라는 것을!

 

 

덧. 시간이 꽤 흘렀고 보들이 49재도 지났건만 다울이는 아직도 보들이 노래를 부르지 못한다. (그래서 노래 녹음할 때도 휘파람으로만 참여했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보들이 꿈을 꾸며 발작 비슷한 것을 일으키고, 멀쩡하게 웃고 까불다가도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보들이를 부르며 목 놓아 울 때도 있다. 이게 참 쉽지가 않구나. 정든 친구를 떠나 보낸다는 것이 말이다. 

 

보들이에게. ⓒ박다울

 

정청라

인생의 쓴맛 단맛 모르던 20대에 누가 꿈이 뭐냐고 물으면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막상 엄마가 되고 1년도 채 안 되어 좋은 엄마는커녕 그냥 엄마 되기도 몹시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좋은 엄마'라는 허상을 내려놓았다. 그 뒤로 쭈욱 내려놓고, 내려놓고, 내려놓기의 연속.... 이제는 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살아 있음을 만끽하며 아무런 꿈도 없이 그냥 산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스스로 길이 된다는 것'임을 떠올리며 노래로 길을 내면서 말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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