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주년 저널리즘 세미나 4 - 정현진 발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한국 교회를 있는 그대로 쓴다'는 저널리즘의 원칙으로 교회쇄신을 지향해 왔습니다. 창립 10주년을 맞아 내일 더욱 충실한 언론이 되기 위해 저널리즘 공개 세미나를 열고 있습니다.

네 번째 세미나는 1월 23일(수)에 정현진 취재팀장의 발표와 참석자들의 토론이 있었습니다. 가톨릭언론이 가야 할 길을 함께 고민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발제문을 아래와 같이 더 많은 독자와 나누고자 합니다. -편집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의 10년, 앞으로의 10년

정현진 취재팀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가 교회 내 하나의 언론으로 시작한 지 10년을 맞게 됩니다. 창간 1년 뒤부터 합류해 9년차에 접어든 기자로서, 물론 9년차라는 것이 일반 언론에서 보면 그렇게 대단한 연차는 아닙니다만, 초창기부터 <지금여기>의 내부 상황을 함께 겪고, 나름의 고민을 거듭해 온 사람으로서 이 자리에서 감히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습니다.

앞선 3번의 발제와 토론을 통해 여러 거시적 관점에서 <지금여기>의 10년과 나아갈 바를 성찰해 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발제 시간인 오늘, 그리고 일선 기자로서, 보다 구체적인 고민을 공유하고 지난 10년보다 중요한 앞으로의 10년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함께 제안하는 시간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아직 부족하고 더 많이 고민해야 함에도 이 시점에서 그동안 교회 언론 기자로서 겪고 고민한 바에 대해 솔직하게 나누고자 합니다. 옳다는 주장이 아니라, 고민과 의문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이 자리를 통해 보다 생산적인 논의로 발전되기를 바랍니다.

제4회 가톨릭 저널리즘 세미나. ⓒ서경렬

1. 지난 10년, <지금여기>가 걸어온 길

2009년 다음카페 시절을 거쳐, 사이트 개설로 정식 출범한 <지금여기>는 한상봉 전 편집국장과 고동주 전 기자 2명이 1년을 지켰고 그 다음, 기자 1명이 입사해 기사 2명이 취재기자로 활동했습니다. 이 시기는 사실상 언론 경력이나 제대로 된 교육시스템 없이 막연한 의지와 사명감으로 고군분투하던 시기였습니다.

이후 <지금여기>의 콘텐츠와 기사 형태, 기사 분야가 폭발적으로 확대되고 향상된 것은 2012년 3명의 기자가 들어오면서부터입니다. 수적으로는 고동주 기자가 퇴사한 뒤 취재기자 3명과 편집기자 1명으로 기자 수가 2배로 늘고 편집 시스템이 안정된 것도 있고, 무엇보다 입사한 기자들의 역량이 압도적으로 뛰어났기 때문에 이전 3년 동안 쌓인 인지도와 풍부한 콘텐츠가 만나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습니다. 이 시기, <지금여기>의 대외적 인지도와 신뢰도가 높아진 기간이라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2년 뒤, 취재기자 2명이 퇴사한 뒤, 편집국장으로 박준영 국장이 오면서 <지금여기>는 서서히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보도 형태가 바뀐 것인데, 이를 테면, 인터뷰나 르포 등 피쳐뉴스나 심층보도보다는 스트레이트 뉴스보도의 기능 강화입니다. 이런 보도 양태의 변화를 두고 “뉴스 기조가 퇴보했다”거나, “중도적 입장을 취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고, 그 상황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2. 10년간, <지금여기>는 무엇을 했나

10년이라는 시간은 사실상 한 언론이 온전히 자리를 잡기에는 짧은 시간입니다. 다만 10년의 의미가 있다면 지금까지 시도하고, 실패하고, 또는 성과로 평가했던 것들을 딛고 새로운 10년을 준비할 발판을 마련한 것입니다. 앞으로 새로운 10년 동안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특별한 다른 무엇이 아니라 다만 언론의 본령일 것입니다.

<지금여기>의 10년은 시도와 그만큼의 시행착오를 통해 가서는 안 되는 길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후반기인 지난 5년은 그 가운데서 비로소 ‘언론’으로서 꼴과 골격을 갖추고, 단단히 하려 애쓴 시간입니다.

한편으로 <지금여기>의 논조가 퇴보하고 연성화됐다는 평가를 듣지만, 사실 <지금여기>는 “교회에 약이 되고 세상에 밥이 되고자”하는 초기의 논조나 목표를 한 번도 버린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얼마나 성숙하고, 언론답게, 공론의 장으로 건강하게 이끌어 낼 것인가를, (그 성과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고민해 왔습니다.

<지금여기>는 세상의 정의와 교회 쇄신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지난 세미나에서 의견을 밝히기도 했습니다만, 이 가운데 교회 쇄신이라는 멀고 긴 여정은 <지금여기>를 비롯한 언론이 교회의 부족함을 고발하고, 그래서 그것이 즉각적으로 쇄신되는 장면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그 목적을 의식하며 기사를 쓰는 동안, 교회 쇄신은 끊임없는 과정이지 완성형으로 지금 당장 눈앞에 결과물로 떨어질 수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또한 끊임없이 상호 간의 태도 변화와 문화의 형성으로 점점 발전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 쇄신을 위해서, 가톨릭 언론이 그 고유한 언론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의견교환과 소통의 창구, 방법을 폭넓고 다양하게 마련하고, 소통의 문화, 공론의 문화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여기>는 어느 정도 그런 역할을 하기 시작했고, 아주 적은 수지만 직간접적 소통의 창구를 마련했으며, 교회가 어떤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지금여기>는 교회 언론에 대한 오래되고 고정된 관념에 균열을 가져왔고, 그럼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을 사람들에게 맛보게 했습니다. 실제로 <지금여기>에서 낯설고 불편함을 느끼던 이들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언론도 가능하다는 것,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는 것”을 체험하고 “그래도 괜찮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중도적이고 때론 보수적인 이들에게도 <지금여기>가 어렵게 얻기 시작한 신뢰성을 바탕으로 “(논조를 떠나) 이들의 뉴스는 믿을 만하고, 들을 만한 이야기가 있다”고 인식되는 것은 뉴스의 연성화, 보수화가 아니라 소통의 시작점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아직 미미하지만 분명한 변화의 시작입니다. 언론 본연의 소명이나 교회 쇄신의 차원에서도 소통 태도 변화와 창구 마련이 <지금여기>가 우선으로 삼아야 할 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지금여기>가 눈치를 봐야 한다면, 그 대상은 쉽게 짐작하는 것처럼 제도교회가 아닙니다. 비공식적으로 <지금여기>를 언론 취급하지 않고, 비난하는 성직자들이 있지만, 주교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지금여기>에 대한 취재에는 절대 응하지 말라는 공문을 발표하지 않는 이상, 제도교회는 <지금여기>에 압력을 가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지금여기>가 눈치를 봐야 할 대상은 물심양면으로 유지 기반이 되는 이들입니다. 부끄럽고 슬픈 현실입니다만, <지금여기>를 응원하고 후원금을 주는 이들이 없다면 <지금여기>는 현실적으로 유지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기사를 쓰고, 다른 언론들 사이에서 가치 있는 기사를 써야 한다는 <지금여기> 안팎의 시선과 끊임없는 노력 그 자체가 누구의 눈치를 보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입니다.

제4회 가톨릭 저널리즘 세미나에 참석한 독자들. ⓒ서경렬

3.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대안언론’인가

시작부터 <지금여기>에 대한 인식 가운데 하나는 ‘대안언론’이었습니다. 초반에는 <지금여기>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 소개한다는 단골 멘트는 “가톨릭계의 오마이뉴스”였습니다. 저도 그렇게 몇 번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대안’이란 기존 교계언론이 하지 못하는 보도, 담지 못하는 목소리를 싣고자 한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여기>를 둘러싼 환경, 생태계 속에서, 그리고 언론의 역할을 생각하면서, 과연 대안언론이란 무엇이며, <지금여기>가 대언언론이어야 하는가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지금여기>는 대안언론인가? 그렇다면 무엇에 대한 대안인가.

개인적으로 ‘대안언론’이라는 말은 사실상 성립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기존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에 대응해 만든 언론사라고 해도 그저 ‘언론’의 소명을 제대로 하는 것이지 무엇에 대응해 ‘반대’되는 면을 강조한다고 기존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앞선 발제자들이 운동으로서 언론이 아니라 언론 본연의 역할로 운동의 지향을 이뤄야 한다고 이야기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다른 하나는 경험상, 언론이 그 방향이나 논조가 어떠하든 “무엇을 위한 대안”이 되었을 때, 어떤 지향점, 목적성을 띤 집단 등으로 대표되는 바로 그 “무엇”이 언론으로서 역할에 또 다른 한계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여기>뿐 아니라 이른바 ‘대안언론’으로 불린 여러 언론사들이 겪는 부침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해당 언론이 생겨날 때의 지지기반은 밀접한 관계세력이 되고, 동시에 경제적 후원 기반이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는 언론사가 어느 자본이나 기관으로부터는 형식적 독립을 했더라도 자칫 내용적으로는 온전한 독립이 어렵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뉴스 수용자의 태도가 연관됩니다.

물론 가장 기본이 되고 중요한 것은 언론사가 쓰는 기사가 제대로 된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생산하는 뉴스의 가치가 온전히 발현되는 것은 그것이 수용자들에게 닿아 반응할 때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이뤄지는 어떤 실천적이고 현실적인 변화까지 포함합니다.

<지금여기>의 기사가 송고된 뒤, 단순 통계치지만 주제와 기사 내용별 클릭수를 보면, 대체로 <지금여기>를 읽는 이들의 성향이 어떠하고, 어디에 가장 관심을 두는지 보입니다.

그 추이를 살펴본 결과, <지금여기>가 생산한 기사 가운데 가장 호응도가 높은 것은 ‘교회 안팎의 갈등’, 비판, 제도교회와 관련된 (부정적) 사건입니다. 그리고 가장 관심도가 낮은 것은, 당장 세간의 떠들썩한 이슈가 아니지만 관심을 가져야 할 일상적 이슈들, 그리고 대안을 이야기하는 기사들입니다. 문제와 갈등, 사건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지만 그 대안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여기>는 전자에 대한 기사를 여러 형태로 더 많이 요청받습니다.

만약 <지금여기>가 하는 것이 ‘언론 운동’이라면, 그리고 ‘대안언론’이라면, 뉴스를 읽는 이들 역시 그 운동의 주체이자 대상이어야 합니다.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취재의 대상이 되는 교회도 함께 변화와 대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문제를 드러내는 것은 해결을 위한 기본이고, 제대로 문제점을 짚어야 해결도 제대로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비판의 방향이 언제나 한 곳만 향해야 한다면, 비판 이후의 과정이 없다면, 더불어 성찰하지 않는다면, 대안언론운동으로서 <지금여기>는 왜 존재해야 하는 걸까요.

“<지금여기>의 뉴스가 재미없다”는 평가, 겸허하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받아들입니다.

그 재미란 아주 다양한 측면의 주제, 기사 형태 등을 담고 있는 말일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여기>는 더 애쓰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만약 그 재미가 다른 요청의 측면이라면, 즉 <지금여기> 독자들이 가장 관심 있는 그 지점에 대한 요청이라면. 언론사로서 충실하게 응해야 하는지, “재미”와 “재미”, 또는 재미와 역할 사이에서 언론사가 취해야 할 태도는 무엇일까요.

 

3-1. 취재원으로서 교회 ; 침묵은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최소한 양측의 입장을 듣고 상황을 정리하고, 무엇이 어떻게 진행된 일인가를 서술해야 하는 언론의 입장에서 가톨릭교회는 참으로 어렵고도 난감한 취재원입니다.

교회는 사람들의 모임이며, 교회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람들은 복음이 가르치는 옳은 길을 선택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지, 항상 옳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누구나 잘못이나 실수를 할 수 있고 교회 구성원 역시, 그것이 어떤 직책이나 지위를 가진 사람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어떤 사건이 벌어지고 문제가 드러났을 때, 교회가 그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너무나 수세적이고 방어적이라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들 사이의 갈등에서조차 방어적 태도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더 깊은 갈등을 발생시킵니다. 위기관리의 가장 기본은 “정직한 인정과 사과” 그리고 그에 따른 후속 조치입니다. 온 세상에 문제가 드러나고 교회 밖에도 파장을 미치고 있는 경우에도 교회는 “교회의 방식”이라며 내부적으로 조용한 처리를 원합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가 활동을 시작하면서 교회의 일부 사람들에게 불편한 존재가 되고, 지금까지 그 이미지를 씻지 못하는 것은, 언론관의 왜곡도 있지만 그 교회다움에 대한 도전이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조건 교회를 권력을 쥔 가해 입장, 상대방을 피해 입장에 두려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억울하지 않고, 불필요한 비난을 받지 않으려면, 솔직히 사태에 대해 말하고 입장을 밝히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물어봐 주고, 앞으로도 묻고자 하는 곳이 언론입니다. 교회가 이 답에 응하지 않을수록, 정확한 기사는 나오기 어렵고, 그저 주장과 비난의 목소리만 높아진다면, 그것이 과연 하느님 백성 사이에 일어날 온당한 일일까요?

외부의 비판과 교회 사업장에서 겪은 갈등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교회에 필요하고, 그것은 교회 안팎의 협력을 통해 가능합니다.

제4회 가톨릭 저널리즘 세미나에 참석한 독자들. ⓒ서경렬

4. 가톨릭 언론의 성역,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의 성역은 어디인가?

많은 언론이 ‘성역 없는 취재와 보도’를 추구합니다. <지금여기> 역시 그렇습니다. 그 어떤 영역도 성역이 아니며, 또 그렇게 생각하지만 현실은 조금 다릅니다. 처음 <지금여기>가 시작될 때, 그리고 지금까지 주변의 걱정은 ‘제도교회’로부터의 압박입니다. 하지만 취재가 불편하고 불쾌한 일이 있을지언정, 제도교회로부터의 직접적 압박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여기>에는 성역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지금여기>에 ‘성역’에 가까운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평신도운동 영역이었습니다. 여기에서 하고 싶은 하나의 질문은 “교회 안에 대다수로 존재하는 평신도, 평신도운동 영역은 쇄신의 대상이 아닌가?”입니다. 비판을 위한 물음이기보다, 그동안 <지금여기>가 묻지 않았던, 그리고 함께 성찰하지 못했던 물음입니다. 저는 이 물음이 우리 안에서 더욱 활성화될 때, 교회 전반의 쇄신이 보다 앞당겨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여기>가 앞으로 조금 더 애써야 할 부분이라고 봅니다.

 

5. <지금여기>가 앞으로 10년 동안 만들어야 할 교회쇄신을 위한 환경은 무엇인가?

이제 제안하고자 하는 것은 <지금여기> 내부 전체의 의견이 아닌 발제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언론의 상을 <지금여기>의 현실에서 어떻게 제대로 구현할 것인가, 그리고 <지금여기>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두 가지 차원입니다.

- 현재 <지금여기>는 뉴스 보도에 좀 더 힘을 기울이고 있지만, 그동안 인적 구성원이 바뀌고 경력 3년 이상의 기자가 1명밖에 없는 상황에서 뉴스보도와 다른 심층, 기획을 함께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 뉴스 보도에만 치중하는 것은 콘텐츠의 질을 저하시키고 속도 면에서도 밀리게 됩니다. 현실적으로 현재 3명인 기자의 수가 늘어날 가능성은 없고, 앞으로 1-2명이 늘어난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여기>가 앞으로 아주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뉴스 보도는 하되, 매일 기사가 올라가지 않더라도, 매년 중심 사안을 잡아 해설과 심층, 분석 기사에 집중하자는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이는 <지금여기>가 새로운 독자적 형태를 취하고 돌파구를 모색하는 차원이며, 궁극적으로 세상의 밥, 교회의 약으로서 소통의 창구가 되고 건강한 공론장을 형성하며, 이슈에 끌려 다니는 것이 아니라 이슈를 만들어 내고 제시하는 역할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보다 적극적이고 깊이와 폭이 있는 대안 제시입니다.

저는 기자가 되면서 인터뷰를 잘하는 기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이유는 이미 다양한 대안을 살고 있는, 또는 대안을 제시하는 이들의 삶과 이야기를 많이 보여 주고 싶었고, 그 방식을 인터뷰라는 그릇에 잘 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지속적으로 해내지 못했습니다.

물론, 구조적 문제를 파악하고 이를 제대로 짚는 기사도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머릿속 생각이나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실현되고 있는 곳곳의 ‘하느님나라’, 살아 있는 복음의 현장을 보다 다양하고, 생생하게 전달하고, 이를 통해 크고 작은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는 비단 후원 차원만이 아니라 <지금여기>를 보다 대중적으로 알리기 위한 노력입니다. <지금여기>가 건강한 공론장이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다양한 목소리와 피드백이 필요합니다.

우선, <지금여기>의 독자나 후원자는 얼마나 <지금여기> 뉴스를 우선적으로 선택하고 적극적으로 소비하고 있을까요? 이는 내부 관계자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이 문제는 지난 10년 <지금여기> 내부에서 다른 문제와 함께 통렬히 반성해야 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2년 전, <지금여기>는 본당 홍보를 기획하고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지도가 어느 정도 있고, 인력이 있을 때에 가능한 방법이라는 것을 현장에서 깨달았습니다. 이 자리에서 구체적 기획안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지금여기>는 현재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에게만 의존해서는 안 되는 시기입니다. 한정된 범주에서 주먹구구식으로 하는 홍보를 제대로 평가하고, 지금 우리가 할 수 있고, 필요한 홍보 방법을 모색하고 실행해야 할 절박한 때입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10주년 맞이 저널리즘 공개 세미나의 다음 일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많은 분의 관심과 참여를 기다립니다.

5회 2019년 3월 23일(토) 2시 대중강연과 10주년 기념미사

- 강연자 : 김지영 (전 <경향신문> 편집인, 전 가톨릭언론인협의회장)
- 주제: 저널리즘과 가톨릭 언론의 미래(가제)
- 장소 : 골롬반외방선교회 선교센터 2층 강당
- 오시는 길 :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 4번 출구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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