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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c et Nunc - 지금 여기[유상우 신부] 1월 27일(연중 제3주일) 느헤 8,2-4ㄱ.5-6.8-10; 1코린 12,12-30; 루카 1,1-4; 4,14-21

신학교를 입학하는 2주가 지나고 신학교 기숙사 안에 있는 서점에 갔습니다. 과연 선배 신학생들은 무슨 책을 볼까 하는 궁금증이 예비신학생 때부터 늘 있었던 탓입니다. 더불어 성서입문, 서양철학사, 라틴어 교재와 같은 수업에 필요한 책 말고 내가 보고 싶은 책을 찾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학생’으로서의, ‘신학생’으로서의 책장을 채우고 싶은 마음 역시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서점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선배 신학생들의 수업교재를 보면서 나는 언제나 저런 과목을 배우려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히브리어 그리스어로 된 성경을 보면서 ‘아찔한’(?) 느낌도 받았습니다. 그 많은 책 중에 아무 내용도 모르고 제목만 보고 산 책이 몇 권 있었습니다. (뒤늦게 알았습니다. 그것이 모두 교회의 공식문헌이었다는 사실을.) 신학생이라면 이런 책쯤은 있어야지 하면서 당시 동기들과 거금을 주고 샀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가 1300페이지에 달하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 두 번째가 1752조에 달하는 "교회법전" 그리고 마지막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이었습니다. 

공의회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당시의 저는 자습실로 돌아와 공의회 문헌부터 먼저 폈습니다. 목차에 담겨 있는 수많은 헌장과 다른 문헌들의 제목 중 저의 시선을 멈추게 한 제목이 있었습니다. 바로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 –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이었습니다. 신학적 지식이 하나도 없는 당시의 저는 사목 헌장이라는 제목만 보고 ‘앞으로 사목자로 살아갈 준비를 할 텐데 무슨 내용이 있는지 한번 볼까?’ 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습니다. 그리고 사목 헌장의 1항은 당시 저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 현대인들 특히 가난하고 고통받는 모든 사람의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제자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고뇌이다. 참으로 인간적인 것은 무엇이든 신자들의 심금을 울리지 않는 것이 없다. 그리스도 제자들의 공동체가 인간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대침묵 시간만 아니면 크게 탄식을 질렀을 것만 같았습니다. 딱딱한 줄만 알았던 교회문헌이 이렇게나 인간적이고 현실적이라니, 새내기 신학생 시절 이 구절을 외우려고 눈을 감고 중얼중얼거렸던 기억이 오늘 복음을 보니 문득 떠올랐습니다.

2014년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참사 희생자를 위한 미사를 봉헌하던 신학생들. ⓒ배선영 기자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눈먼 이들에게 다시 볼 수 있음을, 억압받는 이들에게 해방을." 희년을 선포하시면서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이사야서 61장의 내용 역시 너무나 인간적이고 현실적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자렛 회당에서 말씀하시는 장면을 공관복음 모두 보도하지만 구체적으로 이사야서 61장의 내용이 등장하는 것은 루카 복음이 유일합니다. 여기에서도 루카 복음만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면을 다시 한번 엿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사야서를 선택하셨는지 그 안식일에 이사야서를 봉독할 차례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보셨다." 구절에서 ‘보셨다’라는 동사의 그리스어를 살펴보면 ‘발견’의 의미가 더욱 강합니다. 라틴어 불가타 성경에서도 ‘발견하다’라는 뜻의 invenio 동사를 쓰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유혹을 물리치시고 돌아오신 예수님의 사명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구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주님의 은혜로운 해 즉 희년은 구체적 현실에서 실현됩니다. 구약의 전통에 따르면 희년은 7년에 한 번 돌아오는 안식년을 일곱 번 지내고 다음 해, 곧 50년이 되는 해에 선포됩니다. 이때는 모든 빚은 탕감받고 땅을 뺏긴 이는 땅을 되돌려 받으며 노예는 그 신분에서 해방됩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바로 희년입니다. 그렇게 희년은 당시 사람들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복음 장면 안에서 주님께서 선포하신 바와 같이 부족한 것이 채워지는 것 그것이 바로 새로운 창조가 시작되는 희년의 의미입니다. 즉 눈먼 이들에게 부족한 빛, 갇힌 이들에게 필요한 자유, 억압받는 이들에게 해방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 선포하시는 해방의 기쁜 소식은 사목헌장 1항이 말하는 것과 같이 우리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몸을 움직이게끔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특별한 때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21)는 말씀처럼 ‘지금 여기’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더불어 이러한 마음을 잡는 것이 특별한 것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늘 하시던 대로"(루카 4,16)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주님의 말씀을 접했습니다. 우리 역시 특별한 때와 장소를 찾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내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주님과 같이 ‘늘 하던 대로’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접하고 전할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복음 묵상이라고 하면서 처음에 제 이야기가 너무 길었습니다. 하지만 이 작은 체험은 제가 신학생으로서 첫 발을 내딛는 때에 삶의 방향을 잡아 준 소중한 기억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여러분 모두 신앙의 방향을 잡았던 예전의 작은 경험들을 한번 떠올려 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그 기억이 다시 한번 주님께로 향하려는 나의 마음을 가다듬어 줄 것입니다.

유상우 신부(광헌아우구스티노)

천주교 부산교구 사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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