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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종 최신 강론말씀(1월 18-21일)[프란치스코 교종 최신 강론말씀]

(편집 : 장기풍)

“너희는 정의, 오직 정의만을 따라야 한다”

교종, 그리스도인 일치주간 시작기도에서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1월 18일 로마시내 성 바오로 대성당에서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주간’ 시작을 알리는 저녁기도 예식을 거행하면서 올해의 주제 “너희는 정의, 오직 정의만을 따라야 한다.”(신명 16,20)를 되새기는 한편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선물은 다른 이들과 나눠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주제는 인도네시아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선정했다. 교종은 강론을 통해 신명기 말씀을 묵상하면서 신명기 16장에 히브리 사회의 세 가지 중요한 축제기간이 묘사돼 있다고 설명했다. 교종은 각각의 축제기간을 통해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주신 좋은 것들에 감사를 올려야 하며 축제기간을 지키는 데 누구도 예외는 없다고 말했다. 또한 교종은 이 축제의 기념과 공정한 판관 임명을 연관지어 성경은 축제기간에 대한 설명을 통해 모든 이가 본질적으로 평등하며 모두 똑같이 하느님 자비에 의존한다는 점을 역설하면서 축제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정의를 권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인도네시아 그리스도인들도 여기에 영감을 받아 주제를 선정했다. 교종은 인도네시아에서 경제적 성장으로 인해 다원주의 사회의 화합을 위협하는 불평등이 야기되는 상황을 인도네시아 그리스도인들이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교종은 이러한 현상은 인도네시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우리는 모세 율법의 지혜를 잊고 말았습니다. 부를 나누지 않으면 사회는 분열됩니다.”라고 강조했다.

교종은 “강한 이들은 약한 이들을 도와야 합니다”는 성 바오로 사도 말을 인용하고 이러한 생각이 그리스도 공동체에도 적용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교종은 공유와 연대가 그리스도인 가정을 이끄는 규범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교종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발생하는 분열의 문제에 주목하면서 우리 역시 약한 이들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망각하는 과오를 범한다면서 “우리 모두가 근본적으로 평등하다는 사실을 잊기란 쉬운 일입니다. 우리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선물을 보지 못하고 우리가 받은 선물이 우리들만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교종은 하느님 왕국에 걸맞은 예배, 정의가 요구하는 예배는 모든 이들이 함께하는 축제이며, 하느님에게서 받은 선물을 모두 함께 나누는 축제라고 강조했다. 또한 교종은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주어진 선물도 무엇인지 알아야 하며 이와 같은 선물교환을 통해 새로워지고 풍요로워진 그리스도인들은 굳세고 자신 있게 일치를 향한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종은 지난 1월 16일 수요일 일반접견 교리교육 후에 교회가 1월 18일부터 25일까지 그리스도인 일치기도 주간을 지낸다고 언급하면서 모든 이들이 이 시기를 열심히 살아가도록 초대하면서 “이번 금요일 저녁기도 예식을 시작으로 ‘진정으로 정의로운 이들이 되도록 노력합시다’라는 주제로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주간이 시작됩니다. 올해는 특히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하나가 되길’ 원하는 거룩한 의지를 통해 서로 일치되고 한 가족으로 돌아오기를 기도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교회일치운동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아닙니다. 그 지향은 구체적이고 적절하며 효과적인 답변을 통해 참된 정의에 대한 확신과 가장 약한 이들을 지지하면서 공통되고 일치된 증언이 성숙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강조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교종, 1월 20일 연중 제2주일 삼종기도 가르침

 

프란치스코 교종은 1월 20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연중 제2주일 삼종기도 가르침을 통해 마리아가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처럼 모든 교회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천에 옮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르침 내용.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주일 우리는 ‘주님 세례 축일’과 함께 연중 전례시기의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연중시기 동안 우리는 예수님의 공생활을 따르고 성부께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파견하셨던 사명을 따릅니다. 오늘 복음(요한 2,1-11)에서는 예수님 기적에 대한 첫 번째 이야기를 듣습니다. 예수님의 여러 경이로운 기적들의 첫 번째 표징은 갈릴래아 카나 마을 혼인잔치에서 이뤄졌습니다. 예수님 공생활 시작에 혼인잔치가 위치하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분을 통해 하느님께서 인류와 혼인하셨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 식탁에 하느님 아드님이 앉아 계시고 그분이야말로 참된 신랑이심을 초대한 이들이 알지는 못했더라도 이는 기쁜소식입니다. 사실 카나 기적의 모든 신비는 당신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하신 신적인 신랑 즉 예수님 현존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예언자들에 의해 선포되신 하느님 백성의 신랑으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고 우리를 그분과 하나가 되게 해 주는 심오한 관계를 계시해 주십니다. 곧 새로운 사랑의 계약입니다. 

계약의 맥락에서 기적의 중심에 있는 포도주의 상징적 의미가 충분히 이해됩니다. 혼인잔치가 절정에 다다랐을 때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성모님은 이를 알아차리시고 예수님에게 말했습니다. “포도주가 없구나.”(요한 2,3) 술이 떨어진 상태에서 잔치를 계속하는 것은 좋은 모양새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에게 그것은 형편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성모님은 어머니시기 때문에 이를 알아차리시는 즉시 예수님께로 가셨습니다. 성경, 특히 예언서는 포도주가 메시아적 혼인잔치의 전형적 요소라고 말합니다.(아모 9,13-14; 요엘 2,24; 이사 25,6 참조) 물은 생존을 위해 필요하지만 포도주는 혼인잔치의 풍요로움과 기쁨을 표현합니다. 포도주 없는 축제가 상상이 되십니까? 예수님께서는 당시 관습이던 “유다인들의 정결례에”(요한 2,6) 사용되는 물독의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시며 효과적인 표징을 완성하십니다. 모세율법을 기쁨의 전달자인 복음으로 변화시키신 것입니다.

마리아를 바라봅시다. 마리아께서 일꾼들에게 하신 말씀은 카나 혼인잔치의 화폭을 완성시킵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 오늘도 성모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십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이 말씀은 성모님께서 주신 귀중한 유산입니다. 일꾼들은 순종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일꾼들에게 ‘물독에 물을 채워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물독마다 가득 채우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이제는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 하셨다. 그들은 곧 그것을 날라 갔다.”(요한 2,7-8) 이 혼인잔치에서 새로운 계약이 참으로 체결됐으며 주님의 일꾼들에게 다시 말해 모든 교회에 새로운 사명이 맡겨졌습니다. 곧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주님을 섬긴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듣고 실천에 옮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 어머니의 본질적이고 소박한 권고이고 그리스도인 삶의 계획입니다. 저는 많은 이들이 삶에서 겪었던 체험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풀어야 할지 알지 못하는 문제들이 닥쳐올 때, 근심과 불안을 느낄 때, 기쁨이 부족할 때, 성모님께 가서 말씀드려야 합니다. “저희는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제가 어떤지 보십시오. 제 마음을 보시고 제 영혼을 보십시오.” 그렇게 어머니께 말씀드리십시오. 그러면 그분께서는 예수님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릴 것입니다. “이 사람을 보세요. 저 여자를 보세요. 포도주가 없군요” 그러신 다음 우리에게 돌아와 이렇게 말씀하실 겁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우리 각자에게 물독에서 물을 긷는 것이란 우리 삶 안에서 하느님 은총을 체험하기 위해 말씀과 성사에 자신을 맡기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 또한 포도주가 된 물을 맛보았던 과방장처럼 이렇게 소리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셨군요.”(요한 2,10) 예수님께서는 항상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십니다. 성자께 말씀드리도록 어머니께 말씀드립시다. 그러면 그분께서 우리를 놀라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분의 살아 계신 현존의 표징을 매일의 삶에서 깨달으며, 예수님께 우리 자신을 완전히 개방할 수 있게끔 거룩하신 동정녀께서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는 초대를 따르도록 우리를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참 행복은 그리스도인 삶의 참된 스타일”

교종, 1월 21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

 

프란치스코 교종은 1월 21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을 통해 “좋은 그리스도인으로 행동하지 못하면서도 좋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믿을 수는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참된 스타일은 참 행복에서 제시된 삶의 스타일입니다.”라고 강조하면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마르코 복음의 상징적 표현을 설명했다. 강론 내용.

주님의 말씀인 복음은 우리에게 선사된 ‘새 포도주’지만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오직 ‘참 행복’만이 제시하는 그리스도인 스타일, 삶의 양식인 새로운 행동과 스타일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오늘 마르코 복음 마지막 구절에 등장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마르 2,22)는 내용의 키워드입니다. 다른 이들을 비난하며 사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스타일이 무엇인지 깨닫기 위해서는 혹시 우리 행동이 그리스도인 답지 못한 스타일이 아닌지 살펴봐야 합니다. 비난의 스타일, 세속적 스타일, 이기적 스타일 등 세 가지는 그리스도인 답지 못한 스타일입니다. 비난의 스타일은 항상 다른 이들을 비난하려고 애쓰며,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는 신자들의 스타일입니다. “아니, 이런 사람이 아니라, 저런 사람” “저런 사람은 안 됩니다, 절대 안 됩니다” “저 사람은 옳지 않고, 이런 사람이 좋은 그리스도인이지요” 저는 이런 방식으로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 부족한 삶의 스타일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늘 다른 이들을 비난하려고 애씁니다. 하지만 그것이 악마의 스타일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성경에서 악마는 항상 다른 이들을 비난하는 ‘거대한 고발자’라고 불립니다. 그러나 이런 행동이 우리 가운데 유행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여러 사화에서 고발자들을 질책하셨던 예수님 시대에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다른 이들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보는 대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라”(마태 7,3)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 다른 이들을 비난하며 결점을 찾으며 사는 것은 그리스도인 방식이 아니고 새 부대가 아닙니다.

세속적인 태도는 많은 사람들을 망칩니다. 세속적인 것, 다시 말해 세상에 속한 것이라고 정의 내리는 삶의 스타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고백(신경)을 바칠 수는 있지만 자기만족에 도취되어 허영, 교만, 돈에 대한 집착으로 살아가는 신자들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새 포도주를 주셨지만 여러분은 아직 부대를 바꾸지 않았습니다. 세속적인 것, 그 속된 마음이 수많은 사람을 망칩니다. 좋은 사람들이지만 허영, 교만, 남에게 보이려는 정신이 스며듭니다. 이런 마음에는 겸손이 없습니다. 겸손은 그리스도인 삶의 스타일입니다. 겸손하셨던 예수님, 겸손하셨던 성모님, 겸손하셨던 성 요셉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또한 무관심도 그리스도인의 태도가 아닙니다. 우리 공동체에서 보게 되는 또 다른 삶의 스타일이 있는데 그것도 그리스도인의 스타일은 아닙니다. 그것은 이기주의적 정신, 무관심의 정신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은 좋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믿으며 이런저런 일들을 행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문제에 대해서는 신경 안 씁니다. “나는 전쟁, 질병,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해, 이웃에 대해서도 관심 없어’”라고 말합니다. 이런 태도가 바로 예수님께서 율법학자들을 질책하셨던 위선입니다. 그렇다면 참된 그리스도인의 스타일은 무엇일까요? 그리스도인의 스타일은 ‘참 행복’입니다. 온유함, 겸손, 고통 중의 인내, 정의에 대한 사랑, 박해를 견디는 역량, 다른 이들을 판단하지 않는 태도, 이런 것들이 그리스도인의 정신이며 스타일입니다. 비난의 스타일, 세속적인 스타일, 이기적인 스타일에 빠지지 않기 위해 그리스도인의 스타일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다면 ‘참 행복’을 읽으십시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스타일입니다. 참 행복이야말로 새 부대이며, 우리가 도달해야 할 길입니다.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온 마음을 다해 신앙고백을 바치는 역량을 갖춰야 하지만 온 마음을 다해 ‘주님의 기도’를 바칠 수도 있어야 합니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2006년 은퇴. 현재 뉴욕에 사는 재미동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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