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과 성찰 - 김남희] ‘김수환 추기경 선종 10주기’에 대한 유감(有感)

이 글은 <가톨릭평론> 2019년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여전한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영향력

<시사저널>은 1989년 창간한 이래 매년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다. 2018년에도 여론조사 전문기관과 함께 정치·경제·문화·종교 등 10개 분야에서 100명씩 총 1000명에게 지금,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지 물었다. 이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인’으로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1위로 선정되었다. 염수정 추기경과 정진석 추기경은 각각 2위와 5위에 올랐다. 불교계에서는 법륜 스님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3위에, 고(故) 법정 스님과 고(故) 성철 스님이 각각 4위와 6위에 올랐고, 혜민 스님과 조계종 설정 스님도 각각 7위와 8위에 이름을 올렸다. 개신교계에서는 조용기 원로목사와 고(故) 한경직 목사가 각각 9위와 10위를 차지했다.

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을 움직이는 성직자들의 영향력에 대한 관점이나 해석은 각기 달라 보인다. 사회적 호감도와 무관하게 종교 단체장 지위가 순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기도 하고, 종교계에 인물이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그럼에도 고인이 된 김수환 추기경, 법정 스님, 성철 스님이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종교인으로 선정되는 점, 특히 매년 10위권 내에 선정되었다는 점은 흥미롭다. 특히 2009년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은 2012년 조사에서 역대 최대 58.6퍼센트의 지지를 받은 바 있으며, 2011~2013년, 2015년에도 1위로 선정되었다.

김수환 추기경을 기억하는 여러 사업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 이후에도 한국사회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종교 지도자이자 한국사회의 진정한 어른으로서 그분을 기억하기 위한 작업과 연구는 교회 안팎에서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2010년 가톨릭대학교는 김수환 추기경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영성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위하여 ‘김수환추기경연구소’를 설립했다. 연구소는 학술연구, 교육활동, 그리고 문화활동 영역에서 그분의 사상과 영성을 사회에 확산하려고 노력한다. 특히 심포지엄과 콜로키엄을 통해 발표되는 논문들은 그의 사상을 사회교리적 관점에서, 교회 일치 관점에서, 종교 간의 대화 측면에서, 그리고 교육적 관점에서 다양하게 고찰해 왔다. 이러한 작업은 김수환 추기경이 학자가 아니었음에도 그의 사상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하는 밑거름이다.

추기경의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라는 사목방침에 따라 ‘바보의나눔’ 재단법인도 같은 해에 설립되었다. ‘바보의나눔’은 2011년 민간비영리조직으로서는 최초로 법정기부금 단체로 지정됨으로써 전문모금 및 배분 단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바보의나눔’은 김수환 추기경 선종 10주기를 맞아 서울 종로 일대 버스정류장과 지하철 안전문에 광고 캠페인을 진행했다. 광고 모델은 2010년 ‘바보의나눔’ 창립 때부터 홍보대사로 활동해 온 ‘피겨 여왕’ 김연아였다. 그녀는 많은 이가 추기경의 나눔 정신을 기억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광고 촬영에 재능을 기부했다고 한다.

대구대교구는 2005년 마을 주민이 소유하던 추기경 생가를 매입해 관리하다가, 경상북도로부터 2억 원을 지원받아 2018년에 1920-1930년대의 옛 모습대로 복원했다. 같은 해 경상북도 군위군은 사랑과 나눔의 성직자인 김수환 추기경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공간인 ‘사랑과 나눔 공원’을 총사업비 121억 원을 들여 조성했다. 2010년에 기본구상과 타당성 분석 연구용역을 시작으로, 2014년에 실시계획 인가를 받아 2015년 5월 착공하여 2018년 12월에 완공한 대규모 기념 프로젝트였다. 공원은 문화시설인 김수환 추기경 생가, 옹기가마, 추모기념관, 추모정원, 잔디광장, 십자가의 길, 평화의 숲, 그리고 수련시설로 청소년수련원, 야외집회장, 운동장, 미니캠프장, 수련의 숲 등으로 조성돼 있다. 현재 천주교 대구대교구가 군위군으로부터 위탁받아 관리운영을 하고 있다.

2019년 가톨릭교회는 김수환 추기경 선종 10주기를 맞이하며 그분의 업적을 기리는 사업을 더욱 다양하게 준비하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 선종 10주기 사연 공모전’, ‘사진전’, ‘김수환 추기경 선종 10주기 음악회’, ‘토크 콘서트’ 등이 계획되어 있다. 서울대교구는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선종 10주년 기념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을 위원장으로 하는 이 위원회는 김 추기경의 말씀과 행적을 재조명하고, 이 시대에 필요한 그리스도인의 역할을 식별해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의 기쁨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는 계기를 만들어 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2019년은 가톨릭교회뿐만 아니라 사회 안에서 추기경의 사랑과 나눔의 정신을 기리는 뜻깊은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선종 10주기 동안 진행될 수많은 기념사업을 바라보면서 정작 가톨릭 신자로서 무언가 개운치 않은 감정이 밀려오는 것은 왜일까?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인’으로 고 김수환 추기경이 1위로 선정되었다는 조사 결과를 보며, 가톨릭 신자로서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는 왜일까?

소설가 한수산은 추기경의 삶에 나타나는 교회사적 의미와 영성을 ‘우리 사회 안에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가’에 대해 좀 더 겸허한 접근과 다양한 시각이 필요함을 강조하며, ‘김수환 추기경 현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그분의 선종과 국민적 추도행렬에 이어서 터져 나왔던 ‘성인추대론’은 졸속과 부끄러움이었다. 추기경의 추모행렬에 교회가 들떠 있던 동안 당시 사회 일각에서는 또 그만큼의 천주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거부감이 있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김 추기경의 사진과 함께 모든 본당에 내걸렸던 ‘사랑하세요’ 하는 현수막이 오히려 ‘천주교가 김 추기경을 너무 팔아먹는 거 아니냐’는 시각마저 있었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엄격함이 절실하다.

민주화 과정에 있었던 명동성당의 일화, ‘신부와 수녀들을 밟고 지나가십시오’ 한 그의 말이 단순하고도 지나치게 거론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보자면 지나치게 감성적인 호소력에 의존하는 접근은 아닌가 한다. 보다 이성적 연구와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선종 후 우리 사회에서 보여 주고 있는 김 추기경에 대한 우상화에 가까운 현실은 그 정도가 우려와 당혹감을 느끼게 한다." (김수환추기경연구소 엮음, "김수환 추기경 연구1", 가톨릭출판사, 2014, 85쪽)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 이후에도 한국사회에 영향력을 끼치는 현상을 뒤집어 생각해 보면, 바람 잘 날 없었던 역사 속에서 그가 수행해 온 등대 같은 역할을 오늘날에도 사람들이 여전히 필요로 한다는 방증일 것이다. 가톨릭 신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은 종교적 양심에 따라 사회의 지도층에는 반성을 촉구하는 한편 가난한 이들에게는 한없는 위로가 되어 주었던 그를 여전히 그리워한다고 보인다. 다만 선종 10주기인 2019년에도 그분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 그리고 찬가만 남을까 우려스럽다.

고 김수환 추기경. (사진 출처 = 바보의 나눔 페이스북)

김 추기경을 둘러싼 양가적 평가

추기경의 말씀과 행적에 대한 재조명은 과거로 회귀가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의 삶의 자리(Sitz im Leben)에서 시작해야 한다. 추기경이 살아온 삶의 방식대로 우리도 그러한 삶을 살아내는지 반성하면서 시작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먼저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양가적 평가에 대한 직시와 재검토가 필요하다. 독재화 시대에 추기경의 적극적인 사회참여는 소외된 계층에게는 적극적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교회 내 일부 사제들과 보수적인 평신도들은 추기경에게 공개적으로 반대하지 못했지만, 함께하지는 않았다. 정치적 민주화가 이루어진 이후에도 이러한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진보적 그룹은 추기경을 제도교회 리더십의 한계에 갇힌 인물, 시대착오적 인물로 간주했고, 보수적 그룹은 지나치게 진보적인 리더, 즉 교회가 국가 정책에 너무 많이 관여하는 주교라고 비난했다. 이러한 양가적 평가는 오늘날에도 여전한 듯하다.

추기경에 대한 이러한 양가적 평가 이면에는 우리가 각자 살아온 삶의 흔적과 욕망이 투사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욕망은 교회 안에서 구성원 간의 이념적, 정치적, 사회적 갈등으로 드러났다. 사제와 수도자를 포함한 보수적 성향을 지닌 신자들은 개인적, 실존적 신앙을 강조하며 교회 활동에 열심히 하는 핵심 신자 층을 형성했다. 반면 진보적 성향을 지닌 신자들은 삶에서 부딪히는 공적 문제가 사적인 신앙과의 괴리로 이어지면서 주변부 신자로 전락했다. 지난 2018년 9월 11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소속 주교 15명이 김수환 추기경의 ‘사랑과 나눔공원’을 방문했을 때, 대구대교구 교구장 조환길 대주교는 “김 추기경은 가톨릭 신자든 아니든, 진보든 보수든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라고 평했다. 그러나 그 김수환 추기경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들, 특히 교회의 사제와 수도자 그리고 평신도는 정작 진보든 보수든 가리지 않고 서로를 존중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현실이 한국 가톨릭교회의 적나라한 모습이다.

일반적으로 서울 사람들은 서울발 부산행 KTX 기차를 보고 ‘KTX 기차가 간다’고 말한다. 부산 사람들은 그 기차를 보고 ‘KTX 기차가 온다’고 말한다. 과연 무엇이 옳은 표현일까? 서울에서는 ‘간다’라고 해도 옳은 대답이며, 부산에서는 ‘온다’고 해도 옳은 대답이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하면 반만 맞는 대답이다. 그렇다면 서울이나 부산 어느 한 편의 답이 아닌 양쪽을 다 품는 답은 어떤 것일까? 양쪽을 다 품으면서 뛰어넘는 대답은 ‘KTX는 간다고만 말해도 안 되고 온다고만 말해도 안 된다’다. 이는 양쪽을 포월하는 태도다. 추기경의 “바보의 모습”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 김수환 추기경이 살아 계셨을 때도, 한쪽은 ‘간다’고만 말했고, 다른 한쪽은 ‘온다’고만 말했다. 한쪽은 김수환 추기경이 민주화 고비 때마다 물꼬를 트는 발언으로 지역과 이념, 종교를 넘어선 국민통합의 상징이라 칭송했고, 다른 한쪽은 추기경이 한쪽 말만 들으면서 편중된 시국 인식을 보이는 것 같다며 비난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 추기경은 “난 진보니, 좌경이니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정치적 의도나 목적을 두고 한 일은 더더욱 없다. 가난한 사람들, 고통받는 사람들, 그래서 약자라고 불리는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의 존엄성을 지켜 주려고 했을 뿐이다”라고 술회했다.(천주교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세상 속의 그리스도Ⅱ", 2009) 나아가 그는 ‘간다’고만 주장하고, 다른 한쪽은 ‘온다’고만 주장하는 교회와 사회에 ‘나는 바보야’라고 고백했다. “제가 잘났으면 뭐 그리 잘났고 크면 얼마나 크며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안다고 나대고, 어디 가서 대접받길 바라는 게 바보지. 그러고 보면 내가 제일 바보같이 산 것 같아요”라고 참회했다.

서로를 인정하는 ‘바보 가톨릭 시민’이 되길

오늘날에도 한국 가톨릭교회의 구성원들은 여전히 한쪽은 ‘간다’고만 말하고, 다른 한쪽은 ‘온다’고만 말한다. 2019년 김수환 추기경 선종 10주기를 맞이하며, 교회 내 사제, 수도자, 평신도는 모두 ‘간다’는 입장에서는 ‘온다’를, ‘온다’는 입장에서는 ‘간다’는 입장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제는 서로를 인정하는 바보가 되어야 한다. 김수환 추기경처럼 교회 안으로만 향하지[Intra Ecclesiam] 말고, 교회 밖으로 향하는[Extra Ecclesiam] ‘바보 가톨릭 시민’이 되어야 한다.

개신교 신학자 김경재 교수가 말했듯이, 우리 사회는 아직도 ‘민주화’가 진행 중이며, 시민사회의 출현은 ‘산고의 진통 중’이다. 한국사회의 민주화 그리고 성숙한 시민사회를 위해 교회가 공적으로 참여해야 할 과제는 여전히 산재해 있다. 이는 김수환 추기경 재임 시절에도 같았다. 추기경은 1980년 4월 7일부터 15일까지 열렸던 아조르나멘토(aggiornamento) 후속 연수 강의를 통해 오늘날 ‘바보 가톨릭 시민’이 해야 할 과제를 우리에게 제시했다. 2019년 한 해 동안 김수환 추기경을 추모하며, 그가 우리에게 보여 준 ‘거룩한 분노’를 되살리자.

"교회는 도대체 한국의 정신문화, 윤리관, 가치관에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가? 교회가 제시하는 가치관, 윤리관은, 교회의 소리는 한국사회 속에 들리고 있는가? 교회는 진실히 이 사회의 양심인가? 특히 내일의 한국을 짊어질 젊은이들에게 가톨릭교회는 어느 정도 알려져 있는가? .... 근로 대중에 가톨릭교회는 어떤 가치관을 제시하고 있습니까? 또 실업인, 경제계에는? 정치인들과 정계에는 가톨릭교회가 정치 윤리를 지도할 만할 위치에 있다든지 또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무엇으로 인정되고 있는가? 언론계, 신문, 방송계에 교회의 소리는 어느 정도 들리고 있는가? .... 이 모든 점에 대해서 우리가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아마도 평균 점수가 100점 만점에 50점 이하이고, 우리는 거의 아무런 대비책도 없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게토(Ghetto) 교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물리적으로는 사회 속에 있으면서도 사회와는 유리되고, 자기 폐쇄적인 교회를 두고 게토 교회라고 합니다.

한국교회는 얼핏보기에 개방적인 교회로 보이지만, 사실은 자기 폐쇄적인 교회가 지금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특히 우리들, 성직자들이 마음을 사회를 향해서, 즉 우리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 그들의 문제, 그들의 삶을 향해서 열려 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우리는 근로자들을 향해서 학생들을 향해서, 젊은이들 전체를 향해서, 가난한 대중을 향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고 우리들 성직자들의 삶은 가난한 이들과 섞여 사시는 예수님의 삶, 그 라이프 스타일과 멀 뿐 아니라, 정반대에 놓여 있습니다. ....

한국교회는 확실히 내적 쇄신이 있어야 합니다. 복음에 의해서 사는 교회가 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하나의 종교단체일 수는 있어도 이 사회 속에 빛이 되고 소금이 되며 생명이 되고, 구원이 되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일 수는 없습니다. 교회의 복음적 쇄신을 위해서 우리 자신이 성직자, 사제들이 누구보다도 먼저 달라져야 함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매일의 삶을 진정으로 복음의 거울에 비추어 봅시다."

 

김남희

가톨릭대학교 학부대학 교수. 독일 자르브뤼켄 대학교에서 종교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종교교육, 가톨릭 학교교육 및 성인교육에 관심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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