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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흔든 거짓 사랑[특별기고 - 조지혜]

그렇다. 마침내 방탄소년단(BTS)에 입덕을 했다. 2018 멜론 뮤직어워드에 나온 삼고무, 부채춤, 탈춤으로 이어지는 퍼포먼스를 보며, 2018 엠넷 아시안뮤직어워드에서 까만 망토를 입고 흑마술을 뿜어내는 듯한 신비로운 무대 연출을 보고 마침내 입덕을 했다.

그들이 빌보드를 씹어 먹고 대통령 축전을 받아도, 유엔에서 연설을 하고 나라가 주는 훈장을 받아도 그냥 ‘아이돌 그룹 하나가 참 잘하나 보다’ 여기는 정도였다. 또 여기저기 방탄소년단 팬이 생겼기에 나도 그들을 모르면 안 될 것 같은 압박을 느껴 초록창 언니에게 물어도 봤다. 하지만 얼굴 구별도 잘 못하겠는 여러 아이돌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하지만 입덕을 한 뒤엔 연말 시상식에서 상을 받고 우는 그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같이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당황스럽게도 영어가 섞여 빠르게 흐르는 랩이 있는 그들의 음악을 나는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적어도 나에겐 새로운 노래 유형이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서태지가 온 나라를 휩쓸 때도 나는 무심했다. BTS 노래 중 내게 익숙한 노래 범주에 있는 곡이란 ‘봄날’(2017), ‘FAKE LOVE’(2018) 정도였다.

입덕을 하고 나서는 그들의 동영상을 찾아보고 가사를 찾아 읽어 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참으로 치열하게 살아온 일곱 청년의 성장 기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그들이 생산한 콘텐츠들을 보며 나는 다시 당황했다.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가 내가 가톨릭에서 세례를 받은 뒤로 교회에서 들은 사랑, 자유, 위로라는 메시지와 아주 비슷했기 때문이다. 내게 가톨릭은 삶의 전부인 적도 있었고, 지금은 교계 출판사에 근무하며 메시지를 전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여느 출판사가 그렇듯 아주 소수에게만 매체가 전달되는 현실에 고민을 한다. 그런데 종교와는 상관없는 BTS가 전하는 사랑, 자유, 위로는 언어를 초월해 남녀노소, 국적을 불문하고 퍼져 나가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그들의 아름다운 외모와 노래, 퍼포먼스가 비결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모두 갖추고도 반짝하고 사라진 아이돌들이 있다. 생각 끝에 한 가지 얻은 결론이 있다면 그들의 이야기는 나도 미처 알아채지 못하거나 차마 하지 못한 내 얘기였다는 점이다. BTS 멤버 슈가는 “누군가는 해야 했던 것인데 누구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에서 출발한 것 같다”며 그들 노래가 지향하는 바를 밝혔다.

많은 사랑 노래가 ‘날 떠나지 마, 내가 더 잘할게, 네가 없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내용을 노래한다. 그리고 이 노래를 듣는 이는 ‘내가 상대방에게 아주 중요한 존재가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콧대가 조금은 올라갈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내게는 ‘그래서 어찌하란 말입니까, 마음이 떠났는데’라는 마음의 소리만 외칠 뿐인 노래들이었다.

방탄소년단이 31회 골든디스크 시상식에서 상 받은 모습. (사진 출처 = ko.m.wikipedia.org)

그래서 그들이 사랑을 하면서 상대방에게 잘 보이기 노력해 온 내가 진짜 나인지 모르겠다며 혼란스러워 하는 이야기(FAKE LOVE, 가짜 사랑)는 생소했다. 이런 혼란은 인식하기 쉽지 않을 뿐더러 인식하더라도 적당한 언어로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BTS가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내 모든 약점이 숨겨지고, 사랑이 사랑만으로 완벽하길” 바라며 “널 위해서라면 슬퍼도 기쁜 척하고, 아파도 강한 척”했던 사람은 끝내 “나도 내가 누구였는지도 잘 모르게 됐다”, 그리고 거울을 보며 “너는 대체 누구니”라며 절규한다. 어찌 이것이 남녀 간 사랑에만 적용되는 말일까. 

공동체에서, 직장에서 그야말로 지덕체를 고루 갖춘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나를 꾸며 온 시간이 떠올랐다. 이상적인 나를 설정해 놓고 그 모습에 나를 끼워 맞추기 위해 몸과 마음의 소리를 무시하며 달려온 시간이 있었다. “이뤄질 수 없는 꿈속에서 피울 수 없는 꽃을 키우는 것”과 같은 불가능을 향해 달렸다. 어느 순간 나는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나요?’라는 질문에 어리둥절해 하고 ‘내 감정을 왜 물어보나, 그게 뭐가 중요해서?’라는 의문을 갖기에 이르렀다. 그냥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살면 되는 것이지 내가 무엇을 느끼든 그것이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나는 내가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몰랐지만 뭔가 그럴 듯한 대답을 해야 한다고 여겼고, 그럴 듯하게 말을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말을 잘한다며 칭찬을 받기도 했다.(누군가는 내 말이 빈말인 것을 알아챘을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나도 모르는 새 세상이 원하는 가면이 내 모습인 것처럼 살고 있었던 것이다. 내 감정을 묻는 말에 하다 못해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가면을 벗고 나를 드러내는 건 두려운 일이다. ‘나를 드러냈다가는 내 추한 모습을 보고 내가 좋아하는 저 사람이 나를 떠날지도 모르고, 그렇다고 언제까지 가면을 쓰고 만날 수도 없고, 언젠가는 내 모습을 보여야 할 텐데 언제 보여 주어야 할까, 그때 보였어야 하는 건 아닐까.’ 아주 친한 친구에게, 아니면 상담실에서 고통스럽게 털어 놓을 법한 이야기가 노래로 흘러나온다. ‘The Truth Untold’(전하지 못한 진심, 2018)에서는 가면 뒤에 있는 내 진심을 저 사람에게 어떻게 전하나 고민하고 마침내 ‘난 울고 있어.... 홀로 남겨진 이 모래성에서 부서진 가면을 바라보면서’라며 진심을 전하는 데 실패한 모습까지 고백한다. 진심을 두고 고민하고 애가 끓는 사람들, 이를 미처 표현하지 못하고 속앓이를 하는 이들에게 ‘The Truth Untold’는 그들 마음을 대변해 주는 노래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래서 BTS의 노래를 듣고 공감을 하고 위로를 받는다고 하나 보다. 실제로 BTS의 막내 정국은 한 예능프로에서 “저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맞추면서 진심으로 대하지 못하고 가면을 쓰는 느낌”이라며 고민을 털어놓은 적도 있다.

그런데 ‘IDOL’(2018)에 이르러서는 어느 정도 중심을 잡고 내 모습대로 사는 것은 어떤 모습인지 보여 준다. ‘그들이 나를 아티스트, 아이돌, 다른 무엇으로 부르든 난 나이기에 자유롭다’며 “덩기덕쿵 더러러러, 얼쑤”를 외쳐 버린다. 비록 ‘가끔 멀리 돌아가’는 일이 있더라도 말이다. 나는 무릎을 치고 말았다. 내가 가톨릭에서 세례를 받고 마르고 닳도록 들었으며 지금도 내 삶의 지침이 되는 말 “하느님이 그대를 창조하신 모습 그대로 사는 것이 가장 자유롭고 자연스럽다”는 말과 같지 않은가. 이건 때로 “생긴 대로 살자”라는 말로 응용되기도 한다.

BTS는 노래를 듣는 이들에게 “망설인다는 걸 알아 진심을 말해도/ 결국 다 흉터들로 돌아오니까/ 힘을 내란 뻔한 말은 하지 않을 거야/ 난 내 얘길 들려 줄게 들려 줄게”(Magic Shop, 2018)라고 읊조린다. 간단하고 명료한 언어로 그들이 겪은 시행착오를 고백하고 노래 듣는 이를 진심으로 다독이는 것 같다. 이런 가사들에 공감하고 위로를 받으면서 노래 듣는 이는 자연스럽게 사랑, 자유, 위로를 느낀다.

분명히 사랑, 자유, 위로라는 메시지가 있을 것이지만, 공부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일부 성경 텍스트, 교회 발표 담화문과 메시지는 불수능 국어 영역 비문학 독해 지문보다 어려워 눈에 힘을 주고 밑줄 그어 가며 읽어야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일부이긴 하지만 주제가 무엇인지 알 수 없어도 듣기만 하면 은총받을 것 같은 주일 강론. 이런 텍스트 앞에서 나는 ‘아 몰랑~’ 하며 고개를 돌려 버린다. BTS 노래를 들으면서 고민하게 된 건 ‘가톨릭교회 출판 언어는 어떤 것이 되어야 할까’였다. 이들은 한국어로 노래해도 언어가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노래가 퍼져 나가는데 교회가 전하는 메시지는 어떤 언어에 실려야 퍼져 나갈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하게 됐다. 가톨릭교회가 BTS 같은 아이돌 그룹을 만들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우리 사무실은 요즘 탄이들(BTS 멤버를 친근하게 부르는 별명) 덕분에 웃는 날이 많아졌다. 일하다가 갑자기 사무실에서 “Fake Love”를 외쳐 즐거움을 주고, 흥이 난 다른 직원은 길 가다가 갑자기 “IDOL” 춤을 추기도 했다. 또 다른 직원은 ‘이모 마음’이라며 몸이 부서져라 춤추는 그들에게 도가니탕이라도 한 솥단지를 고아 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안타까워했다. 그렇다. 이모들은 탄이들이 무엇을 하든지 쭉 응원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보다 반만 열심히 하고 건강을 지키면 좋겠다. 움직일 때마다 ‘에구에구’ 하는 날은 생각보다 빨리 온다.

조지혜(클라라)

출판사 편집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기자와 <가톨릭신문> 편집, 취재기자를 거쳤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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