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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역사학은 학문 아닌 가짜“환단고기” 조작, 위조된 역사

세계 최초의 문명인 수메르가 원래 우리 한민족이다, 중국 고대의 성인인 황제나 공자도 동이족이다, 은나라도 동이족이니 중국은 원래 우리 민족 땅이었다, 고조선은 지금의 평양 중심이 아닌 중국 베이징 부근에 있었다, 삼국시대는 이 좁은 한반도가 아니라 저 넓은 중국 대륙에 있던 것이다, 중국을 지배한 돌궐이나 몽골, 여진 등이 다 원래 한민족이다, 이런 위대한 민족사를 후대에 사대주의자들과 일제가, 그리고 지금은 식민사학자들이 왜곡해 축소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기쁨이나 분노에 흥분해 본 일은 없는가. “위대한 상고사”, “우리 민족의 시원인 파미르”, “대륙”, "고토 회복" 이런 단어에 눈과 가슴이 확 트여 본 일이 없는가.

“가짜뉴스가 범람하듯 가짜 역사 지식도 넘쳐흐르고 있다. 이제는 이런 일을 가만히 두고만 볼 수 없게 됐다.”

“유사역사학 비판”(역사비평사)을 쓴 이문영 씨는 책을 시작하며 이렇게 썼다. 이 책은 “환단고기”를 비롯해 지난 수십 년간 종교계를 포함해 한국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아예 어떤 이들은 “이게 제대로 된 민족사”라고 잘못 알게 만든 유사역사학과 그로 인한 폐해를 알린다.

"유사역사학 비판 - "환단고기"와 일그러진 고대사", 이문영, 역사비평사, 2018. (표지 제공 = 역사비평사)

저자는 서강대에서 사학을 전공한 소설가로 1993년부터 PC통신 한국사동호회 모임에서 “환단고기”, “규원사화”, “단기고사” 등을 역사책으로 볼 수 없다는 글을 쓰고, 유사역사학과 위서(조작된 역사서)를 연구하며 그동안 유사역사학을 비판해 왔다.

저자는 ‘유사역사학’의 ‘유사’라는 말은 국어사전에 나오는 ‘서로 비슷함’이란 뜻이 아니라 ‘가짜의’, ‘거짓의’, ‘유사한’, ‘사이비’라는 뜻으로 해석돼야 한다고 설명한다. 즉 유사역사학은 정식 역사학인 것 같지만 실은 ‘가짜’라는 것이다.

그는 유사역사학이 정통 역사학의 방법인 사료비판을 무시하고 추론을 통해 자기주장을 하며, 필요에 따라 내용을 조작해 일방적으로 주장을 펼치는 습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의 유사역사학은 현재 한국 역사학계가 친일, 매국, 식민사관에 오염됐다고 단정하며 한민족의 영토가 한반도 내로 한정된 것을 “위축”으로 판단하는 인식을 지닌다.

이런 인식 때문에 한국 고대사를 미화한 “환단고기”를 중심으로 “상고시대에 위대한 한민족이 아시아를 지배했다는 유사역사가 널리 퍼졌”고, “패배주의적, 비관적 국가관, 민족관에 빠지지 않게” 한다는 명분으로 과거 역사 미화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풍조가 퍼졌다는 것이다. 

물론 저자는 “친일파의 역사 왜곡, 기득권의 논리에 맞춰진 역사라는 주장이 아주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면서 1980년대까지 역사학 연구가 부족했고, 왕조와 지배자 중심의 역사가 주류였던 점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 대안이 가짜 역사일 수는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러한 역사의 미화가 일제 강점기와 군사독재정권 시기의 필요에 따라 민족주의가 오랜 기간 강조되면서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얻었다는 배경에 주목한다.

또 “이런 주장을 진지하게 믿는 이들의 심리 기저에는 열등감이 존재”하며 “패배의식에 가득 찬 이들에게 찬란한 민족의 영광을 담은 역사책이 등장해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자고 하면 이성이 마비되고 만다”고 지적했다.

특히 저자는 자국사를 미화하고 외국사를 왜곡하는 유사역사학이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 흐름이며 이는 “국수주의 파시즘”일 뿐이라고 진단한다. 그는 “서구사회의 가장 유명한 유사역사는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하지 않았다는 ‘홀로코스트 부정론’”이라고 소개한다.

또한 일제와 그를 지금도 따르는 “식민사학계”가 한국사를 왜곡했다고 비분강개하지만, 실제로는 유사역사학이야말로 일본인, 조선인, 만주인, 몽고인 등이 모두 한 뿌리라던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황국사관 역사, 종족이론에서 그 중심 민족이 일본인에서 한민족으로 바뀐 것뿐 내용은 거의 같아 오히려 일제의 침략사관을 정당화한다는 점도 지적한다. 민족주의 정서에 기대 한국사학계가 식민사학이라거나 반민족적이라는 주장이 얼마나 근거가 없는 비방인지도 설명한다.

이처럼 저자는 책의 앞부분에서 유사역사학이 무엇인지 정의를 내리고 이를 비판한 뒤, 한국 근현대사에서 유사역사학이 어떻게 자리 잡았고 대중에게 각인됐는지의 과정을 살피면서 유사역사학이 ‘가짜’일 수밖에 없는 근거를 낱낱이 밝혔다.

우선 저자는 유사역사학의 대표격인 “환단고기”는 신라, 고려, 조선 시대 사람이 지은 책을 묶은 것으로 한민족의 고대사를 비밀리에 전해 온 것이라고 하지만 모두 거짓으로, 실제로는 이 책을 “전달 받았다”고 주장하는 이유립이 조작한 위서라고 많은 증거를 들어 입증한다.

이유립은 이 책을 1979년에 처음 출판했다.

저자는 “환단고기”가 단지 황당무계한 내용을 담고 있어 위서로 보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역사학을 연구할 때는 다양한 형태의 사료를 다루는데, 이 사료는 지은이, 만들어진 시기, 내용 등에 따라 다각도의 ‘사료비판’ 과정을 거쳐 신뢰성이 입증되어야 역사 서술의 근거가 된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환단고기”는 역사학계의 사료비판을 통과하지 못했고, 수많은 오류와 위조의 증거가 넘친다. 유사역사학 전반이 사료비판에 무관심을 넘어 아예 무지하다.

저자는 “환단고기”가 “1960-1970년대 국수주의 관점에서 위조된 책이기 때문에 그 시기에 왜 이 같은 책을 위조하게 되었는가”와 왜 많은 이들이 오랫동안 이 책을 진짜라고 믿는지를 파악하는 데는 활용될 수 있다고 봤다.

저자는 역사는 누군가를 증오하기 위해서나 우리 조상이 제일 잘났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배우는 게 아니며 “우리 삶이 풍부해지도록 인간과 삶에 대해 배우는 것이 역사의 본질이다”라고 강조했다.

이 책의 뒷부분에서는 유사역사학으로 인해 대중에게 잘못 알려진 주요한 한국사의 몇 가지 이야기도 소개된다.

2002년 월드컵 때 축구 응원단 ‘붉은악마’가 치우 깃발을 들면서 떠오른 ‘치우’가 어떻게 우리 사회에 깊이 파고들었는지, 역사학계의 고조선의 기원과 영토 연구에 대한 유사역사학계의 비판에는 어떤 모순이 있는지, 광개토왕비나 가야 허왕후에 얽힌 엉터리 역사는 무엇인지 등을 다룬다.

저자는 독자들이 이 책을 어떻게 읽기를 바랄까?

이 질문에 저자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와 한 통화에서 “많은 사람이 유사역사학이 역사학과 대비되는 학문이라고 자꾸 생각하는데 우리가 인형을 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사람을 닮은 물건이라고 하듯 유사역사학은 역사학의 일종도 아니고 역사학도 아니라는 점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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