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교회] 7월 5일자 2655호 <가톨릭신문>과 1026호 <평화신문>

우리말에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고 우는 놈 한 번 더 때린다’는 속담이 있다. 사전에는 그 뜻풀이를 이렇게 해놓았다. “미운 놈은 미워한다는 것이 알려지면 뒤에 화를 입을 수 있어서 마지못해 떡 하나를 더 주지만, 우는 놈은 당장 듣기 싫어서 울음을 멈추라고 한 대 더 때리게 된다는 뜻으로, 미운 놈보다 우는 놈이 더 귀찮음을 이르는 말”이라 했다. 몇 주째 같은 문제를 가지고 모니터를 하다 보니 세상에 비친 천주교회가 속담속의 ‘미운 놈’인지 ‘우는 놈’인지 분간이 안 된다.

이번 주는 글 제목을 정하면서 고민이 컸다. 아마도 교계신문의 편집기자들도 기자가 송고한 기사의 제목을 붙일 때는 늘 이런 고민이 따라 다닐 것이다. 생각했던 제목부터 늘어놓아보자. ‘주교와 경찰서장’ ‘그들은 사과를 한 것인가?’ ‘무엇에 대한 사과인가?’ ‘성명서였던가? 발표문이었던가?’ ‘기사의 크기와 위치’ 등등의 제목들이 줄줄이 물고 나왔다.

지난 주 <가톨릭신문> 6면 ‘부당한 공권력집행 중단하라’ 기사의 시작은 “교회가 참고 있었던 입을 드디어 터트렸다”라고 되어있다. 그러나 교계신문들은 신중하다는 천주교회가 입을 연 순간까지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언론보다 교회가 먼저 말한 셈이다. 즉, 5월 29일 용산참사 현장에서 있었던 미사의 중단 사태와 성직자에 대한 폭행, 그 이후 거듭해서 행해진 공권력의 과도한 행사에 대해 교계신문은 내내 사건의 진상을 자세히 보도하지 않았다. 이것은 사회문제 혹은 정치문제가 아니라 교회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의 보도를 살펴보자. 교계신문들은 미사 중단과 즈음한 사건이 발생한 지 2주 후 ‘용산’이란 단어를 사용했지만 6월 14일자 용산관련 보도는 사건의 보도가 아니라 김운회 주교의 참사현장 사목방문에 관한 것이었다. 이어 6월 21일자 보도는 전국사제들의 시국선언에 이은 용산현장 시국미사 보도였다. 즉, 사건발생에 대한 교계신문들의 외면 속에 한 달여 지나는 동안 용산에서는 거듭해서 사제들이 공권력의 폭력에 시달렸다. 결국 서울대교구의 공식 문제제기 이후인 6월 28일에야 사건의 실체 중 일부를 독자들에게 전달하였다.

6월 23일 김운회 주교는 서울대교구 사회사목 교구장 대리의 직분으로 ‘성명서’를 발표했다. ‘용산참사 사건의 조속한 해결을 바란다’는 성명서는 서울대교구 홍보국이 ‘발표문’으로 했지만 분명히 글의 성격은 발표문이 아니라 성명서에 가까운 것이다. 뜻밖에도 주교회의가 인터넷에 제공하는 <우리교회소식>에는 ‘성명서’로 나왔다. 말의 표현방법인 단어를 가지고 논할 것은 아니지만 의견을 내면서 스스로 격을 낮출 필요는 없는 것이다. ‘어떤 사실이나 결과를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 발표라면 ‘일정한 사안에 대한 방침이나 견해를 공표하는 글이나 문서’가 성명서의 형태인 것이다. 아무튼 성명서가 됐든, 발표문이 됐든 교회가 공적으로 입을 열자 관할경찰서장이 서울대교구 사회사목 교구장 대리를 찾아왔다는 것이 이번 주 보도내용이다. 그러나 서울대교구가 항의한 대상은 경찰청장과 서울경찰청장이라고 6월 28일 6면에 <가톨릭신문>이 보도한 바 있다.

결국 교계신문들은 이번 주 들어서야 그동안 벌어진 사건(한 신문의 표현으로는 ‘사태’)의 내용을 전하였다. <가톨릭신문>은 관련기사를 중요 편성자리인 2면에 3단으로 ‘용산사태 … 고개 숙인 경찰’이란 제목을 사용했다. <평화신문>은 사회사목란인 21면의 최하단부 2단에 ‘용산 철거현장 사제단 폭력 사죄’를 전했다. 기사의 크기와 함께 기사를 앉힌 자리가 독자들에게 주는 영향은 대단히 크다. 그것이 바로 신문을 편집하는 관점이자 권한일 것이다.

독자들은 보고 싶은 것을 골라 보는 것으로 판단하지만, 사실은 ‘편집자의 관심사를 읽는다’라고 해야 할 것이다. 공권력의 행사에 대하여 담당주교가 교구장대리의 위치에서 성명서에 버금가는 발표를 하였고, 그것에 화들짝 놀란 경찰의 일선책임자가 진사사절로 왔다는 사실을 교계신문들이 어떤 가치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인지는 그들이 보도한 기사의 크기와 자리가 대변하는 것이다. 단순한 주교의 의사표명과 경찰서장의 사과가 아니라 그것을 차곡차곡 역사의 기록물로 만드는 것은 언론인의 신성한 작업이다.

6월 중순이후 거듭해서 벌어진 성직자에 대한 폭력사건 이전에 5월 29일 미사 중단 및 성직자에 대한 폭력사건의 보도를 교계신문들이 정색을 하고 했다면, 이어 6월 3일 김운회 주교의 용산방문과 관련한 보도를 언론인의 감각으로 좀 더 해석하고 깊이 있는 보도를 했더라면 주교가 교구장 대리로서 ‘낯 그슬리게’ 말씀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것이며, 지역 경찰서장을 상대로 격에 맞지 않는 자리를 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일의 진행과정에서 교계신문의 소극적 보도는 아쉬움이 크다고 할 것이다.

이번 주는 여기까지 하자. 그러나 폭력행사에 대한 사과는 받았지만 여전히 서울대교구의 요구사항인 용산참사 해결방안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나저나 사과를 받았다는 천주교회는 속담 속의 ‘미운 놈’이었지, ‘우는 놈’이었는지 여전히 헷갈린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