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 6]

누구나 그렇겠지만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어둠의 구덩이 속에 빠져 넘어지거나 허우적거릴 때가 있다. 멀쩡하게 잘 살고 있다가도(또는 잘 사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자칫 방심하면 구덩이 속 어둠이 나를 사로잡는다. 이렇게 살아도 될까? 정말 잘 하고 있는 게 맞나? 갑자기 모든 것이 어그러져 있는 것 같고, 마음도 따라 쪼그라든다. 한 걸음 내딛을 힘조차 없어서 그냥 주저앉아 엉엉 울고만 싶은 기분.... 느껴 본 적 있으신지?

나는 이게 어른들만 느끼고 겪는 일인 줄 알았는데 아이들도 똑같다는 것을 다울이를 통해 배웠다. 워낙 유리구슬 같은 아이라 어려서부터 섬세하게 느끼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줄은 알았지만 두 해 전 겨울엔 몹시 심각한 상황이었다. 어떤 책에서 '자살'이란 낱말을 본 뒤로 그런 개념이 있다는 것 자체에 충격을 받은 눈치였는데 그날 이후로 귀에서 자꾸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고 하는 것이다.

"엄마, 내 속에 있는 먼지 같은 마음이 자꾸 말을 해."

"뭐?"

"내가 움직이지 않고 있을 때나 자려고 누워 있으면 귓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이상한 소리? 어떤 소리인데?"

"그렇게 살면 뭐해. 차라리 죽어. 죽는 게 편해.... 막 그런 소리야. 듣기 싫은데 자꾸 들려서 너무 무서워."

8살 어린애가 하는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소름이 끼쳐서 내 심장 박동도 빨라지는 것 같았다. 대체 이게 뭔 일이지? 어떡하지? 어떻게 도와주지? 나는 다울이 앞에서는 누구나 그럴 때가 있다고 안심을 시켰지만 사실 속으로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울이가 '고흐가 왜 귀를 잘랐는지 알 것 같다고, 아마 먼지 같은 마음이 보내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였을 거라고' 했을 때는 뒤로 까무라칠 뻔했다. 정말이지 불안했다.

그래서 잠자리에 들 때마다 기도를 해 주기도 하고, 책에서 좋은 글귀 같은 게 보이면 그때마다 읽어 주었다. 틈만 나면 다울이를 안아 주며 먼지 같은 마음 따위에 휘둘리지 말라고 너는 정말 소중하고 빛나는 사람이라고 거듭 말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뭔가 미흡하다고 느끼던 차에 마침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눈에 띄어 허겁지겁 책장을 넘기다 보니 이런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유록족이라고 하는 부족이 솔춤이라는 춤을 추며 불렀던 노래라고 한다. 물론 책에는 노랫말만 남아 있다.)

 

해는 오래도록 너를 비출 것이고

온갖 사랑이 너를 감쌀 것이며

너의 달콤한 빛이 너의 길을 이끌 것이다.

 

보는 순간 한 줄기 빛이 쏟아지며 내 안에 숨어 있던 어둠마저도 스르르 꼬리를 보이며 달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이거다!' 싶었다. 이 노랫말을 노래로 되살려서 늘 부르고 있으면 빛의 가호가 있으리라. 마치 주문을 외는 것처럼 기도를 되뇌이는 열망으로!

노래여, 노래에 흐르는 빛이여, 정체 모를 어둠의 힘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주소서, 우리 안에 있는 빛을 더 크게 더 가까이 만나게 해 주소서....

그리하여 이 노래는 '동지 노래'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명명되어 공부&노래 모임 친구들과 해마다 동지 잔치(양력 12월 22일 동짓날, 새 해님이 태어남을 축하하고 우리 안에서 그 빛이 거듭나기를 소망하며 잔치를 열고 있음)를 할 때마다 다 함께 부르는 노래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생일 축하 노래로도 손색이 없고, 손님을 배웅하며 축복송으로 선물하기에도 좋다. 다울이의 예민함이 감지한 어둠 덕분에 오히려 많은 이가 빛을 노래하게 된 걸 생각하면 역시 인간사 새옹지마?! ^^

아무튼 이 노래가 있어서 어둡던 길이 밝아졌으니 참말 고맙고 고맙다. 이 노래를 불렀을 까마득히 먼 옛날의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빛으로 이어지게 해 주신 그분께 감사를 드리며 오래도록 이 노래를 가슴에 품고 살고 싶다.

 

 

덧. 미리 남기는 유언 한 꼭지.

나 세상 떠나는 순간에 반드시 이 노래를 불러 주오!
그러면 죽음이 덜 두려울 것 같음. (어쩌면 죽음을 와락 껴안을 용기를 낼 수 있을지도....)

정청라

인생의 쓴맛 단맛 모르던 20대에 누가 꿈이 뭐냐고 물으면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막상 엄마가 되고 1년도 채 안 되어 좋은 엄마는커녕 그냥 엄마 되기도 몹시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좋은 엄마'라는 허상을 내려놓았다. 그 뒤로 쭈욱 내려놓고, 내려놓고, 내려놓기의 연속.... 이제는 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살아 있음을 만끽하며 아무런 꿈도 없이 그냥 산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스스로 길이 된다는 것'임을 떠올리며 노래로 길을 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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